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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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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영의 인프라

각박한 국제경쟁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민원업무의 속도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완화와 원스톱식 민원해결시스템이 강구돼야 한다. 지금의 와중에서는 단 한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청와대가 당분간 민원창구를 직접 맡는 방법이다. 민원에 관련된 수십 개 부서를 통할해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민원을 처리해 줄 수 있는 곳은 오직 청와대뿐이다.

청와대는 각부처 공무원과 외부 시스템 전문가들로 구성된 임시조직을 만들어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관찰은 언제나 과학의 시초이다. 민원업무를 현대화하려면 먼저 민원업무부터 관찰해야 한다. 민원업무를 관찰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방법은 민원업무를 직접 담당하는 일이다.

이렇게 해야만 원스톱식 민원시스템이 고안될 수 있다. 일단 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하면 이는 즉시 기존 정부부처에 이양될 수 있다. 청와대가 이를 어렵다거나 귀찮다고 생각한다면 한국의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다.

세계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조직은 시험평가 기구다. 중소업체가 아무리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 새로운 부품을 개발해내도 이에 대한 성능과 신뢰성을 증명해주는 기구가 한국엔 없다. 이로 인해 대기업은 계속해서 외국부품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

한 나라의 산업기술은 시험평가 능력 이상 발전할 수 없다. 선진국 약품은 선진국이 보유하고 있는 시험평가 능력에 대한 공신력 때문에 수출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약품엔 공신력이 없다. 한강 다리를 건설하는 기구는 있지만 그 다리의 안정성을 평가할 능력은 없다. 외국에서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와도 정부에는 이의 유해성을 평가할 수 있는 시험평가 능력이 없다.

아현동 사고에서 보듯이 가스시설은 건축해도 안전성을 평가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우리는 도로와 항만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만 사회간접자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하드-인프라보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인프라이다.

한국의 어느 한 소형업체가 군사장비 부품을 만들었다. 군에 납품하려고 애를 썼지만 한서는 아무도 부품성능을 증명해 줄 수 없었다. 그 부품은 미국에 수출되었다. 한국군은 그 부품을 다시 미국으로부터 역수입해왔다. 그러나 수입가는 수출가의 20배였다. 시험평가 능력의 부가가치는 이렇듯 큰 것이다.

둘째는 업체간의 비대면 결제를 강제화하기 위한 기구이다. 외국업체에 지불해야 하는 돈은 정확한 날짜에 지불해 주면서도, 국내 업체에게 지불할 돈에 대해서는 진을 빼고 있다. 돈을 몸소 받으러 다니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교통비는 년간 20조에 이른다. 말로는 국민생산성에 대해 강조하면서도 이러한 낭비는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창업을 하고 싶어도 수금하는 일이 엄두 안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소업체의 부도 문제도 바로 이 망국적인 수금문화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수금 대행기관을 만들어 놓고 90일이 지나도록 갚지 않는 업체에 대해서는 신고를 받도록 해야 한다.

일단 여기에 신고된 업체는 신용부재 업체로 분류돼 은행에 통고돼야 한다. 이러한 업체는 은행돈을 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에는 D&B라는 신용평가 기관이 있다. 여기에 가입하면 미국의 모든 회사에 대한 신용정보를 알 수 있다. 특히 수금대행 기관에 몇 번 신고되었는가에 대한 정보는 그 업체에게 치명적이다.

많은 돈을 들여 도로와 항만은 건설하면서도, 돈한푼 들이지 않으면서도 그 보다 수십 배의 생산성을 보장할 수 있는 [비대면 자금결제] 시스템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셋째, 국토설계 기구이다. 제주도는 하와이 이상으로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그러나 제주도를 국제수준으로 개발하는 일은 제주도의 재정과 안목의 범위를 넘는다. 따라서 지금 제주도는 무분별한 인허가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 국토건설에는 최고의 예술과 과학이 접합돼야 한다. 이러한 일은 지금의 건설부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넷째, 국민생명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전문화된 사고예방기구이다. 미국에는 이를 위해 2,500명으로 구성된 [비상관리청](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이 있으며 다른 선진국에도 이러한 기구들이 있다.

우리는 지난 2년간 끔찍한 사고를 수없이 당했으면서도 사고를 예방하고 사고현장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기구를 만들지 않고 있다. 이러한 기구 없이는 앞으로도 똑 같은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사고는 의식개혁으로 예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과 시스템에 의해서만 예방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조직의 효율성은 과 단위의 인력 수에 의해 판결나게 될 것이다. 과 단위에 인력이 많으면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해 자기 손으로 보안을 유지하면서 제도와 정책을 만들고 규제를 강화할 것이다.

그러나 과원 수가 적으면 그들은 할 수 없이 전문 두뇌집단에게 도움을 청하게 될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이점을 보장해 준다. 하나는 이 사회를 전문 두뇌집단에 의해 운영한다는 이점이며, 다른 하나는 공무원과 두뇌집단의 접촉에 의해 공무원의 능력이 날로 향상돼 간다는 이점이다.

200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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