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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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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파괴

미국의 서부는 차를 세우는 데마다 아름다운 공원이다. 도로변에 차를 세우면 다람쥐들이 사람에게 접근해 손끝을 더듬는다. 먹이를 달라는 것이다. 미국인 부모들은 꼬마들에게 동물이 놀라지 않도록 매너를 교육한다. 모션을 크게 하지 말며, 빠르게도 하지 말며, 큰소리를 내지도 말라는 것들이다.

그러나 한국인 꼬마들은 여지없이 다람쥐에게 돌을 던지고 발로 차서 주위의 빈축을 샀다. 지금도 여름이면 잠자리채를 가지고 가족단위로 곤충채집에 나서고 있다. 노란 병아리를 사다가 2층 복도에 올라가 누구 것이 살고 죽는가에 내기를 걸고 병아리를 던진다. 다른 생물에 대한 아픔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러한 아이들이 성장해서 의사가 되면 환자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공무원이 되면 국민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기업인이 되면 고객의 행복을 무시한다. 이렇게 자란 이기심이 이제 국제적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얼른 보아 고질병이라는 생각도 들겠지만 이는 단기간 내에 고칠 수 있는 병이다. 하나는 언제나 [나를 상대방 입장에 세워보는 일일 맹훈련]을 쌓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의 시스템과 가치체계를 혁신하는 일이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병원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만 서민들에게는 아픈 것보다 더 서러운 것이 병원의 홀대다. WTO 시대에 외국병원이 들어올 것이다. 외국병원은 고객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특별대우에 익숙한 사람들은 한국병원을 찾을 것이고, 이름 없는 사람들은 설사 더 비싸다 해도 외국병원을 찾을 것이다.

이제 국산품애용이라는 구호는 없다. 제품에 대해서도 설득력 없는 이 구호가 단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맡기는 의료 서비스에 적용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훌륭한 외국병원이 가급적 많이 들어올 수록 좋은 것이다.

미국에서는 사고가 나면 보험사에 연락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 전화 하나로 사고 근방을 순찰하던 경찰이 금방 나타나고 경찰의 사고 레포트도 단 5분 이내에 현장에서 작성된다.

경찰의 입회 없이도 보험사는 접촉상태만 보고도 누구의 과실인지 금방 안다. 접촉사고 때문에 피보험자가 시간을 소비하는 일은 절대 없다. 접촉 당사자간에 싸움을 한다는 것은 넌센스다. 분쟁의 소지가 있으면 양 개 보험사들이 대신해 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접촉사고가 나면 경찰개입 없이 처리하는 것이 상수다. 경찰에 의뢰하려면 하루를 버리고도 수고비까지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찰의 개입 없이 처리하려면 보험회사로부터 보상을 받기 어렵다.

미국 보험사는 고객에게 가장 편리한 서비스 공장에 차를 맡기라고 한다. 서비스공장이 보험사에 연락해 알아서 처리한다. 서비스공장은 수리기간에 타고 다닐 수 있는 차를 하나 내준다.

한참 타고 다니다 보면 수리가 완료됐다는 통보를 받는다. 이러한 보험사가 한국에 들어오면 설사 보험료가 한국 보험료의 몇 배가 더 비싸도 많은 이들은 외국 보험사를 찾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사고가 나면 보험사가 고객의 편에 서서 모든 행정과 분쟁을 해결해주지만, 한국에서 사고가 나면 보험사는 고객의 적으로 변해버린다. 보험을 들어 놓고도 고객은 첫째, 접촉사고 상대편과 싸우고 둘째, 보험사와 싸우는 것이다. 이러한 보험을 왜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의 출판사들은 저자에게 투명성을 제공하지 않는다. 몇 부를 찍어냈는지에 대해 정직한지 아닌지는 오직 출판사의 자비에 달려있다. 한국에서 정직한 출판사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외국 출판사가 와서 확실한 투명성을 시스템적으로 제공한다면 필자들은 외국 출판사로 발을 돌릴 것이다.

선진국 유통업체들이 속속 들어올 것이다. 이들은 바가지 가격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오는지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시장을 가격파괴로 공략할 것이다. 한국 유통업체에 환멸을 느껴왔던 고객에게 선진국 유통업체들이 보여줄 서비스 내용들은 신선감을 주게 될 것이다.

앉아서 의식개혁만 소리높여 외칠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설치해야 할 두개의 시스템이 있다. 하나는 고객서비스 코너을 설치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윤극대화 정신과 고객만족 정신과의 상충성을 해소하는 일이다.

선진국 백화점에는 고객에게 편리한 장소에 고객서비스코너가 설치돼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제품을 샀을 때 바꿔주고 물러주는 곳이다. 중요한 것은 조금의 부담감도 느끼지 않고 웃으면서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8층에서 구입한 상품을 8층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1층 서비스코너로 가지고 간다. 단지 마음이 변해서 무르고 싶다고 말해도 웃으면서 물러준다. 거기에다 [그럼요, 당신의 마음 다 이해합니다]라고 덧 부쳐 준다. 고객의 요구가 극히 타당하다며 편을 들어주기까지 하는 것이다.

한국의 최고경영자의 대부분은 이윤극대화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면서도 입버릇처럼 고객만족을 외치고 있다. 중간 경영자의 손에 두개의 상충되는 임무가 쥐어진 것이다. 이윤극대화를 따르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고, 고객만족을 따르면 이윤이 잠식된다. 이렇게 배타적인 가치구조를 가지고는 절대로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

스스로 "한국 최고의 고객만족 백화점"이라고 자랑하는 백화점의 목표는 첫째가 이윤극대화이고 둘째가 고객만족이다. 8층에서 상품을 사간 고객에게 불만이 생겼을 때, 고객은 점원을 찾는다.

점원의 제1 목표는 이윤극대화다. 고객이 요구하는 대로 물러주면 평가 점수가 삭감된다. 그 점원이 과연 고객을 만족시켜 주겠는가? 단연 게임을 하려 든다.결국 백화점의 고객만족은 "가급적이면 잘 해 주라" 식의 lip-service일뿐이다.

아무리 졸라도 그 백화점은 선진국들처럼 1층에 고객서비스센터를 설치하기를 주저했다.

2001. 3.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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