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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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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은 작품을 통해 세우라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 3개를 빌렸다. 두개는 잘 보았는데 나머지 한 개는 볼 수 없었다. 비디오 기계가 고장났다고 생각했다. 금방 빌려온 것이라 3개를 모두 비디오 가게로 돌려보내고 나머지 한 개는 기계고장으로 못 보았다고 했다.

돈으로는 반환이 안되니 나중에 다시 빌려 가면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런 일이 없도록 메모를 해놓겠다고 했다.

용산 상가에 비디오 기를 가져가 보니 기계에는 이상이 없었다. 테이프에 습기가 차서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비디오 가게에 들려 그 사실을 말해주니까 '다른 사람들은 탈없이 잘 보고 있는 테이프를 가지고 왜 당신만 탈을 잡느냐'고 했다.

가게에는 습기와 온도에 민감한 테이프를 잘 관리할 수 있는 특별한 설치가 돼있지 않았다. 단지 흔한 상가에 테이프를 진열해놓고 있으면서 테이프 관리에 이상이 없다고만 주장했다.

이러한 현상은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가게에서는 물론 대기업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들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이 자존심을 세우는 길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는 지금 한국인들이 수술해야만 하는 고질적인 병리현상이다. 이러한 매너를 가지고는 국제경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다. 동네에 마다 상냥하고 질 좋은 비디오 가계가 외국인에 의해 운영된다면 그들을 향했던 발걸음은 돌려질 것이다.

동네에서 불친절하다고 소문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집을 찾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행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존을 위협할 만큼의 손실을 유발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자기 돈으로 운영하는 비디오 가계 주인도 오도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손님을 잃는 행동을 하고 있다. 하물며 회사에 고용된 사람들은 더 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한국인들에게는 고객을 내쫓는 매너가 몸에 배어 있다. 이러한 매너는 거국적으로 고처야 한다. 과거 5-6공 군사정권들은 국민성만 탓하고 의식개혁만 높이 외쳤다. 그러나 유능한 지도자라면 이것을 국민적 질병으로 간주하고 하루 빨리 수술해야 한다.

한국의 경제는 돈을 풀고 이자를 내리고 약간의 규제를 푼다고 해서 소생되지 않는다. 고객에게 충실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실천시스템 없이는 국제경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다.

어린이에게 돈을 주고 연필과 책을 사주는 식의 여건을 조성해 준다해서 그 어린이가 공부를 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이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 국민들에게는 비지니스를 하는 방법과 매너를 교육시켜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간에 지혜를 나누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민 일반에 연구하는 분위기와 합리성이 존중받는 문화를 심어야 한다. 지금 각 정부부처에서 형식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의식개혁 실천계획은 대통령과 국민을 모두 속이는 일에 불과한 것이다.

옛날 박대통령 때에는 농촌을 번영시키기 위한 창의적인 방법들이 새마을 운동을 통해 격려됐다. 방방곳곳에서 창의와 성공에 대한 사례 담이 발표되었고 이들은 모범적인 개척자들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창의와 개척정신에 대한 국민적 열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이것은 생산성향상과 품질향상을 위한 리더십의 표본이었다.

박대통령이 했던 일이라고 해서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경제는 부활될 수 없다. 기풍진작이 없는 리더십이란 죽은 리더십이다. 이것은 일본 QCC에 대한 전국적인 열기와 유사한 것이었다.

박대통령은 일본으로부터 QCC를 배웠다. 그러나 그후의 지도자들은 '경제를 시스템 적으로 접근할 줄 모르는' 일부의 거시경제 학도들로부터 임금, 인프레, 고용, 물가, 금리와 같은 단순변수들에 대해 공부하기에 바빴다.

일본인들이나 미국인들은 무조건 고객의 불만을 수용하고 불편을 준 데 대해 오히려 사과한다. 몇 달 전에 미국 '데니스'라는 체인 음식점에 들렸다. 5명이 식사를 주문시켰다.

옆 사람들에 비해 너무 서브시간이 오래 걸렸다. 여 종업원을 불러 상기시켰더니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곧바로 음식을 가져오면서 다시 한번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음식값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음식값과 통상적인 팁을 구태여 지불하니까 눈물을 글성 거리면서 고맙다고 했다. 그 다음부터는 가급적이면 그 음식점을 찾았다.

내 탓이 아니라고 하면서 손님을 적대시했던 한국인 비디오가계 [주인]과 미안하다고 극구 사과하면서 손님을 서운하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미국인 [종업원]을 놓고 우리는 국제경쟁에서 누구에게 더 희망이 있는지도 알고 있다. 아는 것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국민성 때문이 아니라 훈련이 부족해서다. 이를 국민성 탓으로 돌리면 우리는 발전하지 못한다.

일본의 직장들은 모든 종업원들로 하여금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등의 극히 간단한 말을 매일매일 소리 높여 외치게 하고 있다. 무의식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미국의 은행원들은 년간 2회 이상의 훈련을 받는다. 복장, 매너, 업무에 대한 배움 물을 나눠주고 숙제를 해내야 한다. 밤 열두 시까지 해도 다 못할 만큼 많다. 집체 교육도 실시한다.

한국의 은행들은 사채업자들만큼도 신용사회를 운용할 줄 모르고 지냈다. 땅있는 사람들로부터 대출 커미션이나 받아온 한국의 은행은 미국 은행에 비하면 원시적이다. 땅 전당포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국은행은 일본은행에 비하면 한 단계 아래다.

모든 수단을 가동해서라도 한국인들의 매너와 업무수행 능력은 대대적으로 훈련돼야만 한다. 이는 결코 각 정부부처에서 주도하고 있는 형식 위주의 의식개혁운동으로는 이뤄낼 수 없는 것이다.

2000.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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