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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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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통일을 감당할 능력 있는가

1970년대초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공항에 40대 미국인 부부가 마중을 나왔다. 내가 미국생활에 원만하게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고싶어 스폰서를 자청했다는 것이다. 아파트를 얻는일, 자동차를 사는 일, 면허증을 따는 일, 집기를 장만 하는 일들을 일일이 돌보아 주었다. 이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요했다. 마을부녀회관 옆에 커자란 창고가 있었다. 거기에는 주민들이 쓰다가 기증한 헌 집기들이 가득차 있었다. 침대, 전등, 책상, 소파, 부엌도구 등의 가재도구 일체였다.

스폰서는 주말이면 가끔 가정파티를 열어 그의 친구들을 초대해주었다. 미국생활의 다양성을 스폰서 혼자 말해주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파티에 초대된 미국 친구들이 십시일반식으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이는 단시간내에 미국생활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더러는 계속적으로 친구가 돼주었고, 더러는 면허증을 따는 일에 안내자 역할도 주었고, 더러는 가구를 옮기는 데 트럭도 내주었고, 더러는 사고를 당했을 때 먼길에까지 와서 차를 견인해주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피부색갈이 다양한 이국인들에 대해서까지 이와같이 스폰서 시스템을 운용해오고 있다. 년간 미국으로 흘러드는 이민과 유학 인구는 수만명이다. 월남과 캄보디아로부터 대량으로 유입된 피난민들도 있다. 물론 대량난민에 대해서는 정부의 집중된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그 후부터는 스폰서들이 담당했다. 미국인과 분쟁이 붙으면 스폰서가 대신 나서준다. 미국인들은 자기 자식을 몇 명이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나라가 버린 고아와 장애인을 입양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통일이 민족의 염원이라며 북한동포를 위해 울면서 기도는 하면서도 바로 그들 옆에 살고 있는 몇 명 안되는 탈북동포들을 못본체 하고 있지 않은가. 탈북자들은 고사하고 이웃 고아들, 장애인, 불우이웃들까지 외면하지 않는가.

공무원들은 북한을 흡수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그들은 북한 주민은 커녕 말이 잘 통하는 남한 국민에게까지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사람들이 아닌가. 어느 신도시에 정형외과 병원이 있다. 거기에는 주로 신음하는 환자들이 실려온다. 주차장이 없다보니 병원 뒷문길에 주차들을 했다. 평상시에는 그런 주차가 허용됐다. 그러나 그들은 신정 바로 전날에 갑자기 주차벌금 딱지를 붙였다. 명절조차 제대로 지낼 수 없이 고통받고 있는 환자 가족들에게 위로는 못해줄 망정 이 무슨 적대행위란 말인가. 바로 이것이 한국공무원들의 현주소다. 이렇게 체계도 없고 훈련돼있지도 못한 공무원들을 가지고 어떻게 북한 주민을 보호할 수 있단 말인가.

통일업무를 관장하는 통일원 공무원들은 탈북동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가장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마져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많은 가정들이 구입한지 얼마 안되는 훌륭한 가재들을 쓰레기로 내버리고 있다. 구청이나 동단위 부녀회에서 이들을 수집해 놓으면 못사는 사람들과 탈북자들에겐 엄청난 혜택을 줄 수 있다.

많은 탈북동포들이, 잘사는 아파트의 쓰레기장만 뒤져도 살림을 장만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통일원 공무원들은 부녀회를 이런 일에 동원할 생각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버림받는 모습을 보면서도 스폰서 시스템 하나 가동할 생각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이같이 800명 정도의 탈북동포를 포용할 수 없으면, 통일을 논할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닌가.

예산만을 가지고, 또 공무원의 손만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자세는 무능함의 상징이다. 대통령이 공무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듯이, 공무원들도 국민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우리나라 대통령과 공직자들은 툭하면 "국민의 협조"를 부탁한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어떻게 협조해 달라는 구체적인 역할을 명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북한경제는 남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과 직결돼있다. 북한경제가 붕괴되고 있는 것에 쾌감마져 느끼는 국민들이 많다. 그들의 눈에는 그것이 바로 흡수통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당정 북한의 경제적 위기는 남한의 군사적 위기로 직결된다.

우리와 국제사회가 인도주의라는 명분을 걸고 북한을 돕는다 해도, 오지의 북한주민이 느끼는 체감지수는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 도움이란 명분치레에 불과할 수 밖에 없다.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북한이 자생력을 갖도록 방치하는 것뿐이다. 북한은 금강산을 개발하고, 100만 군사력을 근로인력으로 수출하기만 해도 충분히 먹고산다. 이러한 길은 남한만이 열어줄 수 있다. 지금 처럼 달러 포대를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사이 좋은 두 개의 국가로 갈라서는" 평화공존 시스템을 제안하는 일이다.

그러면 북한은 서방과의 교류를 통해 스스로 남한과의 교류에 대한 필요성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선점한다는 생각은 좁은 생각이다. 북한을 다른 선진국들이 선점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이익이 된다. 첫째는 다른 나라들과의 교류를 통해 북한은 "그래도 동족인 남한이 최고"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고 둘째, 값비싼 인프라를 선진국들이 설치할 수 있을 것이며 셋째, 선진국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은 쉽게 새로운 문물에 익숙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북한이 잘살게 되고, 남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 아닌가. 김정일 정권이 존재하는 한, 북한은 남한과의 교류를 허용하지 못할 것이다. 남한에 개방하면 "남한주민이 굶주리고 있다"는 김부자의 거짓말이 탄로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개방해야 자생력을 갖을 수 있다. 그러나 남한에게의 개방은 김정일에게 독약이다. 북한이 개방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만큼은 그들에게 개방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2000. 5. 21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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