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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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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에 대한 한국인들의 그릇된 정서

통일에 대한 한국인들의 정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통일이 된다는 비전도 없지만 설사 통일이 된다 해도 통일비용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통일을 반기지 않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통일이 왜 절실한 민족의 염원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속으로는 통일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주위로부터 반통일 세력으로 지목될가봐 말을 삼간다. 더러는 단지 애국심을 표하기 위해서라도 통일을 외친다. 막상 북한을 탈출해온 사람들과 이웃에 같이 사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북한인 이웃이 아쉬운 소리를 해올까 걱정돼서다.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좋지 않은 정서가 있다. 같은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싫어하는 정서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교포들 중에는 동족의 약점을 잡아 이민국에 고발하는 사람들이 많다. 관광지에서 한국 사람이 낯선 한국 사람을 만나면 서로가 외면한다. 아마도 많은 한국인들이 국제 매너상 낯뜨거운 행동을 많이 하고 불신받는 행동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북한 사람들은 너무나 오랜동안 페쇄된 사회에 살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부끄러운 행동들과 불신받는 행동들이 더욱 증폭될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남북한 사람들은 비록 하나의 국가로 통일 됐다 해도 잘 어울리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따로 따로 사는 것이 남북한 주민의 행복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 한민족은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3개의 형제국으로 나눠져 살았다. 이를 삼국시대라고 불렀다. 삼국이 차지했던 영토는 중국의 흑룡강지역, 요동반도, 만주지역에 걸쳐 매우 광활한 땅이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신라국의 김춘추 왕이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3개국을 1개국으로 통일했다. 통일의 대가는 그 넓은 땅을 중국에 내주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넓은 땅을 다 남에게 내주고 지금은 좁은 한반도에서 북한과 남한이 나눠 살고 있는 것이다. 옛날엔 큰 3국시대, 지금은 작은 2국시대인 셈이다.

한국인들은 김춘추를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위인으로 배웠다. 그러나 나는 그를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이 통일이지 그는 자기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그 넓은 땅을 다 남에게 내준 사람일 뿐이다. 그 결과 그는 고려와 이조에 걸친 천여년의 세월동안 한민족으로 하여금 내내 중국에 조공이나 바치며 살게 했다.

통일이 안됐다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지금까지 그 넓은 땅을 나눠가지고 나란이 살고 있을 것이다. 그때 만일 세 개의 형제국들이 각기의 주권을 존중해주고 서로 침략하지 않기로 평화협정을 맺고 외침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대응해왔다면 외세에 시달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오랜 기간 민족적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결국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가들의 파워게임이 민족을 망칠 뿐이다. 남한의 위정자들은 외국에다 땅을 주고라도 자기들이 정권을 잡아야 하겠다는 소아적 발상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 설사 여당이나 야당이나 북한을 그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 했다 해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바로 그것이 한국 역사가 보여준 정치인들의 됨됨이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김춘추에 의한 통일보다는 차라리 3개의 형제국가들이 사이좋은 이웃국가로 남아있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똑같은 논리로 지금도 남북한은 통일을 시도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두 개의 사이좋은 이웃국가로 갈라서는 것이 현명하다. 옛날엔 통일의 대가로 영토를 내주었지만 지금은 경제와 삶의 질을 내주고 있는 것이다. 통일하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남북한은 서로 군사비만 쓰다가 다른 나라의 경제적 식민지가 될 것이다.

통일이 안될 것이라는 건 지금의 위정자들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선거 표를 의식하면서 세상을 살아왔다. 그들에겐 대다수 국민들의 감상적인 통일정서를 거역할 수 있는 용기와 설득력이 없다. 그래서 남한의 정치꾼들은 국민을 계도하는 게 아니라 국민 정서에 편승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라면 국민의 잘못된 정서나 분석되지 않은 시각을 바로 잡아줘야 한다. 분석되지 않은 국민 정서에 야합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아니다. 대다수 국민은 통일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믿고 있다. "원래 우리는 하나였다. 외세가 우리를 갈라놓았다. 어떻게든 우리는 다시 합쳐져야 한다"는 식의 극히 단순하고 당위론적인 통일관을 가지고 있다.

통일이 되면 남북한 주민들이 얼싸안고 뛰기도 하고 춤도 추는 그런 식의 환상적인 통이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인위적인 통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또 꼭 해야만 되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나는 통일을 싫어한다. 통일이 되면 남북한은 더욱 어려워 지기 때문이다.

국부를 나눠갖기 때문에 더 못사는 게 아니라 생각의 차이, 습관의 차이 때문에 분단시보다 더 많은 혼란이 생길 것이다. 남한도 열다섯 개의 지방정부로 분권화해서 제각기 독립채산제를 지향하는 마당에 서울 정부와 평양정부를 무엇 때문에 합치려 하는가? 같은 민족끼리 국경선을 가운데 두고 형제 처럼 지내면 그게 바로 통일 아니겠는가? 남북한 사람들은 통일에 대한 개념부터 바꿔야 한다. 남북한에 한 사람만의 대통령을 갖는 것이 통일이 아니라 사이좋은 이웃 국가로 잘 지내는 것이 통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대개 구체성을 상실하고 있다. 통일을 안아들일만한 능력이 없으면서 통일만 되면 한국도 대국으로 발돋음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다. 기술력과 경제력은 없으면서 한국도 곧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 50년간 미국에 안보주권을 의탁해왔다. 50년이 지난 지금 그 안보주권을 되찾아오기는 커녕 가지고 있던 경제주권까지 내주고 말았다. 남한 반쪽만의 사회를 가지고도 잘 나가던 국가를 이 지경으로 망쳐놓았다. 사회 경영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통일돼서 싫어할 사람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막상 통일이 돼 보자. 이질 사회에서 살아온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매일 같이 분란을 일으킬 것이다. 생각이 다르면 부자지간에도 한집에서 살지 못한다. 오히려 따로 살아야 부자의 정이 유지된다. 통일이라는 것도 이와 유사한 것이다.

투-코리아로 굳어져버린 미국의 정책은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준러시아급으로 부상해버린 인민군을 대적할 수 있는 강군은 누구도 만들 수 없다. 남한은 북한의 인질이 돼버렸다. 이것이 한국안보의 현주소다. 우리는 통일을 꿈꿀 것이 아니라 통일당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차려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남침의 길을 막으려면 통일의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한다.

많은 이들은 평화공존을 통일을 위한 과도기적 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틀린 생각이다. 남북한이 과도기적 평화공존 기간을 20년으로 정했다 가정해 보자. 이는 20년후부터 통일 문제가 다시 거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그 20년간은 평화의 기간이 아니라 군비경쟁 기간이다. 20년후에 통일당하지 않기 위해 쌍방은 20년간 군비를 증강시킬 것이다. 따라서 평화를 택한다는 것은 영원히 통일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한다. 남북한은 하루라도 빨리 두 개의 독립국가로 갈라서야 한다.

매우 아이러닉한 것은 영원히 갈라서야 통일이 빨리 온다는 사실이다. 갈라서야 제몫이 보장되고, 제몫이 보장돼야 평화가 오고, 평화가 와야 간첩이라는 의심을 받지 않고 남북한 주민이 대량으로 국경을 넘나 들게 된다. 그게 바로 통일이 아닌가? 통일은 목표가 아니라 평화라는 나무에 자연스럽게 열리는 열매다. 평화롭게 살다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월과 하늘에 의해 저절로 오는 것, 바로 그것이 통일이다.

2000. 5. 21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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