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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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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막 쓰는 정부

정부가 1달러를 쓰면 얼마의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가. 정부가 보유한 국영기업체들의 돈버는 실력은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다. 1달러를 쓰면 아마도 50전 이하를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지하철 공사만 하더라도 누적적자가 3조 5천억 원이며 여기에 매년 8,000억 원 이상의 빚을 더해가고 있다.

청주공항 건설에 700억 원이 투입됐지만 단 한 대의 비행기도 뜨고 내리지 않는 상태로 방치돼 있다. 평택항구에 3천억 원이 투자됐지만 을씨년스럽게 방치돼 있다. 시화호에 2조 단위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애물단지로 방치돼 있다. 정부가 하는 사업은 거의가 다 부실공사다. 그래서 해마다 빚이 누적되고 예산이 증가하는 것이다.

GNP라는 것도 언제나 부풀려져 있다. 짓다 말고 방치해버린 건물, 지어놓고 쓰지 않는 시설 및 공단들에 투입된 돈도 GNP로 계산되고 있다. 공공근로자들이 동네에 심은 코스모스도 GNP로 계산되고 있다. 선진국들이 100년의 수명을 갖는 교량을 건설할 때 우리는 겨우 20년도 못 가는 교량을 다섯 번씩 건설한다. GNP가 5배로 부풀려지고 있는 것이다.

농어촌이 1달러를 쓰면 얼마의 가치를 창출할까? 이에 대한 통계는 없지만 저자의 생각으로는 단 30전을 창출해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지난 7년간 농촌에는 70조라는 엄청난 빚이 누적돼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일반 사기업은 어떨까? 한국의 사기업들 중에 흑자를 낼 수 있는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대우의 경우를 보자. 60여 개 기업들 중에 흑자를 내는 기업은 사실상 단 한 개도 없었다. 현대그룹을 보자. 내부 소문들에 의하면 현대나 삼성 등이 가지고 있는 60-70여 개의 기업들 중에서 흑자를 내던 기업은 불과 3-4개 기업뿐이다. 그러면 90% 이상의 대기업들이 적자를 내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적자를 내는 기업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문을 닫아야 할 때 조용히 문을 닫고 사라져 가는 기업들이 있다. 이러한 기업은 국민에게 빚을 떠넘기지는 않지만 종업원을 실직자로 만든다. 이를 지진 강도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진도4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러한 기업들은 지난해 IMF 고금리를 맞아 이미 도산돼 버렸다.

진도 7의 기업들이 있다. 쓰러지기 전에 욕심 껏 빚을 지고, 그 빚을 은행에 전가시킨 기업들이다. 한보, 진로, 동아, 해태, 삼미 등 최근 수년간 쓰러진 대기업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 빚은 정부가 갚아주었고, 정부가 갚아준 돈은 결국 국민이 부담하고 있다.

진도 20의 기업들도 있다.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빚을 눈송이처럼 키워 가는 기업들이다. 진도 4와 진도 7의 기업들은 이미 쓰러지고 없다. 지금 살아있는 기업들의 대부분, 특히 대기업들의 대부분이 진도 20의 기업들이다. 이번 대우의 경우를 보자. 대우에서 가장 크고 잘나간다는 12개 기업들이 진 빚이 63조원이고 그중 18조에 대해서는 이자조차 내지 못했다.

대우구룹은 망하기 직전 1년간 17조원의 빚을 더 얻어 그 돈을 가지고 이자를 냈다. 이러한 빚을 정부가 나서서 감면해주고, 탕감해주고, 공적자금 등으로 메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대우는 완전히 정부 또는 집권당의 소유가 됐지만 그 떼인 돈은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또 전가된다.

이런 워크아웃 기업들을 구태여 집권당의 소유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두 가지 개연성 때문이다. 하나는 그런 기업들의 간부자리를 집권당 사람들로 메울 것이라는 데 대한 개연성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 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이 대량으로 염출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대한 개연성이다. 이런 기업들은 아마도 진도 40은 될 것이다.

405개의 공기업과 또 다른 400여 개의 국유화된 경영 체들이 모두 진도 40의 기업들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도 진도 40의 경영 체들이다. 아직도 살아서 빚을 누적시키고 있는 대부분의 사기업들도 진도 40의 기업들이다. 이들이 진 빚이 국가적으로 840조라고도 하고 1,000조를 넘는다고도 한다.

5대 대기업이 진 빚만 해도 200조를 넘는다고들 하지만 대우의 경우처럼 실사를 해보면 그들의 빚은 더 늘어날 것 같다. 대우 혼자서 진 빚 만해도 95조나 되며, 아직도 숨겨진 빚이 더 있을 것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이들이 돈을 벌어 이 빚을 갚을 날은 사실상 까마득해 보인다. 지금까지의 경영실력을 가지고는 해마다 빚을 더 보탤 뿐 빚을 갚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구조조정의 핵심은 돈을 펑펑 풀어놓는 게 아니라 은행, 기업, 정부가 어떻게 하면 투명한 경영을 하고 경영능력을 국제화시킬 수 있는가에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부실기업과 부실 은행에 공적자금만 투입해왔다. 빚은 아무리 많이 져도 정부가 갚아줄 수 밖에 없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부실 은행과 부실 기업은 더욱 더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관치 인사와 관치 운영이 과거보다 더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더 부실의 정도는 더욱 더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의 총체적 부실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또 다른 현상이 있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간지들을 보자. 5천억 원 이상의 빚을 진 일간지들이 꽤 된다. 빚 없는 일간지는 없다. 그 빚은 광고비를 많이 벌 수 있었던 좋은 시절에 진 빚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광고비가 예전의 절반도 안 된다. 일간지들의 고식적 경영능력을 가지고는 신문지를 팔아서 이렇게 큰 빚을 도저히 갚지 못한다. 여담이지만 지금의 언론들이 마치 재갈이 물린 것처럼 침묵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빚 때문이다. 그들의 운명이 네로의 엄지손가락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들 언론사들에게 일단 빚을 준 은행들은 매년 대출을 늘려줄 수밖에 없다. 갚을 능력 없는 회사에 해마다 빚을 키워주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일간지가 문을 닫지 않았기 때문에 은행 장부에는 "받을 돈"이라는 자산으로 계상돼 있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이미 떼인 돈"보다 더 악성 적이다.

떼일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빚을 더 내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폭발할 수밖에 없는 가스통에 가스를 더욱 충전시키고 있는 꼴이다. 이러한 기업들이 일간지뿐이겠는가? 대기업의 90%이상과 800여 개의 국영기업, 정부, 농어촌 모두가 이런 일간지와 같이 해마다 빚을 누적시키고 있지만 갚을 날은 없어 보인다. 결국 그 빚은 어느 날 또 공적자금으로 메워질 것이다.

2000. 5. 21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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