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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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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화의 진술조서(79.12.15)



                                            1979.12.15. 정승화 피의자신문조서
  
                                                     피의자   鄭 昇 和

위의 사람에 대한 內亂 被疑 사건에 대하여 서기 1979년 12월 15일 合同 搜査 本部에서 군 사법경찰관 소령 金大均은 군 사법경찰관 준위 梁 一根을 참여케 하고 피의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신문하다.

문 피의자의 성명 연령 본적 주거 직업(계급) 군번 출생지 주민등록 번호를 말하시오.

답 성명은 정 승화
   연령은 53세 생년월일 1926년 2월29일생
   본적은 경상북도 금능군 봉산면 인의동 719번지
   주거는 서울 강남구 학동 XX호

   소속은 전 육군참모총장
   직업(계급)은 육군 대장(예비역) 군번 11030
   출생지는 경북 금능군 봉산면 인의동719번지입니다.

문 피의자는 훈장이나 기장 또는 연금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답 연금은 받은바 없고 훈장은
   1953년경 3등 무공훈장을 받은 바 있고
   1961년경 3등보국훈장을 받았고
   1973년 10월경2등보국훈장
   1978년 10월  1등 보국훈장
이상과 같이 군 재직기간 중 훈장을 4개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중략........

(궁정도 안가 별채에서) 각하께서 이번 부.마산사태가 수습이 되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등의 대화를 하면서 식사를 마치고 커피와 과실을 먹고 있는데 19시45분경 창문으로 자하문 방향에서 총소리가 단 연발로 여러 발 쏘는 소리가 들려 김정섭에게 “어디서 나는 총소리요? 알아보시오. 라고 하자 김정섭은 즉시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와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고 하여 대단한 것으로 생각지 않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이때에 김재규가 와이샤츠 바람에 나타났는바 그때부터의 상황과 주변을 구분하여 순서적으로 말씀드리자면

2) 이후 김재규와의 행동 경위

가. 동일 19시 45분경 전술과 같이 김정섭과 본인은 총소리를 듣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밖에서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김재규의 비서가 급히 식당 안으로 들어와 그 옆에 있는 주방에서 물을 가지고 나가서 김정섭도 따라 나가므로 본인도 궁금하여 따라 나가니 식당 문 앞에 있는 복도에 김재규가 숨을 헐떡이며 물을 마시고 당황한 표정으로 본인을 보고 본인의 팔을 붙들고 “총장 큰일 났습니다.” 라고 3회 가량 되풀이 하므로 본인은 무슨 일입니까? 라고 수차 물었으나 김재규는 거기에는 답변치 않고 빨리 차에 타고 차안에서 이야기합시다. 라고 하여 본인은 만찬회 장소에서 무슨 긴박한 사태가 발생되었다고 생각하고 우선 김재규가 하자는 대로 따르기로 하고

나. 동 19시 50분경 현관 앞에 대기한 김재규 차에 타자 우측에 있는 김정섭에게 김재규가 차에 타라고 하여 김정섭이가 좌측으로 탐으로서 우측에는 김재규 중간에 본인이 좌측에 김정섭 앞 운전석 옆에는 김재규의 비서인 박흥주 대령이 타고 차가 출발하였는데 이때 본인은 만찬 장소에서 급히 헐떡이고 온 것은 무슨 긴박한 사태가 발생하여서 본인을 데리러 온 것으로 생각하여 만찬장소인 청와대로 가는 줄 알았는데 차가 궁정동에서 나와 청와대 방면으로 가지 않고 바로 시내 쪽으로 향하여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무슨 일이 있느냐?” 라고 재차 묻자 김부장은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들어 “돌아가셨습니다.” 하여 본인은 각하께서 서거하신 것으로 알고 “틀림없습니까?” 라고 물으면서 우선 누구의 소행인가를 알기 위하여 “외부의 침입입니까? 내부입니까?” 라고 묻자 김재규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하여 본인은 외부에서의 침입이 아니고 내부로 판단되어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겠지요.“ 라고 하자 김재규는 사정에 대한 내용은 설명치 않고 ”김일성이가 알면 큰일 납니다. 보안을 유지해야 됩니다.“ 라고 수차 강조하면서 빨리 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 계엄을 선포하면 어떤 부대를 뺄 수 있습니까?
라고 하여 본인은 계엄을 빨리 선포해야 하며 동원될 수 있는 부대는 20사단 30사단 9공수여단이 동원 될 수 있습니다. 라고 답변하고

이때 차는 내자호텔에서 중앙청 앞으로 해서 광화문으로 나가 동아일보 쪽으로 꺾어 광교 쪽으로 나가고 있는데 이때에 본인이 사건의 내용을 잠시 분석해 본바 사고는 청와대 내에 있는 만찬 장소에서 발생된 것으로 내부에서의 일이라면 범인은 차실장이 아니면 김재규인데 김재규가 현장에서 와이셔츠 바람에 왔는데 각하를 차실장이 시해하였다면 이것은 상당한 계획 하에 치밀하게 이루어졌을 텐데 그 장소에서 김재규는 상처하나 없이 무사히 도망을 왔다는 점이 의심이 되며 김재규는 사고내용은 일체 모른다고 하면서 당황상태에서 횡설수설하며

현장에 같이 있던 사람이 차실장이 시해하였다면 자기의 주장을 밝히기 위해서도 사고 처음으로 만난 본인이자 김정섭에게 들어보도록 사고내용을 세밀히 설명하고 차실장이 하였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인간본능인데 이를 밝히지 않고 보안유지를 해야 된다. 계엄을 빨리 선포하여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출동병력은 어느 부대인가를 알고자 하고 전술에서 김재규와의 대화중 빠졌는데 김재규가 계엄은 선포해야 한다고 하면서 “앞으로 총장께서는 계엄사령관으로 이 나라의 운명을 걸머진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면서 본인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격려를 하는 등을 볼 때

김재규가 각하를 시해하고 우선 군부를 장악하기 위하여 본인을 이용코저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가지면서 김재규는 중정부장으로 막강한 조직과 권력이 있고 각하를 시해하는 데는 상당한 계획 하에 조직적인 행동으로 상당한 세력의 배후가 전재되어 있다고 봄으로 본인은 김재규 하는 일에 따르면서 행동을 보면서 행동을 하여야 되겠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이때에 자동차는 3.1고가도로를 올라가고 있는데 김재규가 남산으로 가자고 함으로 본인은 잠시 생각한바 중정으로 가서는 안 되고 우선 군을 지휘하고 계엄을 선포키 위해서는 육본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여 육본으로 가자고 제의하자 김재규는 잠시 망설이고 있는지 답변이 없자 앞좌석에 있던 박흥주가 “육본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하자 이때 김재규는 좋다고 하므로 3인이 육본으로 가는데 합의가 되어

차는 후암동 병무청 앞을 지나가는데 김재규가 갑자기 엎드려서 무엇을 꺼내고 있더니 종이에 포장 된 조그마한 사탕 3~4개를 꺼내 본인과 김정섭에게 주며 먹으라고 하면서 자기도 한 개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사탕을 받아들고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김재규가 본인을 차로 가는 도중에 목적대로 행동시킬 계획에서 이상한 약물을 혼합한 사탕을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어 갑자기 무서워지므로 사탕을 먹는 척 하면서 슬그머니 밑에다 버린 바 있었고

차는 8군 영내로 들어가고 있는데 이때 육본 집무실로 가느냐 육본 벙커로 가느냐 생각 끝에 상황실도 있고 외부의 저항세력도 막을 수 있는 .벙커로 가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에 육본 앞에서 벙커로 가자고 제의하면서 차를 안내하여 육본 벙커 앞에 도착  

다. 동일 20시 05분경 육본벙커 앞에 도착하여 내릴 때 김재규는 맨발로 박흥주에게 신발을 달라고 하여 박흥주의 구두를 신고 본인은 앞장서서 벙커 앞으로 가니 보초가 제지하여 “ 나 참모총장이다” 라고 하자 초병은 안 된다고 우기여 본인은 총장인데 급해서 왔다고 하면서 안으로 들어서자 장교가 나오고 있어 이리오라고 부르자 대령이 가까이 오면서 경례를 하는 것을 본 초병이 제지를 하지 않아 중정부장일행은 뒤 따라 들어가

본인은 상황실로 들어가면서 정보상황실장이라는 당직대령에게 이분들을 총장실로 안내하라고 지시하고 상황실로 들어가 우선 계엄선포를 위해 논의해야할 군 수뇌를 소집하기 위하여 본인이 직접 전화로 국방장관 합참의장 해. 공군총장 한미연합사부사령관 육군참모차장 육본 G2 G3장 본부사령. 헌병감등에게 벙커로 오도록 연락하고 수경사의 병력이동 여부 등을 알고자 수경사령관에게 전화하여 이상이 없는가 고 묻자 “이상이 없습니다.” 라고 하여 “지금부터 내 명령 없이는 병력을 출동시켜서는 안된다.” 고 하면서 “병력을 전부 장악하고 있는가?” “전부 장악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여 병력출동준비를 하고

생각한바 수경사 병력은 차지철이 출동시킬 수 있는데 수경사 병력이 출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김재규가 각하를 시해한 것이 틀림없다고 의심이 되었고 김재규는 우선 군부를 장악하려고 벙커까지 왔는데 나는 김재규가 도모하는 일에 도와가면서 사태를 보자고 결심하고 계속하여 1군사령관에게 진돗개~2를 발령하고 대간첩작전 중에 있는 병력을 정위치로 환원시키라는 지시를 하고

3군사령관에게는 진돗개 2를 비상발령하고 20사단을 충정계획에 따라 준비가 되는대로 즉시 육사로 이동시키라는 지시를 하고 9공수여단장에게 출동준비가 되는대로 즉시 육본으로 이동시키라는 등의 조치를 하고 조치내용을 김재규에게 알려주고 그의 지시를 받고자 총장실로 간바

김재규와 김정섭이 있어 동소에서 전술과 같은 소집내용과 병력출동 상황 등을 설명하고 김재규의 복안을 듣고자 “계엄군이 서울에 진주하면 어디를 먼저 점령해야 됩니까?” 라고 묻자 김재규는 물음에 답변치 않고 옆에 있던 김정섭이 방송국, 상수도저수지. 변전소, 은행 등이라고 말을 하여 본인은 이때에 특별한 계획이 있는가 고 이를 종이에 메모를 하였는데 특별한 답변이 아니고 이미 계엄하에 점령목표로 설정되어 있는 상식적인 답변을 하고 있어 이를 메모타가 중지하고 이 메모지를 본인이 호주머니에 보관하고 있는데  

다. 동일 20시 30분경 국방장관이 벙커에 도착하여 상황실 입구에서 장관과 만나자 장관은 “무슨 일이야?” 고 물어 “각하가 돌아가셨습니다. 자세한 것은 정보부장이 와 있으니 물어보십시오.” 하고 계속하여 전방에 비상발령과 수도권 병력출동지시 상황 등을 보고하고 장관을 총장실로 안내케 한 후

계속하여 합참의장 참모차장이 도착하여 그들에게 각하의 서거를 알리고 공참총장, 해군차장 연합사부사령관은 총장실로 들어가고 이때 20시 40분경 수경사령관이 벙커에 도착하여 국방장관등과 동석한 자리에서 각하의 서거를 알리고 경호실 병력 출동을 저지할 목적으로 청와대를 포위하라고 지시하자

수경사령관은 청와대에 접근하면 총격전을 각오해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습니까? 라고 물어 근접포위를 하지 말고 원거리로 포위를 하라고 지시하여 수경사령관을 귀대시키고 이때에 김재규의 거동을 살펴본바 국방장관을 위시한 군 수뇌들이 장소에서 태연한 자세로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고 사고내용은 계속 설명치 않고 각하서거를 3일간 보안유지를 하고 빨리 계엄을 선포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어 김재규가 3일간 보안을 유지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북괴를 의식하며 국민의 동요를 막는다는 뜻도 있으나 사건전모를 보안유지하면서 군부와 행정부등을 장악하고 혁명으로 전환코자 하는 행동으로 생각이 되었고

이때에 국방장관 합참의장 등은 보안유지가 안되어 빨리 각하의 서거를 국민에게 알려야 하며 계엄은 빨리 선포해야 한다고 반대의사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등은 김재규와 사전내통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때 누군가가 청와대 비서실장 김계원과 통화하여 국방장관을 청와대로 오라고 한다는 보고를 받은 국방장관은 이리로 오도록 연락하라고 하자 동석한 장성들도 그곳으로 갈수 없다고 반대들을 하여 본인은 국방장관에게 김계원실장과 직접통화를 하시지요 라고 권유하여 국방장관은 청와대비서실장 김계원과 직접 통화를 하고 나더니 국무총리와 비서실장 등이 벙커로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때에 청와대와 통화가 된다는 것을 알고 청와대 상황을 알고자 누구인지는 모르나 청와대 이재전차장에게 전화를 대라고 지시하여 이재전과 통화가 되어 우선 이재전의 위치를 알고자 당신 지금 전화 받고 있는 데가 어디냐고 묻자 사무실에서 받는다고 말을 듣고 “이상이 없느냐”고 묻자 “아무 이상이 없는데 비서실장이 소집해서 왔는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하여 사고현장은 청와대 경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 각하를 시해한 것이고 차실장의 소행은 아님을 확신하여

범인은 김재규임을 명백히 알게 되어 본인은 경호실 병력이 출동할 우려가 있고 수경사 병력과 충돌될 우려가 있어 전화로 계속 하여 이재전 장군에게 “경호실 병력을 밖으로 못나가게 단속을 잘 하고 수경사령관에게 청와대 주변에 병력을 배치토록 지시하였으니 충돌이 되지 않도록 직접 수경사령관과 협조하도록 하라” 고 지시하고 전화를 끊고 즉시 수경사령관에게 이재전과 통화한 내용을 알려주고 협조하여 조치토록 지시하고

판단해본바 경호실이 관계가 없음으로 저항할 병력이 별로 없음으로 출동지시한 9공수여단의 출동을 중지키로 판단하였고 20사단은 계엄실시시간에 따라 출동시켜야 되겠다고 판단하여 참모차장에게 20사단이 출동을 않았으면 대기시키도록 하고 9공수여단도 출동치 않았으면 출동을 중지시키라고 지시하자

참모차장 이희성장군이 20사단은 그냥 두어도 24시 이후에야 서울에 도착되므로 그냥 두어도 됩니다. 라고 하여 그대로 두기로 지시하고 9공수여단은 출동을 중지토록 지시하였고


라. 동일 21시30분경 국무총리. 김계원실장 내무, 법무장관, 유혁인 정무수석비서관 등이 본인의 방으로 들어와 여럿이 합석되어 이 장소에서 김재규는 계속하여 각하의 서거를 3일간 보안유지를 해야 되며 계엄선포를 빨리 해야 된다고 주장하자 듣고 있던 장관들이 보안유지가 안된다고 반대하자 김재규는 계속하여 “소련의 브래즈네프도 1주일간이나 행방을 숨기고 있는데 우리는 왜 못하느냐” 고 보안유지를 강조하다가 국무회의를 23시에 하기로 하고 계엄은 27일 04:00에 선포하기로 결정하고 회의는 국방장관 회의실에서 개최키로 하며 국방장관을 위시한 국무위원들과 김재규일행 등은 국방장관실로 올라가고 본인은 총장실에 남아 육본일반 참모들과 계엄에 따르는 준비를 하였든 바 이때에 지시한 준비내용은

0. 출동병력으로는 평소 훈련이 되어있는 수경사와 30사단 1개연대를 수경사에 배치시키고 병력은 10월27일 00시부터 04시 사이에 이동 서울시내 중요목표에 배치시킨다.

0. 출동을 중지시켰던 9공수여단은 27일 04시까지 육본으로 이동배치시킨다.

0. 전후 목표로서는 기존계획에 의한 방송국, 상수도저수지, 변전소, 은행 등으로 한다. 는 등의 준비지시를 마치고

마. 동일 23시 30분경 벙커에서 국방장관실에 들어가 상황을 알고자 장관 부속실에 들어가 상황을 살피고 있는데 김계원실장이 장관실에서 나와 본인을 보고 조용한 방이 없냐고 하자 장관보좌관 조장군이 듣고 내방이 비어 있다고 하자 김계원실장이 본인보고 같이 가자고 하여 그 옆에 있는 방을 조장군이 열어주어 김계원실장이 먼저 들어가는데 국방장관이 장관실에서 뒤따라 나와 3인이 조장군 방에 들어가서 쇼파에 앉자 김게원이 “각하를 시해한 자는 김재규인데 권총도 가지고 있으니 조심해서 체포해야 된다.” 는 말을 듣고

이때 장관이 빨리 잡아야지 하므로 부득이 체포하겠습니다. 라고 하고 급히 벙커로 내려오면서 생각할 때 김재규가 방카에 들어와 여러 시간이 되었으나 김재규의 관련자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고 국방장관과 같이 있는 장소에서 김계원으로부터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김재규를 체포하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에 놓여 일단 김재규를 체포키로 결심하고 벙커 총장실로 돌아와 헌병감을 불러 중정부장을 빨리 잡아오시오. 라고 지시하자 헌병감이 신병은 어떻게 합니까? 라고 물어 총을 가지고 있으니 조심해서 하고 내가 보잔다고 유인해서 방카로 오는 도중 잡아서 보안사령관에게 인도하시오. 라고 지시하고

헌병감이 나가자 급히 보안사령관을 오도록 지시하고 있는데 이후 20~30분간 기다려도 헌병감으로부터 소식이 없어 헌병감을 부르라고 지시하자 얼마 있다가 헌병감과 보안사령관이 같이 들어와 헌병감에게 왜 이리 늦느냐고 묻고 다시 똑똑한 헌병장교로 하여금 내가 보잔다고 유인하여 벙카로 오다가 잡아서 보안사령관에게 인도하라고 지시하는 순간 ,김재규의 세력이 이후 나타날지 모르니 우선 보호조치하는 것이 후환을 생각해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보안사령관에게 신병을 인수받아 시내에 있는 안가에 수용하고 정중히 대하시오. 라고 지시하여 두 사람이 나가고

체포여부를 기다리고 있는데 27일 00시40분경 헌병감이 김재규가 소지하고 있던 3.8구경 리벌바 권총1정을 가져와. 체포하여 보안사령관에게 인도하였다는 보고를 받았고 조금 있다가 김계원실장이 나타나 “김재규는 어떻게 되었느냐” 고 물어 체포했습니다, 라고 하자 김계원은 김재규로부터 압수한 총과 똑같은 총 1정을 몸에서 꺼내 놓으며 현장에서 경비원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아 가져왔다고 하여 2정의 권총을 참모차장에게 주고 보관하라고 지시하고 있다가

국무회의 결과가 궁금하여 국방장관 부관실에 가서 있는데 보안사령관이 간단한 보고서를 주어 보니 김재규를 연행 중 그의 언행 등으로 보아 범인이 틀림없는데 조사를 해야겠다는 보고를 보고 이를 더 이상 보호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할 수 없이 조사하라고 보안사령관에게 지시한 사실이 있습니다.

문: 그러면 전술한 바와 같이 김재규와 궁정동에서 육본벙커까지 오는 차중에서 대화 및 태도 등으로 보아 의심을 하였고 수경사령관과 이재전 장군으로부터 그쪽 상황을 들어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면서 이를 즉각 체포치 않고 그를 동조하고 그의 동태에 방조한 이유를 진술하시오.

답 전술한 바와 같이 차내에서 김재규의 언동과 태도 등으로 보아 범인 아닌가 의심을 하였으나 범인이라면 중정부장으로서 막강한 조직과 권력이 있고 치밀한 계획과 상당한 배후세력이 있다고 볼 때 본인은 직감적으로 우선 김재규가 하는 일정에 따라가면서 기회를 보자고 결심하였고

이후 수경사령관에게 부득이 한바 병력이 출동된 바 없어 차실장의 소행이 아니고 김재규의 행위라고 의식하였으나 역시 그의 추종세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 외 배후세력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없어 이를 체포치 않고 그의 하는 일에 방해치 않고 동조하며 방조를 하게 되었고

이후 이재전장군에게 청와대 상황을 확인한바  역시 차실장이 아니고 김재규가 틀림이 없으나 이때에 잘못 처신하다가 김재규가 혁명이 성공하면 그에 따르는 후환과 또 나아가서 이때 김재규의 의사에 협조 하므로서 사후 출세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기대감등으로 김재규를 즉각 체포치 않고 동조하면서 방조를 하였던 것입니다.
  
문 그러면 김재규를 체포하게 된 이유를 진술하시오.

답 전술한 바와 같이 김재규가 육본 벙커에 들어와 3시간 이상이 되었는데 김재규를 경호하는 병력이 증원도 되지 않고 군 수뇌들이 다 모였는데 살펴본바 그들 중 동조하는 세력들이 부각되지 않으며 국무위원들도 많이 참석을 하였는데 그들 중 김재규 의견에 동조하는 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으며 김계원이 국방장관과 본인이 있는 장소에서 김재규가 범인이라고 누설하는데 본인의 입장으로 이를 지연시킬 수 없어 우선 신병을 보호책으로 체포하고 그 후에도 이렇다 할 배후세력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는데 보안사령관이 김재규가 틀림없는 범인으로 조사에 착수하겠다는 보고를 받고 이를 더 지연시킬 수도 없고 후환을 대응할 수 없는 처지에서 조사하도록 지시하였던 것입니다.

문: 사건 이후 자신의 관련사실에 대하여는 어떻게 하였는가요?

답: 사건 이후 본인이 사건현장 인근에 있다가 김재규와 같이 육본 벙커까지 같이 온데 대하여 국민들이 의아심을 가지고 있고 주위에 있는 군 내부에서도 본인을 의심스럽게 보고 있는 눈치를 본인은 될 수 있는 대로 관련 사실을 일체 은폐하기로 하고 외형으로 문제는 정확히 밝혀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대두될 조사에 일호도 의심이 갈 수 없게 변명할 자료를 내심으로 연구하여 오다가

드디어 1979년 10월 29일 육군본부 보안부대장이 당시 경위서를 작성 제출해 달라는 말을 듣고 외형상 정확한 조사를 해야 되니 파견되어 있는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면 정확하게 진술하겠다고 하여 합수에 파견된 정0식검사와 수사관 2명이 와서 조사할 때 그 상황을 본인이 유리하고 의심이 가지 않는 방향에서 진술하고 다음날 다시 조서를 작성해 가지고 오도록 하여

다음날 정검사가 전일의 진술내용을 토대로 조서를 작성해 간 것을 보고 불리한 부분을 삭제토록 하여 다시 작성해 가지고 오도록 지시하여 다음 날 다시 작성된 조서를 보고 여기에서도 의심이 갈 수 있는 부분을 수정토록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의심을 제거토록 하고 김재규 일당의 공판을 조속히 처리하여 본인의 관련사실을 영구히 비밀에 부치려고 노력해오고 있었습니다.

문: 이외 피의자에게 유리한 말이 없는 가요?  

답: 특별히 할 말은 없습니다.

문: 이상 진술내용은 사실과 상이 없는가요?

답: 사실 그대로를 진술하였습니다.

위의 조서를  진술자에게 열람하게 하였던바 진술한대로 오기나 증감 변경할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하므로 간인한 후 서명인케 하다.  



                                       진술자    鄭  昇  和

                                       서기 1979.  12.  15


                      戒嚴司  合同搜査 本部

  조사관 군 사법경찰관 소령 김 대균

  참여인 군 사법경찰관 준위 양 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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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4 4376 404
29
  10.26, 그 살육의 현장

지만원
2005/06/17 10849 441
28
  10.26 사건일지

지만원
2005/06/16 5816 565
27
  12.12의 진실(머리말)

지만원
2005/06/15 7996 453
26
  역사바로세우기 재판 판결: 12.12는 반란행위

지만원
2005/06/07 4856 470
25
  전두환-노태우 판결 주문

지만원
2005/06/07 5136 493
24
  역사바로세우기재판에서의 정승화의 거짓말들!

지만원
2005/05/09 5654 465
23
  정승화(역사학도)

지만원
2005/03/29 5954 407
22
  정승화의 내란방조 혐의사실

지만원
2005/03/06 5299 470
21
  정승화의 고소요지

지만원
2005/03/06 4138 422
20
  12.12 총정리

지만원
2005/03/06 9421 462
19
  지휘공백과 내란

지만원
2005/03/06 4891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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