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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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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론과 안보의 혼돈 (포럼)

[문화일보] 1998-07-13 (해설) 칼럼.논단 06면 2176자

96년 9월부터 지금까지 북한은 3개의 자살골을 범했다. 자살골이 3개라면 성공한 골은 많을 것이다. 새정부가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는데 침투행위는 왜 활발해지는가. 첫째, 침투의 필요성이 증대하고 둘째, 안 들킬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요 첩보수집 수단이 공중정찰이라면 북한의 그것은 간첩이다. 간첩은 남한의 군사시설에 대한 약도를 그리고, 시설의 강도를 알리기 위해 콘크리트 조각까지 떼어 보낸다. 북한의 간첩정보는 미국의 사진정보보다 훨씬 더 고급이다. 잠수정은 이러한 정보를 나르는 데도 가장 훌륭한 수단이다.
북한이 무력통일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리고 1백10만 대군을 유지하는 한 잠수정 침투는 계속된다. 최근에 부쩍 침투활동이 증가한 이유는 ‘햇볕정책’때문이다. ‘햇볕정책’은 남한의 시각으로 보면 유화정책으로 보이지만 북한의 시각으로 보면 북한 주민을 당국으로부터 이간시키고 체제를 전복시켜 흡수통일을 기도하려는 악의적 수단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햇볕정책’이 가열될수록 북한 당국의 긴장감과 불쾌감은 증폭될 수밖에 없고, 성질 급한 북한 군부는 전쟁준비를 다그치기 위해 정찰활동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 개방은 김정일에게 독약이다. 만일 남한의 개방압력이 김정일 체제를 위험수위에까지 올려놓게 되면 김정일은 이판사판식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강릉∼동해 20㎞군시설 밀집
문제의 심각성은 잠수정 침투지역의 특성에 잘 나타나 있다. 강릉시로부터 동해시까지는 20㎞에 불과하다. 이 구간내에는 레이더, 전투비행장, 유도탄부대, 군항 등 여덟개의 핵심 군사시설이 밀집돼 있다. 이 군사 시설들은 작은 폭파조에 의해서도 비교적 쉽게 파괴될 수 있다. 더구나 전쟁개시 몇 시간 전에 침투조가 군항 바닥에 기뢰를 설치하면 동해를 지키는 모든 함정들이 꼼짝도 못하고 갇히는 신세가 된다. 이번에 지참한 수중촬영 장비는 바로 기뢰설치 장소를 분석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이들 군사시설 등이 조기에 점령돼 버리면 태백산맥 전체가 북한의 수중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중요한 시설이 지금 방치돼 있다. 더구나 이번 침투지역이 바로 해군 군항이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증폭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그 넓은 지역을 어떻게 다 막으란 말이냐, 잠수정은 사실상 잡을 수 없다”고 변명했다. 뚫린다는 사실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군수뇌의 자질이다.
군 더러 망망 대해를 모두 막으라고 요구하는 국민은 없다. 단지 핵심 군사시설이 있는 그 20㎞의 구간을 막으라는 것이다. 변명의 내용에도 문제가 있지만 더 큰 문제는 군수뇌진이 적진을 향해 “잠수정이 들어와도 한국군은 잡을 능력이 없다”라고 공언했다는 사실에 있다. 이 발언 내용이 북한에 무슨 메시지를 보냈겠는가. 그러니까 북한은 종전보다 더 마음놓고 군사시설을 안방처럼 드나드는 것이다. 해야할 말, 안해야 할 말을 구분조차하지 못한다는 것은 프로의 자질에 관한 문제다.
감시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군수뇌는 무얼 했는가. 96년 강릉 잠수함침투사건 후에 조치한 내용은 2백60억원어치의 레이더를 사다가 예하부대에 배급해준 사실 밖에 없다. 지난달의 잠수정침투사건 이후에는 예하부대에 “철저히 하라”는 엄포만 놓았다.
○장비보강만으론 해결 안돼
감시 시스템은 장비를 더 산다고 해서 보강되지 않는다. 수학자들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특히 미국에는 미국 해군을 도와주는 사설 연구소가 많다. 이들은 OR (Operations Research)라는 응용수학으로 무장돼 있다. 여기에는 탐지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이른바 탐지이론(Search & Detection Theory)이 포함돼 있다. 한국군에도 이러한 전문가가 소수 있기는 하지만 독자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을만큼은 아니다. 단지 과제에 대한 주문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해결방안은 따로 있는데 군수뇌는 해안에 배치돼 있는 대령들에게 경계구역만 할당해주는 엉뚱한 방법만 취해왔다.
남한은 지금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향해 치닫고 있다. 북한은 이를 부추기고 확대시켜 통일의 결정적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다. 공연히 북한을 자극할 때가 아니다. 그래서 ‘햇볕론’은 근본적으로 재고돼야 한다. ‘햇볕론’은 하나의 수단일 뿐 거기엔 목표가 없다. 막연히 ‘벗긴다’고 하지만 벗긴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아울러 대북경제정책도 남북한 당국간의 합의사항이어야 한다. 남한 정부는 제외돼 있을테니 남한 기업과 북한 당국이 알아서들 해보라는 식으로 방치할 수는 없다.

池萬元/ 사회발전시스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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