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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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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실명제

지난 몇 해 동안은 음식점 식탁에서 이수시개가 사라졌었다. 식탁위에 놓여진 성냥개비가 이쑤시개 대용품으로 사용됐다. 성냥개비를 꺼내 끝을 뾰족하게 만들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여러 개의 성냥개비를 절단내고야 한 개의 대용품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들어 낸 성냥개비도 단단하지 못해 사용 중에 자꾸 부러진다. 한 개의 이쑤시개가 놓여질 자리에 조각난 성냥개비가 수북히 쌓인다. 손님도 불편하고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손해다. 한 개의 이쑤시개가 돼지 내장 속에 들어갔다면 지금은 한 웅큼의 성냥개비가 유황과 함께 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이쑤시개가 잔밥에 섞이지 않게 하려면 그릇을 놓아주면 된다. 우리사회에 불량정책이 난무하고 있다. 이를 막으려면 정책 실명제가 필요하다. 그러면 정책관들은 사전분석을 위해 외부두뇌를 갈구하게 될 것이다.

한강교를 보수하는 기간에는 한강교를 건너는 차량 수를 줄일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서울시가 움켜진 대안이 10부제였다. 한강교의 보수에 도움이 된다면 시민은 10부제가 아니라 5부제라도 기꺼이 협조할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시민을 쓸 데 없이 괴롭혔다. 강북에 있는 차가 동네병원에 가려면 한강교를 건널 필요가 없다. 강남에 있는 차가 난방용 기름을 사기 위해 동네 주유소엘 가려면 한강을 건널 필요가 없다. 이러한 차들은 한강 보수와는 무관한 차량들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 모든 차량을 잡느라 엄청난 공무원을 동원했다.

서울시 22개 구청에서 7,000명의 공무원이 한강교를 건너지 않는 10부제 차량을 잡기 위해 동원되고 있다. 과로에 순직하는 공무원이 생기고, 불만이 누적되며 민원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공무원을 이런 식으로 혹사하다 보면 그들의 몸과 두뇌는 형편없이 망가진다. 책 한권 읽을 시간이 없다. 사람은 키우면서 써야 한다.

서울시는 손가락에 박힌 가시를 꺼내기 위해 손가락 전체를 잘라내는 식으로 문제를 풀었다. 한강교를 통과하는 차량만 통제하면 될 일을 가지고 엄청난 국민시간을 낭비시키고 국민기분에 상처를 입혔다. 이로 인해 국민생산성과 품질이 저하된다. 기분상한 시민들이 그날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의 질이 훌륭할 수는 없는 것이다. 10부제를 한강교에만 적용했더라면 15개의 다리에 각각 1개조의 공무원만 파견하면 될 일이었다.

10부제를 실천하는 첫날부터 택시 합승도 철저하게 단속했다. 차를 처음으로 두고 나온 회사 사원들이 택시를 잡으려 애썼지만 합승단속 때문에 많은 곤욕을 치렀다. '카풀제'가 장려돼야 한다면 '택시풀제'도 장려돼야 한다.

미국 LA공항을 내리면 청색선이니 녹색선이니 하는 승합차가 있다. 자기가 가고자 하는 곳을 안내원에게 알려주면 어느 색 승합차를 타라고 일러준다. 차에 오르면 운전기사가 손님에게 목적지의 주소를 묻는다. 몇 명의 손님을 태운 후 운전기사는 로선을 만들어가며 손님을 목적지에까지 데려다 준다. 운전기사 자신이 아파트 문 앞에까지 손님의 짐을 날라다 준 후 돈을 받는다. 그 동안 다른 손님은 차에서 기다린다.

택시를 혼자 타고 가면 엄청 비싸다. 택시로 가면 70달러이지만 이렇게 가면 15달러면 된다. 승합차가 됐던 택시가 됐던 한국에는 이러한 합승개념의 대중 교통수단이 필요하다. 혼자 타고 가는 택시는 비싸도, 같은 방향으로 여럿이 타고 가는 택시는 저렴해야 한다.

10부제를 실시하려면 그날부터 대중 교통수단을 확장해 줘야 한다.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여줘야 시민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다. '택시풀제'는 이를 위한 가장 자연스러운 해결책이었다. 최소한의 성의 마져 보여주지는 않고 무조건 밀어부치는 자세는 시정자의 자세가 아니다.

버스전용차선제가 강행되고 있다. 여기에도 세 가지 개선점이 있다. 첫째는 공간의 활용문제다. 낮에는 푸른 차선이 놀고 있다. 좁아진 공간에서는 승용차들이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는 반면 푸른 차선에는 이따금씩 버스가 불과 몇 명의 손님을 태우고 지나간다. 이는 공간의 낭비다. 푸른 차선은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효율적으로 활용돼야 할 것이다.

둘째는 택시고객의 불편이다. 손님을 목표지점에까지 실어다주는 것이 택시다. 그러나 정해진 지점 이외에서는 도저히 택시를 세울 수 없다. 손님은 강제로 엄청난 거리를 걸어야 한다. 급한 사람이나 장애자에게 이러한 대우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날이 갈수록 발전돼야 할 삶의 질이 오히려 퇴화돼 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정자는 무능하다는 비판보다는 무자비하다는 비판을 받을 만 하다.

셋째는 푸른 선이 우회전 차량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어져 있어서 사고를 조장하고 있다. 푸른 차선대로 운전하다보면 우회전할 곳에서 우회전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 우회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다 보면 충돌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는 운전자들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시정이 아니라 횡포다.

선진국 공무원은 정책을 채택하기 전에 수학적 분석을 강요받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의 정책은 택시기사의 불평 속에 흐르는 상식보다 훨씬 더 못한 것이었다. 분석을 거치지 않고 정책을 만들어 내는 후진국적 관행은 세계화와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다.

2001.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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