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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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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O 9000; 기업의 시스템화

여객선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탔다. 문을 채 닫지도 못한 채 배가 떠났다. 대참사가 발생했다. 사고원인을 조사하는 검찰이나 여론은 선장을 탓했다. 그러나 선장은 문을 관리하는 사람으로부터 보고를 받을 수 없었다.

선장과 문직이 사이에 통신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장이 사람들 틈을 뚫고 문직이에까지 가서 문이 닫겨져 있는지를 확인한다는 것은 시대감각에 맞지 않는다.

이 사고를 선장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시스템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반면 이를 시스템 설치의 책임이 있는 경영주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시스템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의 잘못이냐를 결정하는 문제는 누구를 형사 처벌하느냐를 결정하는 매우 큰 문제다. 선진국에서는 시스템을 설치하지 않은 경영주가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선장을 처벌한다. 법관들에게 시스템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법조문에는 시스템 개념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의 어디에나 수없이 많다. 1993년 7월 26일에 일어난 아시아나항공 참사를 비롯해 각종 붕괴 참사는 모두가 시스템 부재로 인해 발생한 사고였다.

이를 사람의 탓으로 돌리면 사고는 반복될 것이며 시스템 탓으로 돌리면 사고는 예방될 수 있다.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시스템이 명확히 설치돼 있는지를 누군가가 점검해야 한다. ISO 9000은 이러한 취지에서 생겨난 것이다.

영국의 많은 대형업체는 수준급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많은 중소업체들은 그렇지를 못했다. 시스템이 부실한 업체에게 최소한의 기본시스템을 갖추게 하자는 바람이 영국에서 불기 시작했다.

1982년도부터 영국에서는 보다 높은 품질을 생산하기 위한 범사회적 QC 노력이 확산됐다. 그 일환으로 영국표준 BS 5750이 모든 비지니스 분야에 확산됐다.

제조업체, 서비스 업체, 소매업체, 은행, 빌딩관리업체, 지방관청, 의료기관, 치과병원, 법률사무소 등 사회적 품질이 요구되는 모든 조직에 강요되고 있다. 전 사회의 시스템화 운동인 것이다. 영국의 BS 5750이나 EC의 EN 29,000 시리즈역시 ISO 9000시리즈와 같은 것이다.

엉뚱한 사양서나 설계도가 설계실로부터 공장으로 불출되면 불필요한 부품이 만들어진다. 설계팀이 유능하지 못하면 비싼 저질품이 생산된다. 정식 직원이 쓰던 기계를 임시직원이 사용하면 기계가 고장난다.

식품을 만드는 업체에서 내용물을 집어넣는 전문가 수는 많지 않다. 잠시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가 눈대중으로 내용물을 적당히 집어넣으면 엄청난 양의 식품이 생산되자마자 버려져야 한다.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스템 없이는 최소한의 품질이 만들어 질 수 없다.

ISO 9000에 대해 긍적적인 업체도 있지만 부정적인 업체도 있다. 긍정적인 업체는 자기들의 시스템을 ISO-9000 과 비교해서 무엇이 부족한 지를 찾아내려는 업체들이며 부정적인 업체는 남이 모두 하는 데 자기네만 하지 않으면 시장을 잃게 될까봐 억지로 시늉만 내는 업체들이다.

한국업체들이 두개의 장부를 유지하고 있듯이 부정적인 업체들은 두개의 시스템을 유지한다. 하나는 ISO 검사를 위해서 눈가림용으로 사용되는 시스템이며 다른 하나는 회사 본성의 시스템이다.

이러한 업체는 ISO 업무를 중간 간부에게 일임하고 최고 경영자는 자기식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그러다가 ISO검사에서 불합격되면 중간간부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운다. 이러한 업체는 궁극적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

ISO 9000 검사에 합격했다고 해서 그 업체가 훌륭한 업체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업체들도 너무나 많은 불량품을 만들었다. ISO 9000이 QC의 핵심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한국 업체들은 마치 ISO 9000에 대해 인증받은 것이 마치 품질업체인 것으로 오도하고 있다. 업체가 최소한의 기본시스템에 대해 제 3의 기관으로부터 인정받았다 해서 품질제품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기술에 대한 노-하우를 공장의 시설이나 문서와 같은 가시적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하청업체에 품질 지도를 제공하며 하청업체의 품질 시스템을 늘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대기업들은 제품을 구매할 때마다 수많은 하청업체를 그때그때 평가해야 했다. 제3의 인증 기구가 이러한 일을 전문적으로 대행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의 구매 부서에서 해야할 일의 일부를 제3의 인증기구가 대행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제3의 인증기구는 대기업의 구매 부서가 해야 할 QC 기능을 대행해 주지는 못한다.

납품업체로부터 납품된 부품이나 재료가 불량하면 대기업 제품은 불량품이다. 인증기구의 평가만을 믿고 납품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유럽의 대기업들은 ISO 9000을 품질기구로 간주하고 있다. 유럽의 대기업 구매 부서들은 ISO 9000을 임시방편적인 책임회피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ISO 9000은 업체의 기본 시스템만 평가하는 것이지 공정관리나 기술수준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제 3자 기구에 의한 인증제도는 영국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해서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러한 인증기구를 이용하고 있지 않다. 미국과 일본은 대기업 자신이 하청업체를 평가하거나 종합상사에서 평가한다.

인증기구는 영국에 가장 많으며 그 수는 20여 개나 된다. 가장 큰 인증기구는 British Standards Institute와 Lloyds이다. 제3의 인증기구 평가제는 상당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

감사자는 하루는 비데오 제작회사를, 그 다음날은 화학제품 제조회사를 그리고 그 다음날은 병원을 다니면서 시스템을 감사한다. 감사관이 아무리 유능해도 성격이 천차만별인 업체들의 QC 절차를 인증해 줄 수는 없다.

200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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