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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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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기업의 금자탑(monument)

  2002. 1.31, 서울문고 외국도서 칸에 갔더니 검고 푸른 창살 무늬 바탕에 SONY라
고 굵게 쓰여진 책이 보였다. 그 로고는 SONY의 공동창업자인 아키오 모리타씨가
고안한 것이다. 저자는 UC-산타바바라 John Nathan 교수. 소니사에 어렵게 접근하
여 소니를 객관적 시각에서 바라본 내용의 책이다.

  내가 이 책에 눈이 쏠린 것은 SONY라는 네 글자 때문이다. 소니는 우리 한국 사
회에서 꿈꿀 수 있는 회사가 아니라 살아있는 예술적 기념탑이다. 전쟁터에서 만나
폐허의 건물에 책상을 차려놓고 자신들을 "미지의 개척자"라고 이름짓고 생전 보지
도 못한 녹음기를 만들기 시작한 이부카 회장과 아키오모리타 회장, 비엔나에서 수
학하고 돌아와 음악계의 스타로 뛰다가 아키오 모리타씨의 끈질긴 설득에 굴복하여
1959년 소니사에 들어와 38년간 일하고, 38년전에 약속했던 그대로 60세에 회장직
을 "이데이"라는 타인에게 물려주고 음악계로 돌아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오
가" 회장. 이들이 있기에 오늘날의 소니가 있는 것이다. 회장들은 모두가 남남이
다. 어느 가문의 기업이 아니라 남남들이 들어와 가꿔놓고 나가는 아름다운 예술적
금자탑이다.

  1998년, Harris poll에 따르면 SONY사는 이미 코카콜라와 GE를 제치고 미국인들
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기업,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 됐다. 1957년 소니가 손바닥만
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어 미국으로 건너가 팔려고 했다. 일본인을 멸시하는
미국 유통업체들이 노골적으로 외면했다. "문제가 있는 곳에 반드시 해결방안이 있
다"라고 믿는 아키오모리타씨가 3일간 장고를 했다. 유통업체라는 울타리를 뚸어
넘는 유일한 길은 공중낙하라는 새로운 개념을 찾아냈다. 유통업체를 제치고 고객
에게 소니 제품을 알리는 길이 바로 신문광고였다. 그가 바로 신문광고의 효시였
다.

  광고를 보고 부로바 중역이 찾아왔다. 라디오에 부로바 로고를 넣는 것을 전제로
20만개를 주문했다. 천막회사로서는 엄청난 횡재였다. 하지만 모리타씨는 본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이를 거절했다. 목전의 돈보다는 SONY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서였다. 1957년의 일이다. 오늘날의 한국기업 중에 이러한 기업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경제적 동물이다. 경제 없이는 살지 못한다. 그런데도 사람에게는 인격이
라는 게 있다. 일생을 그림 그리듯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삶 자체를 예술품으로
가꾸려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금덩이를 보아도 집어들
지 않는다. 남이 볼 수 있다고 염려해서가 아니라 그가 조각하고 있는 예술품이 망
가지기 때문이다. SONY를 가꾼 위의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기업에게도 격이 있다. 바로 이미지다. SONY라는 글자를
볼 때마다 SONY라는 예술적 금자탑을 세운 역대 회장들의 활동이 눈에 선하다. 회
계자료를 거짓으로 꾸미고, 탈세하고, 오폐수를 방류하고, A/S를 바라는 고객과 싸
움질 하고, 근로자를 이윤추구의 도구로 생각해온 우리 기업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일본과 미국을 배척한다. 사람은 자기보다 잘난 사람으로부터
배우고 어제의 잘못으로부터 배운다. 독서를 하는 것도 잘난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길이요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잘난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길이다. 내가
최고요, 지금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발전은 없다. 어제의 문제는 오늘의
지혜다. 문제는 겉에 나와 있는 게 아니라 땅속 깊이 묻혀 있다. 힘들여 캐내야만
지혜가 나온다. 잘난 사람 못 봐준다며 배척하고, 독서도 하지 않고, 어제의 문제
를 캐기는커녕 스스로 솟아난 문제도 덮어버리는 우리의 삶이 바뀌지 않는 한, 기
업을 예술적 가치로 승화시키는 사례는 영원히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2002.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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