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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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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防産 구조조정’ 합리적으로 (포럼)

[문화일보] 1998-09-19 (해설) 칼럼.논단 06면 2123자

지난 8일, 서울 캐피탈호텔에서 열린 방위산업 정책토론회에서 방위산업 구조조정위원회가 방산업체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았다. 조정안 요지는 방산업체 살생부를 만들어 특정 대기업에 독점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1개 업체가 맡아도 부족한 방산 물량을 가지고 여러개 기업이 과당경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국방부가 살생부를 만들면, 시장경제 논리에도 어긋나지만 의혹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정기업 독점권 부여 의혹
D와 H라는 2개의 회사가 잠수함 분야의 방산업체로 등록돼 있다. 지금은 D라는 업체가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 국방부는 D라는 업체에 독점권을 주고, H라는 업체로부터는 방산업체 자격 자체를 박탈하려 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H라는 업체를 방산업체로 남겨둬 보자. D라는 업체는 늘 H라는 업체를 의식해 독점적 횡포를 부릴 수 없게 된다. 외국으로부터 대형선박을 수주하기 위해 경쟁을 할 때에도 일국의 방산업체로 지정됐다는 사실은 엄청난 경쟁력을 제공한다. H라는 업체에게 방산업체 자격을 그대로 살려주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국가적으로 이익이다.
그런데도 왜 구태여 H사를 잠수함 지정업체에서 퇴출시키려고 하는가. 이는 국방부와 업체간의 유착을 의심케 하는 결정적 대목이다. 사실상 D업체에 독점권을 주기 위해 국방부가 취한 노력은 이번이 네번째로 지적되고 있다. 첫번째는 所要(소요)의 변경을 통해 경쟁을 원천봉쇄하려 했다. 두번째는 밀실행정이었다. 이를 한 조간신문이 폭로하자 기자에게 보복조치를 취했었다. 세번째는 잠수함 사업 하나만을 위한 특별규정을 만들었다. 이는 ‘율곡사업’ 역사상 초유의 예외규정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살생부를 만들어 H사를 방산업체로부터 퇴출시키려 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살생부라는 원시적 발상과 의도가 왜곡돼 보이는 행정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 대신 다음과 같은 명확한 대안이 고려돼야 한다.
첫째, 모든 계약을 ‘확정가계약’으로 체결해야 할 것이다. 계약에는 두 가지가 있다. ‘확정가계약’과 ‘사후정산제계약’이 그것이다. ‘확정가계약’이란 계약시에 가격을 한번 정하면 무조건 그 가격에 납품하는 것이다. 가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업체는 확정된 가격내에서 가급적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경영 혁신을 주도하게 된다. 한국군이 구매하고 있는 모든 제품은 1백% 확정가계약의 대상이다. 그러나 한국군은 대부분의 제품에 대해 ‘사후정산제’로 계약하고 있다.
‘사후정산제계약’이란 계약시에 가격을 정하지 않는 계약이다. 정당하게 쓴 돈이면 얼마든지 정산해 줄테니 한번 만들어 보라는 식의 계약이다. 업체는 영수증 없는 전철보다는 영수증 있는 택시를 타고 다니게 된다. 구태여 경영개선을 할 필요도 없다. 1백명으로 할 수 있는 일도 1백50명으로 하려고 한다. 외국으로부터 부품이나 재료를 구매할 때도 오히려 2배 비싸게 구입하면 간접비와 이윤을 2배로 받을 수 있다.
국내 경쟁 업체들은 사업권을 따낼 때 파격적으로 싼 가격을 제시한다. 일단 사업권을 따고 나면 유착관계를 활용, 가격을 상승시킨다. 납품시의 정산가격이 약속가의 배 이상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후정산제를 전제로 하는 한 경쟁은 의미가 없다.
둘째, 국내외 업체에 동등한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독점업체를 지정해 놓고, 여기에다 국산화 우선정책을 펴고, 원가정산제계약을 하게 되면 도덕적 해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똑같은 품질이라면 단 1달러가 더 싸도 외국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수출없는 방위산업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정의했다.
○경쟁력 유지 여러모로 유익
드골 대통령의 이 말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차세대 전투기사업이다. 내년까지 국산 조립이 모두 끝난다. 그 다음해부터는 생산물량이 전혀 없다. 1조3천억원어치의 설비가 고철화하고, 기술료 명목으로 미국에 준 10억달러도 날리게 됐다.
셋째, 향후 10년간의 물량 소요가 발표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방위산업 육성이 어렵다.
첫째는 확정가계약을, 둘째는 외국업체들과의 동등한 경쟁을, 셋째는 향후 10년간의 소요를 선포해보라. 그러면 업체들은 향후의 생존성을 계산하여 스스로 물러날 것이다. 이렇게 퇴출돼야 할 기업이 스스로 퇴출되는 신사적인 방법이 분명 있는데 어째서 경제 논리를 어기고, 의혹을 받아가면서까지 직접 살생부를 작성하려 하는가.

池萬元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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