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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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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잠수정 침범의 의미(포럼)

[문화일보] 1998-06-23 (해설) 칼럼.논단 06면 2164자

1996년 9월, 강원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에 대해 북한은 사과했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후 1년9개월만에 또다른 잠수정이 그들의 실수에 의해 한국에 잡혔다. 이번 잠수정이 훈련중이었을지 모른다는 추측은 설득력이 없다. 훈련은 떼지어 하는 것이지 조그만 잠수정 혼자서만 하지는 않는다. 만일 훈련중이던 잠수정이라면 군은 그 많은 탐지용 장비를 가지고 다른 잠수함이나 모함 떼를 왜 발견하지 못했는가.
북한은 재발방지를 약속해놓고 왜 또 침범행동을 계속했는가. 또한 북한에 이롭게 전개되고 있는 화해무드에 왜 찬물을 끼얹는 행동을 계속할까. 한마디로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1년반 사이에 ‘자살골’에 의해 발견된 것이 2척이라면 그동안 걸리지 않고 우리 해역을 안방같이 드나든 잠수함과 잠수정은 매우 많을 것이다. 자신감은 이렇게 해서 형성됐을 것이다.

○또다시 구멍난 방어체계
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때 군은 ‘그 넓은 바다를 어떻게 다 지키라는 말이냐’고 어설픈 변명을 했다. 그러나 군은 넓은 바다 전체를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거의 정해져 있는 좁은 접근로를 지키라는 것이다. 군은 탐지 장비를 가질만큼 많이 가졌다. 기존의 장비와 인력만으로도 운영만 과학화시켰다면 지금처럼 북한 잠수정들이 남한의 군사시설 부근을 안방 드나들 듯이 다니도록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은 우리의 ‘햇볕론’과는 관계없이 남한 지역의 군사시설과 지형에 대한 정교한 정찰을 계속할 것이다. 북한이 유사시에 수많은 스커드 미사일로 목표를 명중시키기 위해서는 한국내에 관측조를 설치해야 한다. 첫번째로 날린 스커드 미사일이 목표로부터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를 관찰해서 그 다음번에 쏘는 미사일을 목표물에 명중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측조가 무전기를 가지고 ‘미사일의 낙하지점’을 중계해야 한다. 그러려면 관측조가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를 사전에 정찰해야 하고, 무전기 등을 사전에 배치해야 한다. 지금도 발견되지 않고 우리 바다 밑을 드나드는 잠수함들은 이러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설픈 햇볕론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면서 해이해지고 있다. 지금은 분명히 準(준)전시다.
군은 어부가 신고한 표류 잠수정 하나를 놓고 햇볕론에 유리한 해석만 이끌어내려 하지 말고, 우리에게 발견되지 않은 채 지금도 드나들고 있을 물속의 잠수함을 잡는 근본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고장으로 좌초하거나 표류하는 것을 민간인의 신고로 잡았다. 군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번 소형 잠수정 침범사건은 우리의 대북 정책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햇볕론을 ‘바람론’으로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군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햇볕론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다. 남북한이 화해와 평화 시대를 열려면 제일 먼저 군사와 정치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서로가 마음만 먹으면 상대방을 기습할 수 있는 막강한 군사력을 휴전선에 배치해놓고, 둘째 서로가 서로를 통일의 대상으로 규정해놓고, 셋째 서로가 상대방을 주적으로 규정해놓고 있는 상태에서 ‘화해’를 하자며 햇볕론을 들고 나서면 북한은 이를 ‘지능적인 공격 행동’으로 인지할 것이다. 북한을 살금살금 개방시켜 김정일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의도로밖에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높으면 높을수록 북한은 군사적 정찰활동을 강화할 것이다.

○‘통일과 평화’ 共存 불가능
현정부의 대북정책을 햇볕론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너무 애매하다. 통일이면 통일, 평화면 평화, 딱 부러지게 선택해야 한다. 평화를 택하려면 상호 감군을 해야 하고, 휴전선의 그림을 바꿔야 한다. 평화를 택하면 남북한 군은 사이좋은 연합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통일을 택하면 남북한 군은 서로가 적일 수 밖에 없다. 시스템의 변화없이 햇볕론만 좇다가는 이번 잠수정 침범사건에서처럼 남북한은 과거처럼 냉탕과 온탕 사이를 드나들며 국력만 낭비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잠수정 침범사건은 북한이 미국에 주는 매우 훌륭한 선물이다. 바로 이런 돌출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23일 열린 장성급회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바로 7년전 우리는 ‘실력은 갖추지 않고 자존심만 앞세워’ 한국군 장성을 유엔군사령부 대표로 임명했다. 바로 그것이 오늘날의 북·미 장성급 대화 채널을 만들어준 것이다. 이는 엄청난 손해요, 더 큰 자존심의 상처다.

池萬元/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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