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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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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와 한 배 탄 정승화

                                                           정승화의 빠른 두뇌회전


정승화는 김재규의 요청으로 시해장소의 사랑방에서 김재규의 심복인 김정섭과 함께 대기하고 있다가 40여발의 총소리를 들었다. 총소리가 끝나자마자 맨발로 달려온 김재규를 맞았다. 대통령 가슴과 머리에서 솟아났을 피, 그런 피에 젖은 외이셔츠를 입고 총을 허리에 찌르고 황급히 달려와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먹는 김재규의 흩어진 행색과 다급한 모습도 보았다. 정승화는 평소에 김재규로부터 은혜와 신세를 진 처지에서 우의와 의리를 다짐해왔을 것이다. 이런 그라면 육본 방카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김재규 언행에서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아차리고도 남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머리 회전이 바르기로 이름난 정승화는 차 내에서 내내 김재규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오자마자 조금도 서슴치 않고 김재규의 지시를 수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상황처리 중에는 그가 살아남기위한 가장 핵심적인 조치인 청와대 경호병력을 시해현장으로부터 차단하는 조치였다.

방카에 도착해서 정승화는 한편으로는 군 수뇌를 불러 비상계엄 선포를 준비하고 국방장관의 사전보고는 물론 사후 보고도 없이 병력을 이동시켰다. 그 엄청난 충격의 공간에서 상 하 지휘관이나 그 어느 참모와도 의논 한 바디 없이 혼자서 작전을 수행한 것이다. 누구와도 의논함이 없었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임과 동시에 오해받을 수 있는 일이다. 수경사는 경호실장인 차지철만이 지휘할 수 있는 부대다. 그런 수경사  병력을 총장이 직접 동원하여 청와대를 포위하는 한편, 청와대 내에 있는 경호실 병력의 이동을 동결시켜 시해현장 접근을 못하도록 조치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시해 현장으로 나가고 있던 경호실 병력도 곧바로 철수했다.

만일 정승화의 동결조치가 없었다면? 경호실 병력이 현장으로 갔을 것이고, 거기에 남아 있던 안기부 총잡이들과 한판 전투를 벌였을 것이다. 국정원 총잡이들이 사살됐거나 또는 체포됐을 것이고, 그랬다면 김재규와 정승화의 행적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김재규-김계원-정승화가 번개같은 속도로 체포됐을 것이다.

머리 회전이 빠른 정승화는 김재규와 “한 배”를 탔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의리 이전에 자신이 살아남으려면 김재규를 살려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면 정승화가 그렇게 빨리 경호실 병력을 동결하는 “핵심조치”까지는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수사당국이 이 사실을 크게 부각시켰더라면 그 후 쓸데없는 비난을 다소 감소시켰을지 모른다.

                                                                        오리발 행진

방카에 와서! 정승화는 자신이 시해 부근에 있었고, 시해 이후 김재규와 함께 동행해왔다는 모든 사실을 숨겼다. 그리고 청와대 김계원에 전화를 걸어 김재규와 통화하도록 했다. 김재규는 김계원에게, 청와대에 소집해 놓은 국무위원들을 모두 국방부로 데려오도록 조치했다. 정승화가 시해현장 부근에 있었고, 김재규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국무위원들은 정승화를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고, 4시간 후인 10.27. 새벽 4시를 기해 정승화가 대한민국 전역을 사실상 통치하도록 하는 대권(?)을 부여해준 것이다.

한편 김재규를 심문한 이학봉 수사국장은 10.27.새벽에 김재규의 자백을 통해 정승화의 행적을 알아냈고, 이런 정승화가 국방장관이나 합참 의장 등과 일체 의논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그리고 예행연습이라도 한 사람처럼 일사불란하게 비상상황을 처리를 하는 것을 수상히 여겨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정승화를 구속수사하지고 건의했지만 그 때는 이미 국무회의가 정승화에게 대권(?)을 결정했을 때였다. 더구나 군 내에는 김재규-정승화 인맥이 상당했고, 여론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전두환은 불구속 상태에서 극비로 은밀하게 내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에 따라 10.27. 새벽 4시에 정승화 총장을 찾아가 “시해장소가 궁정동 안가 식당이였다 합니다”라는 말을 던져 반응을 살폈지만 정승화는 '김재규의 요청으로 안가에 갔었다'는 사실도 숨겼고, 궁정동에 안가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며 시치미를 떼었다. 이학봉 수사국장이 돌아가자 정승화는 새벽 5시에 황급히 노재현 국방장관을 찾아가 자신이 김재규의 초청으로 중정 안가에 갔었다는 사실, 그 하나만 처음으로 실토했다.

그후 수사본부는 끈질기게 정승화에게 질문을 했지만 정승화는 김재규가 범인이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했다. 수사본부는 1)차 내에서 병력배치 사항을 주고받은 사실, 2)김재규와 같은 차를 타고 방카에 도착하여 군수뇌를 소집하고 병력을 동원 한 후, 이를 김재규에게 보고하면서 병력배치 장소를 문의한 사실, 3) 이재전 경호실 차장에게 경호실 병력 출동을 금지시킨 사실, 4)국무회의 장소를 청와대가 아닌 국방부에서 하도록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건의한 사실 등에 대해 질문했지만 정승화는 이 모든 핵심 사항을 숨겼다. 그리고 '총장의 말을 못 믿는 것이냐' 화를 내며 4일간에 걸쳐 윽박질렀다.

정승화를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수사국방은 전두환에게 정승화를 피의자 지격으로 조사해야 한다는 건의를 했고, 전 두환 역시 이에 동의하여 11.2. 노재현 장관에게 ‘정승화가 수사에 비협조적이다.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건의했지만 노재현은 “계엄사령관을 지금 조사하면 난리가 나고 시국이 불안해지니 정국이 안정될 때가지 기다리라”며 만류했다.

                                        정승화, 김계원과 이재전 수사까지 방해

한편 10.27. 새벽에 김계원이 김재규의 시해계획에 동의를 했다는 김재규의 진술에 따라 전두환 합수부장은 10.27.새벽에 정승화를 찾아가 이 사실을 보고하고 김계원을 구속수사할 것을 건의했지만 정승화는 이를 강력히 반대했다. 전두환 합수부장이 원체 강력하게 밀어붙이자 정승화는 마지못해 동의를 해주었다.

청와대 경호실 차장 이재전 역시 직무를 유기했음은 물론 범인들에 협력했다. 시해 직후인 10.26. 20:30경, 김계원이 이재전에게 이런 말을 했다. “각하가 시해당했다. 경호실장도 직무수행 불가능한 상태다. 경호차장이 직무대행하라. 병력출동을 일체 하지 마라”

이 말을 들은 이재전은 대통령 시신부터 확인하고, 만찬이 계획돼 있던 안가로 병력을 보내 조사를 했어야 했다. 또한 자동 규칙에 따라 “호랑이1호”를 발령하여 부대를 전투태세로 돌입시켰어야 했다. 그러나 이재전은 경호실로 돌아와 대통령 간부들에게 유고사실을 일체 숨기고, 처장급 이상만 소집하여 병력출동 금지령만 내렸다. 이에 따라 안가를 향해 가고 있던 “태양사찰요원”들이 철수했다.

거꾸로 경호실 간부들이 시해사실을 알게 되자 마지못해 처장회의를 열어 “각하가 시해됐다. 상황은 이제 끝난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처장들이 시신을 보호해야 할 것 아니냐, 현장조사도 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묵살했다. '대통령과 경호실장 모두가 없어진 공백상태에서 앞으로 누가 실권을 쥘 것인가?' 아마도 이재전은 이런 생각에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에게 명령을 내린 김계원과 정승화가 실세라고 믿었을 것이다. 이렇게 명확한 죄과가 있어서 합수부가 이재전을 구속송치하려 했지만 정승화는 불기소처분하도록 했고, 징계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만일 이 시점에서 이재전을 구속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승화가 경호병력의 현장출동을 금지시킨 사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경호실 병력을 시해현장으로부터 차단시킨 김계원- 정승화-이재전은 그야말로 공범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경호실 병력의 현장접근금지령”은 김계원과 정승화에게는 사활이 달린 그야말로 Vital Issue였다. 정승화 역시 김계원처럼 평소에 김재규가 가지고 있었던 시해계획을 사전에 알고 이에 대비해왔다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모두를 제치고라도 대통령을 받드는 비서실장과 육군 참모총장이 경호실 병력을 시해현장에 접근하지 못하게 엄명을 내린 것은 그 자체로 그리고 그 하나만의 사실만 가지고도 두사람은 시해의 공범인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한 명령을 그대로 이행한 이재전 역시 사후에라도 시류에 영합한 공범이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