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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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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산업 발상을 바꾸자

세계적으로 관광 산업은 둘째로 큰 산업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이 커다란 시장을 방치하고 있다. 얼마나 방치했는지는 국가의 관문인 김포 공항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웃 싱가포르 공항 시설이 특급 호텔 로비라면 김포공항은 고속버스 터미널쯤 된다.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우선 공항의 택시 운영 시스템부터 선진국형으로 바꿔야 한다.

한국이 관광지로 인기를 얻으려면 종합적인 마스터 플랜이 필요하다. 호텔 시설과 서비스는 촌스러운 반면, 요금은 살인적이다. 미국에 가면 40달러의 방도 매우 깔끔하고, 100달러의 방은 우리 나라 특급 호텔보다 좋다.

미국의 해변은 어디를 가나 물을 떠마시고 싶을 만큼 명경지수다. 항구와 부두의 물도 그렇다. 항구 도시의 부두 위에는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물 속에 기둥을 세워 그 위에 망루처럼 지어진 고급 음식점 분위기는 어디를 가나 낭만적이다.

그런 곳에서 가장 비싼 메뉴와 가장 비싼 포도주를 주문해도 커플당 70달러면 팁까지 해결된다. 건물 밑을 찰랑거리는 바닷물은 기름 한 방울 없이 맑고 깨끗해서, 흰 모래 위를 비치는 불빛만으로도 "또 한 잔의 포도주"를 유혹케 한다. 비싼 정화 시설을 부담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깨끗한 환경을 위해, 절대로 바닷가에 시설을 지을 수 없게 한 것이다.

미국내 중국 음식은 어디에 가도 맛있고 풍성하지만 일인당 10달러면 팁까지 해결된다. 싱가포르에도 이 정도의 값이면 맛있는 음식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정도의 가격으로는 매운탕과 갈비탕 같은 게 고작이다. 이런 음식으로 어떻게 관광객을 유혹한단 말인가.

우리는 관광지를 역사적 유물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관광지로 이름난 싱가포르만 하더라도 관광 대상은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도시 그 자체다. "경주"는 신라의 수도였다. 왜 과거의 수도가 현재의 수도보다 더 부각돼야 하는가.

한국에서 가장 훌륭한 관광 명소는 서울이어야 하며, 서울 내에서도 고궁이 아니라 도심이어야 한다. 따라서 서울의 도심에다 한국의 문화를 심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살벌한 거리를 낭만과 여유가 숨쉬는 사람의 거리로 만드는 일이다.

싱가포르에는 똑같은 건물이 없다. 건물은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예술적인 조각품이다. 거기엔 코너 문화가 발달돼 있다. 건물의 코너 코너에마다 조각품이나, 분수, 화초가 가꿔져 있다. 도시 전체가 정원이다.

차를 타는 것보다 걷는 것이 더 재미있다. 육교들은 아치형에 꽃들로 장식돼 있어 일부러라도 걸어보고 싶어지게 한다.

도시의 거리 거리마다 "하커 센터"라는 야외 공동 음식점들이 있다. 공간의 중앙에는 음식과 음료를 파는 부스들이 늘어서 있고, 공동 공간에 설치된 테이블에는 비치 파라솔들이 꽂혀 있다.

아무 탁자에 앉아 전문점을 하나씩 돌면서 원하는 것을 테이블로 가져다 달라면 여러 가지 음식이 거의 동시에 도착된다. 길을 걷다가 다리가 아플 때쯤이면 이러한 곳이 나타난다. 마시는 것, 먹을 것도 중요한 것이겠지만, 분위기 자체가 어딘지 모르게 사람의 마음을 감싸준다.

월남의 사이공 거리를 다녀본 사람들은 그곳을 다시 가고 싶어한다. 사이공 시는 택시로 다니는 데가 아니다. "람브레타"라는 세발 자전거를 타야 맛이 난다. 자전거처럼 사람이 발을 젓는 것도 있지만, 동력을 이용하는 것도 있다. 세발 자전거 앞에는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바구니가 있다. 땅에 닿을까 말까 하는 높이에 편히 앉아 한가롭게 거리를 구경할 수 있다. 아무데서나 세워서 사진을 찍거나 쇼핑을 할 수 있다.

인도는 검푸르게 우거진 가로수로 덮여 있고, 그 밑에 설치된 비치 파라솔 밑에서 사람들은 한가롭게 간식을 즐긴다. 도시 곳곳에는 그 나라 특유의 여흥 행사들이 제공된다. 어린이 프로들도 많다.

독일의 거리도 이러한 세발 자전거 문화촌식으로 가꿔질 것이라 한다. 교통과 환경, 관광과 시민 문화에 대한 문제들을 일거에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서울 거리와 교통은 개념 자체부터 전면적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서울 거리를 몇 개 선정해서 모델로 가꿔볼 필요가 있다. 서울의 거리는 자전거, 골프카트형 차량, 람브레타식 세발 자전거 들이 다니는 낭만의 거리로 변화시키고, 곳곳에 공간을 마련하여 문화 행사와 거리 토론회 등 볼 거리들이 스스로 채워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교통 문제와 공해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면서 서울을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가꿀 수 있다.

워싱턴 D.C 의 포토맥 강에는 벚나무가 밭을 이루고 있다. 해마다 벚꽃이 필 때면 도시인들의 마음이 들뜬다. 벚꽃이 절정에 이를 때면 이틀 간의 벚꽃놀이 축제가 열린다. 불꽃놀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가져간 맥주와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제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벚나무 아래에는 조명이 설치돼 있고, 그 조명에 비친 벚꽃들은 가히 환상적이다. 미국인들은 자존심이 없어서 일본 국화를 그토록 좋아하는가.

우리 한강은 왜 벌거숭이로 방치돼 있는가. 수십 리 뻗어나간 한강변에 벚나무 밭을 만들자. 단풍나무, 은행나무, 개나리, 장미도 심자. 그리고 그 꽃나무 밑에는 조명을 심자. 워싱턴 D.C.의 포토맥 강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대동강 물을 팔듯이 한강물은 달러 박스가 될 것이다. 삭막한 콘크리트 숲 사이를 떠도는 초라한 유람선이 무슨 달러를 벌어들인단 말인가. 시민들이 한 곳에 북적대지 않으면서 풍부한 정원의 공간에서 여유롭게 정서를 함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벚꽃 하나 구경하자고 온 시민이 여의도의 밤을 메웠다. 얼마 안 되는 벚꽃이지만 그나마 불빛이 없어 캄캄했다. 광고판 불빛에 비친 몇 그루의 벚나무 밑에 사람들이 몰려 사진찍기에 바빴다. 벚꽃 구경이 아니라 전쟁이었다. 시민은 세금만 냈지 누구로부터도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 훌륭한 한강을 삭막하게 방치하고 있는가.

정원사로 하여금 꽃나무 설계도를 그리게 하고, 공무원으로 하여금 나무 심을 장소를 설계도에 따라 표시하게만 하면, 모든 시민들이 나와서 나무를 심어줄 것이다. 환상적인 꿈의 정원을 가꾸는 일에 동참하지 않을 시민은 없을 것이다.

단양의 고수동굴은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을 한번만 다녀온 사람은 다시는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가는 길의 도로 표지가 엉망이고, 동굴 앞에는 냄새가 진동한다.

공동변소는 관리조차 되지 않아 악취가 날아다니고, 동굴 앞 음식점들은 관광지에는 어울리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 훌륭한 천연 동굴을 이렇게 방치하면서 도대체 무엇으로 관광 진흥을 한단 말인가.

제주도는 하와이에 못지 않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그 섬은 아깝게도 가꿔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코묻은 돈에 의해 황폐화되고 있다. 그 섬은 세계적인 정원사와 시스템 설계가들을 부르고 있다. 자연은 정원으로 설계되고 시설은 낭만과 운치와 품격이 배어 있게 설계돼야 한다.

해안에는 세계적인 안목을 채워줄 수 있을 만큼의 아담한 시설들만 수용하고, 해안의 모든 시설물들은 완벽한 정화 설비를 갖추게 해야 한다. 지금의 제주도 해안은 악취가 풍긴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해수욕을 즐기며, 스너클링, 파도타기, 낚시 등 다양한 해변 놀이를 즐길 수 있겠는가.

언론들은 관광 산업의 실태와 문제점을 분석해서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보완 대책을 마련하라고 질타하지만, 관광 사업에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부 부처가 14개씩이나 뒤엉켜 있으니, 그중에 어느 부처가 나서서 관광 진흥을 한단 말인가. 식수 문제로 국민의 불만이 고조되고, 나라가 떠들썩해도, 5개부처가 동시에 칼자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지 않은가.

관광 산업은 굴뚝 없는 산업이다. 외국인들이 많이 오면 우리의 문화도 선진화된다. 우리는 과거 박 대통령이 이룩한 관광 기반마저 송두리째 허물어버린 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관광 산업을 아예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적인 식수원과 아름다운 강산을 물려받았다. 물려받은 자산마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기술 인프라를 가지고 어떻게 창조적인 현대 산업을 육성한단 말인가.

툭하면 5천년 역사와 과거 찬란했던 문화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문화가 아무리 찬란해도 현재의 서울 문화가 후진돼 있으면 과거의 금송아지일 뿐이다. 현재의 서울 문화가 아름다울 때 비로소 과거의 문화도 돋보이는 것이다.

"문화"하면 왜 "과거"만 떠올리는가. 현재의 문화를 가꾸지 않으면, 미래의 문화도 없는 것이다. 대통령은 현재의 문화 수준을 끌어올리는 가장 훌륭한 교사여야 한다.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없으면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관광 명소를 개발하고 시설을 깨끗이 유지한다 해도 국민의 문화 수준과 국민 매너가 국제적인 것이 되지 않으면 관광 산업은 단발성에 그치고 만다. 국민 매너는 기초 교육 과정과 평생 교육 수단을 통해 끊임없이 게양돼야 한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사람"이 가장 훌륭한 관광 자원이라는 사실에 착안 해야 할 것이다.

2001.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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