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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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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톱 민원 서비스, 청와대가 나서라

공장 하나를 짓는 데 336개의 행정서류, 46개의 법률, 58개의 절차, 51개의 협의부처가 줄줄이 매달려 있다. 행정에 밝은 어떤 이가 작은 식품공장 을 지으려다 고생만 하고 포기해 버렸다.

한국행정의 매운 맛을 본 그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생겼다. 바로 공장을 운용하고 있는 사람들이란다. 스위스 출신 비지니스맨이 싱가포르에서 10년을 살았다. 그는 싱가포르 정부가 국민생활을 너무 심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불평하면서 한국은 얼마나 자유로우냐고 했다.

싱가포르에서는 10년을 살았어도 거리에 침밷는 사람을 구경 못했는데, 한국에서는 길에다 담배와 껌을 버리는 모습을 하루에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비꼬는 얼굴이 아니라 진지한 얼굴이었다.

창피하긴 하지만 한국 행정의 위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수출을 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행정 절차를 겪어야 하는지 묘사해 주었다. 처음엔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 다음엔 자기가 한국인이라면 비지니스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흥분했다. 의욕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정부가 힘이 돼주지는 못할 망정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했다. 외국인이 참을 수 없어 하는 일을 우리국민은 인내하고 있는 것이다.

학문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문에 얽매이는 사람이 있다. 제도와 규정 역시 마찬가지다. 제도와 규정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이들을 수완 있게 이용해서 목표를 달성하는 공무원이 있는가 하면 거기에 얽매여 버린 답답한 공무원이 있다.

나쁜 공무원들도 있다. 제도와 규정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그것을 이용해서 부패를 일삼는 이들이다. 이러한 비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민원인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위해서는 현재의 [인허가 행정]을 [현장지도 행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신축되는 공장에 어떤 스펙의 환경시설이 설치돼야 하는지도 현장에 가야 가르쳐 줄 수 있다. 환경시설이 스펙대로 설치되고 있는 지도 현장에 가야만 감독할 수 있다. 현장 행정을 통해서만이 공해가 실질적으로 예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공무원은 책상에 앉아 문서에 도장만 찍어준다. 시간을 끌어 민원인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 후 도장값을 올려 받는다. 일단 거래가 끝나면 공장에는 눈가림용 환경시설만이 설치될 뿐이다.

신축되는 공장에 화재가 예방될 수 있는 지도 현장에서 지도되고 감독돼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책상에서 도장값으로 거래된다. 도장값을 받는 공무원은 많아도 현장에 나가 상식과 원칙에 따라 지도하고 감독할 수 있는 공무원은 없다. 의지도 없지만 우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지금의 규정과 조례들은 전문가들에 의해 과학적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공무원들이 도장값을 받기 위해 일부러 까다롭고 과도하게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따라서 공무원이 규정과 조례에 의해 [원칙대로] 하자고 나서면 겁먹지 않을 민원인이 없다.

그 원칙들은 민원인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과도하게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조직을 통합하고 몇 개의 절차를 생략해 준다고 해서 원스톱 민원행정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는 공무원들로 구성된 단일 민원창구가 만들어져야 한다.

규정과 스펙을 만드는 일은 외부 전문가들에게 맡겨져야 한다. 훌륭한 공무원이라면 이렇게 만들어진 각 분야의 규정들을 가지고 민원인을 종합적으로 지도하고 감독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의 법관이 모든 분야의 법을 통달하고 있듯이, 한 사람의 일반 공무원은 소방, 환경, 안전 등 수많은 분야에 대한 규정을 알고 있어야 민원업무를 원스톱으로 해결해 줄 수 있다.

민원을 맡은 일반 공무원은 기술공무원들을 각 부처로부터 그때그때 차출 받아 현장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마치 서양에서의 홈닥터와 같은 역할이다. 바로 이것이 전문 서비스를 경영하기 위해 고안된 매트릭스 운용방식이자 프로젝트 경영(Project Management)방식인 것이다.

지금의 와중에서 원스톱식 민원행정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청와대뿐이다. 각박한 국제경쟁에서 민원은 즉시 즉시 해결돼야만 한다. 아무리 간단한 민원이라도 수십 개 부서가 얽혀져 있다.

수많은 부서를 통할하여 민원을 즉시 즉시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은 오직 청와대뿐이다. 이를 위해 청와대는 각 부처의 공무원들과 외부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업무 개발팀을 임시 운용해야 한다.

행정개혁은 엄청난 과학이다. 과학의 출발점은 관찰이다. 민원행정을 관찰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방법은 현재의 민원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길이다. 이렇게 해서 민원행정 시스템이 개발되면 청와대는 이를 원스톱 민원창구 조직에 이관해야 한다. 만일 청와대가 이 일을 귀찮다거나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한국에서는 아무도 이 일을 해낼 수 없다.

2001.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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