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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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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개조 35제(31) -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성

과제 25.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성

―――
‘품질을 향상시키면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고정관
념을 갖지 않은 이들이 드물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 고정관념
을 깨고 품질 1등국이 됐다. ‘노동의 유연성을 위해서는 대량실
업이 불가피하다.’ 또 하나의 고정관념이 있다. 구조조정과 고용
창출은 분명 양립할 수 있다. 감봉주의는 위험한 발상이다. 그
들이 매달려 사는 제품이 사양화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
문이다.

―――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해고 이전에 업종 창조와 제품
창조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는 현존기술을 가지고도 능히 할
수 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관광사업을 벌이고, 지
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대량인력이 소요되는 토목공사를 벌이
는 것이다.

  우리는 실업문제를 ‘감원’이냐 ‘감봉’이냐의 양자택일 문제로
보고 있다. 이는 위험한 발상이다. 똑같은 100명으로 일
본은 5가지 제품을 만들지만 우리는 1가지 제품만 만든다. 기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80명을 해고시키든지, 일본처럼 5가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정서는 ‘감봉’을 통해 100명으로 하
여금 1가지 제품에 매달려 살도록 권고하고 있다.

  ‘감봉’을 선택하면 어떻게 될까. 당분간은 일본의 5분의 1수준의
성장률에 머물면서, 근로자들을 무마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 한 가
지 제품마저 사양화되면 터 큰 실업이 발생한다. 결국 ‘감원’을 억
제하는 것은 정치논리지 경제논리가 아니다. 노동시장이 경직되면
어떻게 될까. 창의성은 고사하고 생산성과 품질마저 낙후된다.

  해고가 불가능했던 때의 모습을 보자. 근로자들이 경영자 앞에서
보란 듯이 어슬렁거렸다. 보약이 되는 교육과 훈련도 거절했다. 그
들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기 위한 술책이라는 것이다. 현장은 우리
가 맡았으니 경영자들은 참견 말라며 경영진에 의한 현장개선 노력
을 원천봉쇄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노조, 병원노조를 포함한 거
의 모든 노조에 만연했다. 어찌 국제경쟁력이 생길 수 있겠는가.

  노동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면 근로자들에게는 자극이 없고 자
극이 없으면 부패한다. 지하철 객차의 단가를 6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출 수 있는 방안이 있다. 2만 명을 5천명으로 줄이면서도 불량률
을 30%에서 1%이내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근로자들에 의해 저지되고 있다. 감원을 획책하기 위한 술
책이라는 것이다. 이를 품질 1등국을 건설한 일본 근로자들과 비교
해보라. 감원이 전제되지 않으면 과학경영은 영원히 꽃피지 않는다.

  같은 제품을 일본은 20명으로 만드는데 우리만 100명으로 만들
면 국제경쟁력을 잃는다. 기업이 망하는데 고용안정이 어디 있는
가. 유일한 살 길은 국제경쟁력 뿐이다. 국제경쟁력이 있어야 달러
가 들어오고, 달러가 들어와야 고용도 창출된다. 이것이 바로 영국
대처 수상의 선택이었다.

  실업률이 급상승할 때 그녀는 오히려 대량실업을 유발시켰다. 공
무원을 반으로 줄이고, 국영기업을 민영화했다. 기업에게 인력감축
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라고 독려했다. 국제경쟁력이 생기자
달러가 들어왔고, 달러가 들어오자 고용이 창출됐다. 영국 정부가
나서서 외국 업체들을 유치했다. 행정을 영국정부가 대신해줄테니
하루라도 빨리 공장 문을 열어달라고.

  IMF 체제하에서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 실업자가 늘 수밖에 없다
고 믿는 사람이 많다. 이는 고정관념이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해
결책도 있다. 단지 창의력이 모자랄 뿐이다. 그리고 그 창의력은 고
정관념이 가로막고 있다. 우리는 ‘품질을 높이면 원가가 상승한다’
고 믿고 있다. 이는 고정관념이다. 일본인들은 이 고정관념을 깼다.

  여기에는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품질이론의 대가인 ‘데밍’ 박사
의 가르침이 있었다. 통계학자인 데밍 박사는 일본 품질관리의 할
아버지다. 또 다른 통계학자인 일본의 가오루 이시카와 박사와 다
구치 박사는 일본의 설계능력을 미국보다 한 단계 상위로 발전시킨
품질관리의 아버지들이다. 그들은 품질을 향상시키면서도 원가를
내리는 방법만이 일본인들의 살 길임을 실제사례를 통해 설득했다.
그래서 일본의 제품 경쟁력이 세계 최고가 된 것이다.

  마치 품질향상이 반드시 원가상승을 의미하지 않듯이, 구조조정
이 반드시 대량실업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려면 감봉주의 일
변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일거리를 창출해야 한
다. 제1단계는 기업의 노력이다. 과감한 리엔지니어링을 감행하자.
이 과정에서 전문가의 간단한 코치는 엄청난 위력을 갖는다. 그러
면 대량의 ‘잉여인력’이 생긴다. 그래야 기업에 경쟁력이 생긴다. 이
대량 잉여인력을 문밖으로 내보내면 실업자가 생기고, 이를 다른
데 활용하면 경쟁력이 생긴다.

노동시장 유연성과 대량실업은 별개문제

  ‘감원’하기 전에 기업은 두 가지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하나는
‘업종창조’이고, 다른 하나는 ‘제품창조’이다. 일본에서는 광업을 하
던 사원들이 일류 레저산업을 만들었다. 바로 하와이언스파의 경우
이다. 이 업체는 세계적인 회사이다. 파산 직전에 사원들이 분임조
를 만들어 ‘각자 뿔뿔이 헤어지기 전에 무엇을 하면 좋겠는가’에 대
해 열심히 아이디어를 냈다. 그 결과 레저산업이 탄생했다. 가족들
까지 달려들어 혹독하고 철저한 서비스 훈련을 받았다.

  미국 3M사의 사례도 있다. 마음에 맞는 사원들이 분임조를 만들
어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다. 회사가 이들에게 1시간씩 내주었
다. 그들은 여기에 그들의 시간을 보탰다. 이들의 노력으로 매년
제품종류의 30%가 새롭게 탄생한다. 제품 아이디어만 있으면 기존
기술만 응용해도 수많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이렇게 노력한다면 우리나라에는 정말로 개발할 상품이 많다.
미국에서는 이미 포화상태에 있는 ‘방식산업’도 우리에게는 전혀
개발되어 있지 않다. 철조물들이 부식하기 때문에 붕괴사고가 많은
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일에 관심 없어 한다. 하던 일만 계속하
려 한다. 바로 이것이 게으른 자세다. 이러한 일마저 할 수 없는 사
원들이라면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경영진의 절대적인 리더십과 창의력이 필요하
다. 정부 역시 ‘창업자 광장’을 만들어 정보와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는 상시 시스템을 열어야 한다. 365일 언제라도 거기에 가면
정보와 아이디어와 세미나가 있는 그런 시스템인 것이다.

  제2단계는 정부의 노력이다. 첫째, 공무원 수를 3분의 1로 축소하
자. 둘째, 연간 5조의 국방비를 절약하자. 셋째, 예산사용을 과학화
하기 위한 제도개혁을 추진하자. 최소한 이 3가지 획기적인 개혁 없
이 무슨 열매가 열리겠는가. 획기적인 조치라야만 정부예산을 남길
수 있다. 이 예산을 가지고 공공사성을 확장해야 고용이 창출된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사업들이 있
다. 하나는 수십리 ‘한강변을 일류 공원화’하는 사업이고 다른 하나
는 ‘환경정화’사업이다. 이 두 가지 사업은 관광산업의 가장 큰 인
프라이다. 실업자를 앉혀놓고 지원금을 보상해주는 것이 얼마나 낭
비인가. 일거리도 없는데 막연한 취업교육을 시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실업자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찾자.

  적은 예산으로 많은 외화를 가장 빨리 벌 수 있는 것은 관광산업
과 환경산업이다. 현재까지 이들이 폐기된 것은 시스템 부재와 이
분야의 리더십 부족 때문이다. 관광산업은 14개 부처 장관이 서로
칼자루를 나눠쥐고 뒤엉켜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아무
리 관광산업을 외쳐대도 움직일 사람이 없다.

  가장 빠른 시일 내에 고용을 대량으로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은 선
진기업을 적극 유치하고 M&A를 개방하는 길이다. 과학경영에 훈
련된 선진국 경영진들이 직접 창출해내는 제1파의 고용창출도 있
지만, 이들로부터 두뇌기술과 선진경영의 노하우를 습득한 한국인
들이 창출해내는 제2파의 고용창출도 있다. 이는 한국 경영의 자생
력을 기르기 위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선진국 경영진이 한국기업의 경영권을 갖는 것은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환영의 대상이다. 문제는 우리의 환경이 그들을 오래 오래
유치하기에 조금도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데 있다. 국토를 가꾸고
밝은 물과 공기를 제공하고, 선진국형 시장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그래서 시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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