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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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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명은 확률에 의존한다

우리는 지난 5년간만 해도 끔찍한 사고를 참으로 많이 당했다. 항공기 추락사고, 철도 붕괴 사고, 여객선 침몰 사고, 잦은 선박 충돌 사고, 삼풍 참사, 가스폴발 사고, 반복되는 수해, 지하철 사고, 잦은 화재 사고, 만성적인 산업 재해 등 국제적으로는 "사고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큼 많았다.

이러한 사고들의 특성을 보면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예측될 수 있는 인재였고 둘째, 반복적인 사고였고 셋째, 사고의 확률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경험으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1982년 영국의 지그브리지 쾌속 여객선이 급커브를 틀다가 문이 열리는 바람에 수많은 승객이 사고를 당했다. 검찰은 누구를 처벌할 것인가를 규명하기 위해 조사했지만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 선장은 "문을 관리하는 승무원이 문단속을 완료한 줄 알았다"고 항변했고, 문단속 요원은 "선장이 그렇게 빨리 출발할 줄은 몰랐다"고 항변했다.

결국 이 사고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시스템의 잘못이었다. 선장과 문단속 요원 사이에 인터폰 시스템이 없었다. 문이 모두 닫아지지 않으면 배에 빨간 불이 켜지도록 하는 안전 장치도 없었다. 출발 전에 선장이 취해야 할 확인절차가 명문화돼 있지도 않았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누가 선장이라도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정부에는 물론 모든 공.사 조직에 기본적인 시스템을 설치할 것을 의무화했다. 이것이 영국표준 BS 5750으로 표준화됐고, 이는 다시 세계적인 표준으로 채택되어 츄리히에 본부를 둔 국제표준기구를 발족시켰다. 국제표준 ISO-9000은 바로 영국표준 BS-5750의 이름만 바꾼 것이다. 이는 영국이 경험으로부터 얼마나 잘 배우는 민족인가를 나타내주는 하나의 사례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그 수많은 사고를 당하고도 시스템상의 아무런 변화도 주도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사고는 똑같이 발생할 수 있다. 사고의 유형이 다양하기 때문에 우리 생활주변 어디에서든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우리 국민은 생명을 시스템 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요행과 확률에 의해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스템 기술의 부재이고, 다른 하나는 공무원사회에 만연된 부정이다. 사고 예방을 위한 조직은 정부의 28개 부처에 분산돼 있다. 이들에겐 사고를 예방하거나 사고를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나면 자기 부처의 책임이 아니라는 논리를 마련하기 위한 부서들이다. 모든 국민이 이용하는 인프라가 공무원 부정에 의해 부실해지고, 거기에 더해 공무원들은 안전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만 하고 있다.

2001.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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