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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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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만족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

'누구는 돈을 벌고, 누구는 도와만 주고 있어야 하느냐?' 이것이 민원인을 대하는 공무원의 마음일 수 있다. '세상에 태어나 누구는 큰소리치고 누구는 봉사만 해야 하느냐' 이것이 대다수 기업인의 의식일 수 있다. 아직은 고객봉사라는 말이 한국인 정서에 맞지 않는 것이다.

고객만족이라는 말이 모자라 고객봉사와 고객감동이라는 낱말들까지 등장했지만 실질적으로 변화된 것은 없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남에게 친절한 것을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둘째, 아직도 한국의 최고 경영자는 단기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단기이윤을 양보해야 한다. 말로는 고객만족을 외치지만 단기이윤을 양보하는 사원은 무언의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호주 교포가 서울에 와서 몇 개의 공장을 둘러보았다. 한국 근로자들의 일하는 모습이 그에겐 충격이었다. 일하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일해도 한국경제가 발전하고 있다고 하니 불가사이 하다는 것이다.

자기 딸은 대학을 갓 졸업했는데 700명 멤버들의 이름을 6개월만에 거의 외우고 있다는 것이다. 멤버가 매장에 들어오면 '하이 죤', 하이 쥬디' 하며 상냥하게 인사하고 그 고객이 마음속에 원하고 있는 것을 점치듯이 알아 맞추며 고객을 안내한다는 것이다. 이는 철저한 자기훈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 근로자들에게는 이러한 멋이 없다. 관공서엘 가거나 기업체를 가거나 선진국 사람들처럼 열심히 일하는 멋진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선진국 교수들은 밤중까지 연구를 하지만 한국 교수들은 아니다.

같은 국제서비스 체인에서 일하면서도 외국인과 한국인의 매너가 너무 다르다. 미국에 급히 자료를 보낼 필요가 있어서 DHL을 불렀다. 전화를 받는 여성 직원이 불친절했다. 아침 8시에 전화했는데 오후 4시에 가지러 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날 아무도 오지 않았다.

미국에서 급한 자료가 국내 '페더럴 익스프레스' 영업소에 도착했다. 수신자의 위치를 알기 위해 전화가 걸려 왔다. 시간을 다투는 내용이라 빨리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급한 사람이 당신 네 뿐이냐'는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주민등록증 사본을 가지고 와서 우편물을 찾아가라고 한다. 외국에서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행동이다.

분양 받은 아파트에 입주하는데 건설업체가 법무사를 지정해 주면서 등기서비스를 의뢰하라고 했다. 안내문이 왔지만 요령부득으로 쓰여져 있었다. 문의할 일이 있어 법무사 사무실에 전화를 했더니 불친절했다.

S그룹이 경영혁신의 향도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모 경제지 독자 투고란에 S그룹의 서비스 사례에 대한 불평이 있었다. S전자에서 팩스기계와 PC를 구입했다. 채 쓰지도 않았는데 모두 고장이 났다. 팩스를 달아 놓고 중국 회사로부터 연락을 기다렸지만 고장이 나 있는 팩스에 연락이 올 리 없었다. 결국 그 중국업체와는 인연이 끊겼다. 대리점에 연락을 해도 해결을 해주지 않았다.

S건설이 아파트를 분양했다. 잔금은 은행을 통해 납부했는데 입주권은 구태여 역삼동까지 찾으러 오라는 것이다. 우송을 해주면 될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초관리'를 외치고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국민시간을 부서지게 하고 있는가?

아파트 청약 시에는 얼마나 많은 근로자들이 서류를 접수시키느라 생산시간을 낭비했는가? 이 모든 것은 우편으로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었다. 국민시간을 낭비시키는 행정은 서비스가 아닌 것이다.

주택 사무실을 다녀오는 데 다섯 시간이 소비됐다. 넓은 사무실에 여성직원들이 10 명 정도 있었다. 그러나 고객을 대하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손님을 대하는 모습에 짜증끼가 흘렀다. 서비스 시간도 오래 걸렸다. 단발머리가 자꾸 얼굴을 가렸다. 손목까지 내려 덮은 긴 소매 속에 가늘게 나온 손끝이 보일락 말락 했다. 자라 손끝처럼 짧게 나온 그 손끝으로 서류를 가지고 느릿느릿 손님과 컴퓨터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미국 은행 여직원의 훈련과정을 지켜본 일이 있다. 미국에서 이러한 모습으로 근무한다면 100% 해고 감이다. 해고돼도 호소할 데가 없다. 법은 일을 열심히 하는 근로자만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님은 많았지만 다른 직원들은 거들어주지 않았다. 더러는 신문을 보고 더러는 애인과 수다스럽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맨 뒤에 젊은 남성이 데스크 쪽을 향해 앉아 있었지만 눈동자는 허공을 향해 있었다.

호주 교포가 관찰했던 모습이 바로 저런 것이었구나 싶었다. 이렇게 방만하게 경영하는 데 드는 비용이 모두 고객에게 부과되고 있는 것이다. 경쟁자를 사랑하라는 말이 있다. 경쟁자가 망가지면 자기도 망가지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조직은 자극이 없으면 나태해 진다.

IBM에 한동안 경쟁자가 없었다. 간부들이 생산성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서로 모함하고 파워게임을 하느라 망가져 가고 있다. 우리 나라 대기업들은 세력을 확장하는 데에는 경쟁을 했지만 가격을 받는 데에는 담합을 해왔다. 이러한 담합은 개방을 해야만 없어진다.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간부들이 경영혁신을 외치고 있는 것은 단지 입으로 점수를 따기 위한 생존 게임에 불과한 것이다. 이들은 창의력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는 동안 기업은 경쟁력에서 낙오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고객봉사라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고객 리더십이라는 말은 그래도 약간의 설득력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리더가 되고 싶어한다. 한국인들의 리더십은 위엄과 동일시된다. 하지만 리더십은 위엄으로 행사되지 않는다. 리더가 부하의 입장에 서주지 않으면 부하도 리더의 입장에 서주지 않는다. 봉사정신이 없는 리더에게 봉사할 부하는 없다. 이래저래 한국국민에게는 고객봉사라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 고객 속임수가 어울린다.

고객이 그를 따르도록 리더십을 행사하려면 고객에게 먼저 봉사해야 한다. 많은 노력을 요하는 봉사는 외면하고, 많은 돈이 드는 봉사도 외면한다면 고객을 감동시킬 수 없다.

지금의 영업부 직원에게 이러한 리더십을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다. 고객만족은 비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비용을 추가하지 않고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철저한 품질관리가 전제돼야 하지만 한국인들에겐 그런 노력 자체가 없다.

족벌기업의 영업부 직원들은 족벌 가족이어야 한다. 그들만이 고객만족에 필요한 의사결정을 소신껏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치를 보는 머슴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고객만족에 적극적일 수 없다.

2001.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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