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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이진법(퍼온글)

내가 본 이진법
2007/03/21 13:22  불급

2진법을 구경한 지도 몇 해가 지났다. 2진법을 구상하신 이상도 변호사님은 그 생각을 기초로 풍부한 업적을 올리신 듯하다. 이쯤에서 나는 내가 처음 그것을 봤을 때의 인상을 설명하여 2진법과 5형식과의 화해를 시도한다.

내가 2진법에서 충격을 받은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중학교 1학년 쯤에 처음으로 교육 받은 국문법 기초에 나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국문법에서의 문형은 단문과 복문으로 나뉘고, 복문은 또 병렬문과 포유문으로 나뉜다. 그 이상의 복잡한 것은 잊어먹었다. 그러나, 단문과 복문을 나누기 이전에 각종 문장의 기본 마디를 다음과 같이 배웠다. 국문이 아무리 복잡해져도 결국 다음의 세 가지 말을 이리 잇고 저리 이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 무엇이 무엇이다.
2. 무엇이 어떠하다.
3. 무엇이 어찌한다.

위의 세 가지 마디를 보면 그 구조가 무척 간단하여 그낭 퐁당, 퐁당의 연속이다. (냇물아 퍼져라 널리널리 문리버 손등을 간질지 마라 ㅎㅎㅎ) 말이란 것이 이렇게 쉽지 않다면 누가 말이란 것을 배울 수 있겠는가. 어린애들이 말을 익히는 것은 결국 주체가 되는 언어 하나와 용언이 되는 언어 하나를 연결시켜서 생겨날 뿐이다. 문법은 결국 주언과 용언으로 된 여러가지 마디를 연결시키는 방법의 설명이다.

국문법의 위 세 가지를 영문법에 적용하면, 단 한가지로 축약되어 버린다. 국어에서 용언이 되는 것은 위 1의 문장에서 보는 지정사, 위 2의 문장에서 보는 형용사, 위 3의 문장에서 보는 동사 등 세 가지이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이 모든 것을 그냥 verb 라 하고 이것을 한국에서는 동사라 번역하고 있다. (나는 verb 는 동사가 아니라 생각한다. 잘못된 번역이다. 내 생각에, verb는 술사라고 번역해야 한다. 왜냐햐면, 영어의 verb 는 한국어의 지정사, 형용사, 동사의 역할을 모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명의 편의상 이하에서는 그냥 잘 알려진 용어인 동사라는 말을 사용한다.)

영어의 동사 중 이다 아니다를 표현할 때는 be 동사를 사용하고, 어떠하다를 표현할 때는 be 동사에다 adjective 를 보태어 사용한다. (adjective 를 형용사라 번역한 것도 잘못이다. 한국어의 형용사가 하는 역할을 하려면, 영어에서는 be 동사에 adjective 를 보태어 넣어야 한다. 그래서 보태어 넣는다는 뜻의 첨투사라는 말이 더욱 적합하다고 본다. 그러나, 편의를 위해 그냥 잘 알려진 대로 형용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5형식의 연구가 분자에 관한 연구라면, 2진법의 연구는 원자에 관한 연구다. 그 둘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되는 것이다.

5형식에 맞아들지 않는 말은 많지만 2형식에는 맞아들지 않는 말이 없다.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이다. 5형식이란 영어 전체를 포괄하기 위해 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영어란 언어의 뼈대를 설명하기 위한 다섯 가지 줄거리를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 5형식 속에서 모든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조화유씨가 든 예는 Cut to the chase. 였지만, 그러한 제시는 그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것은 명백한 1형식이다.

자, 그러면 흔한 상용 편지의 초두 한 가지를 소개한다. 도올이 5형식만 알면 편지 쓰기가 문제 없다고 말했는데, 내가 며칠 전에도 썼던 다음 문장을 보라.

Attached please find a set of five-page document including the original tax return. 처음 제출한 세금보고서를 포함한 다섯 페이지의 문서를 첨부했으니 살펴 찾으십시오.

나는 이것이 몇 형식에 해당하는지 모르며, 생각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남이 그런 뜻으로 쓰니까 나도 그런 뜻으로 쓸 뿐이다. 그러면, 다음 문장은 어떤가? 이것은 얼마전 헤밍웨이가 만든 어눌하기 짝이 없는 영어 문장을 내가 말이 되도록 고쳐놓은 것이다. (이름에 놀랄 필요는 없다. 헤밍웨이라고 언제나 맞게 쓸 수는 없다.)

Always do sober what you drunk said you would do. That will teach you to keep your drunk mouth shut. 술취해서 하겠노라 한 그 말대로 깨거든 반드시 하라, 그러면 취했을 때는 구창을 닫아두어야 함을 배울 것이다. (헤밍웨이의 원문: Always do sober what you said you'd do drunk. That will teach you to keep your mouth shut.)

여기서 drunk said 라는 표현을 보자. 한국인이라면, 대부분은 내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이라면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냥 말 그대로, 5형식 설명 없이 그냥 착 - 와 붙는 말이다. 이 세상 그 누군가가 그런 표현을 썼던 말았던 상관 없다. 이것은 완전한 영어다.

세상에 저런 표현이 가능하다고 해서 5형식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만일 내가 5 형식의 틀을 배우지 않았다면 저러한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2진법의 사고를 이해하면 5형식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5형식이란, 결국 2진법의 마디 몇 개를 이리저리 이어붙이는 방법을 설명한 도면이다. 그러한 이어붙이기 도해는 5형식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나온다. 다만, 거기서 2진법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관심이 거기에 익을 때까지 머무르지 못할 뿐이다.

그러니까, 2진법은 전혀 새로운 개념의 창출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하던 개념의 새로운 조명이다. 그러한 조명을 통해서 5형식의 구조를 좀더 환히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특히 2진법이 필요한 이유는, 사실 5형식보다도 그릇되게 번역된 동사와 형용사라는 두 개 용어 때문이다. 동사라 했기 때문에 한국인은 필연적으로 그것을 한국어 동사와 같다고 생각할 것이며, 따라서 differ 따위의 상태동사를 정확히 이해하기는 무척 힘들다. 또, 형용사라 했기 때문에 한국어의 형용사와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어의 형용사가 때때로 영어의 동사에 해당되는 것을 보고는 절망에 빠진다. 이러한 두 개의 독성을 피해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일은 사실 동사와 형용사라는 두 용어의 개역이다.

동사는 술사(述詞)라고 개역해야 한다.
형용사는 첨투사(添投詞)라고 개역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2진법의 도움으로라도 영어의 뼛속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2진법은 동사나 형용사라는 말이 주는 혼란을 뭉개서 없애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2진법을 통하면 영어가 한층 밝게 보이는 것이다.

동사와 형용사 외에 잘못 번역된 문법용어는 또 있다. 타동사라는 말이다. 영어의 타동사는 한국어의 타동사와는 아주 다르다. 그리고 타동사라 하는 뜻의 영어 단어 transitive verb 라는 말의 뜻은 목적어와 직접 연결된다는 뜻이지 목적어에게 무슨 행위를 가한다는 뜻이 아니다. 한국어에서와 아주 다른 역할을 하는 말을 같은 말로 번역해 놓았으니 혼란이 없을 수 없다. 이 타동사라는 말은 이상도님도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혼란을 겪고 계시는데,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나는 한국에서 내노라 하는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영어의 타동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내가 아는 친구 중에는 거의 없었다. 나는 자주 그 때문에 입씨름을 했으나, 내 친구들에게 나의 설명이 먹혀들지 않았다. 당초 번역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영문법은 잘못된 것이 없는데, 한국에서 문법용어를 잘못 번역했기 때문에, 한국어로 번역된 용어로는 아무리 해도 영문법을 올바로 가르칠 수 없다. 2진법은 새로운 용어의 창조라는 데 그 탁월한 가치가 있으며, 그것은 잘못된 번역이 주는 혼란을 이겨나가는 데 훌륭한 방편이 될 것이다.

댓글 (2)

구구
1. 무엇이 무엇이다.
2. 무엇이 어떠하다.
3. 무엇이 어찌한다.
이거 재밌네요. 어떤 컴퓨터 프로그램책에서 스크립트(프로그램언어) 쓰는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 세가지라고 한걸 읽었었거든요(거기서는 명사/형용사/동사로 설명했던가 합니다.) 하긴,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떤 언어든 언어적 사고는 이 세가지단위를 기본으로 엮어가며 이루어지지않나 합니다.
03/22 02:48 57

MoonRiver
아뉘...불급님이 문리버를 가지고 노시다가 퐁당하고 물에 빠져서 귀신잡기 놀이하실 일 있으신가....
불급님한테 누가 테러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영어세계에 왜 갑자기 불급님 글만 빼고 다른 글들 조회수가 저렇게 올라가나요. ㅋ
불급님이나 나나 이제 인터넷 테러 하도 많이 당해봐서 인제는 저런거 봐도 그냥 보고 피식 웃음밖에 안 나오네요. 03/22 07:17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