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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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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합병증의 근원은 관료주의

한국 대부분의 기업에서 나타나는 가장 공통적인 문제는 대화의 차단이다. 이 하나가 다양한 합병증을 일으키고 있다. 간부의 역할은 부하들을 격려하고, 코치하며, 더불어 문제를 찾아내고, 더불어 문제를 해결하는 "촉진자"(facilitator)여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공장장을 포함한 모든 간부들이 거의 사무실에 머무르지 않고 현장으로 출근하고 현장에서 퇴근한다. 문제를 현장에서 발굴해내고, 관련자들을 불러모아 현장 토의를 통하여 해결책을 마련한다. 의사결정이 얼마나 빠른가?

하지만 한국 대부분의 간부들은 부장급만 돼도 현장에 나가려 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결재만 하려 든다. 결재를 통해서는 절대로 시너지가 나오지 않을뿐더러 일하고 싶어하는 부하들의 의욕을 저하시킨다. 10년 전 미국에서 유행하던 말이 있다. 결재를 좋아하는 간부들이 유발시키는 낭비가 "매출액"의 40-60%나 된다는 내용이었다.

결재 서류에 담겨있는 내용은 누가 만들었는가? 한 사람의 실무자가 만들었다. 그 위에 과장, 부장들이 줄줄이 늘어서서 서명을 한다.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실무자 한사람이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은 별 게 아니다. 그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유능해도 거기에 도토리 키재기 식의 아이디어를 보태거나 트집잡기가 일쑤다.

우리는 일을 거꾸로 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해 한 사람의 실무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내서 가장 합리적인 행동 요령을 작성해야 한다. 생각은 공동으로 하고 실천은 나누어 해야 한다.

이렇게 자명한 원칙을 외면하고 매우 안타깝게도 한국사람들은 거꾸로 일한다. 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여러 명이 감독한다.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 같은 시스템에 매달려 바보가 돼 가는 것이다.

간부들이 결재나 하면서 책상에 앉아 있는 동안 현장에서는 엄청난 시간이 날아간다. 엄청난 기회를 상실하면서 시장을 잃어 간다.

간부들은 통상 부하들을 신분적으로 차별하려 하고, 부하들의 애로를 들어주기는커녕 부하들로 하여금 스스로 멀어지게 하는 매너를 가지고 있다.

설사 부장의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해도 그가 혼자 내는 힘은 미미하다. 여러 사람들을 신나게 해주고 여러 사람의 창의력을 유발시키며 유발된 아이디어를 행동계획으로 전환해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그렇지 못한 간부는 오히려 미국에서의 상식처럼 매출액의 40-60%를 증발시키는 역기능을 하게된다.

음식점의 지배인을 보자. 만일 지배인이 고객 제1주의에만 집착해 보라. 종업원들이 고객을 만족시키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고객만족에 열성적이면 그는 지배인으로부터 칭찬을 듣는다.

만일 지배인이 자기의 권위를 제1로 삼는다면 종업원들은 고객을 멀리하고 지배인의 눈에 잘 들려고 면전에서 아부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이에 식당은 망해간다. 이 처럼 한국 대부분의 간부들은 자신의 권위를 위해 기업을 병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신분주의는 하청업체와의 관계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하청업체가 납품한 제품에 하자가 생기면 아무리 조립을 잘 해도 불량품이다. 하청업체가 유발한 비용은 고스란히 원청업체가 떠안을 수 있다. 그래서 일본기업은 하청업체를 극진히 대우한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간부들은 하청업체를 괴롭힌다. 대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바이어 노릇도 한다. 한국식 바이어의 특징은 하청업체와 유착한다. 뒷돈을 주면 불량한 제품도 받아준다.

백화점을 생각해 보자. 선진국 백화점에는 똑같은 의류가 별로 없다. 남이 입은 것과 똑같은 옷을 입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고객은 자기만의 패션을 통해 남과 다른 개성을 표출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백화점 바이어는 한 메이커에서 많은 양의 옷을 구입하지 않는다. 뇌물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백화점 바이어들은 하나의 메이커로부터 많은 옷을 구입한다. 그래서 뇌물이 있을 수 있다. 점원은 바이어가 대량으로 구매한 똑같은 옷을 걸어놓고 고객에게 강요한다. "손님, 요새는 이게 유행입니다. 이게 잘 나갑니다". 백화점 운영 시스템이 바이어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고 메이커들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상전과 아전에 대한 신분 차별은 제조업체에서 더욱 두드러 진다. 한국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신문차별 현상이 발견된다. 정규직원은 고용직원을 경시하고, 원청업체는 하청업체를 경시한다.

하청업체가 신분상 차별대우를 받아보자. 매우 불쾌하고 불행해 진다. 불쾌하면 생산성과 품질이 저하된다. 직장인은 가정보다 직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직장이 행복해야 인생이 행복하다. 그들이 집에 들어갈 때, 마음이 불행하면 가족들도 불행해 진다.

"문제나 애로를 말하면 손해를 본다. 어쩌다 말 해놓고는 즉시 후회한다. 수용해주는 것이 아니라 비난과 질책으로 보답 받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어도 말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이런 정서가 없는 기업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결재 때문에 일할 맛을 잃는다. 급하게 돌아가야 할 일이 결재 때문에 지연된다. 문제가 생기면 욕부터 하고 해결은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한다"

IBM, GM, 니싼 클라이슬러 등 굴지의 기업들이 한 때 볼락의 수렁에 빠졌던 이유는 관료주의 하나 때문이었다. 관료주의는 그 하나로 모든 걸 파괴한다.

광양제철에서는 "지적 받음에 감사하라"는 구호를 건물을 출입할 때마다 외치고 있다. 자기의 잘못은 남이 더 잘 본다. 하지만 한국의 직장인들은 자기의 업무를 비밀로 유지하면서 그로부터 자기의 존재가치를 부각시키려 한다. 남이 자기 부서의 비밀을 알거나 지적해주면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인다.

가장 훌륭한 학습자료는 현실문제다. 가장 훌륭한 교사도 바로 현실문제다.문제를 발굴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에게만 배움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문제를 은닉하려 한다. 무슨 발전이 있겠는까?

2001.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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