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View Articles

Name


	지만원

Subject

한국에는 사원만 있고 경영인이 없다

기능직에 오래 있다 보면 고위 간부가 된다. 한국 대부분의 경영간부들이 걸어온 길이다. 장군들이 걸어온 길도 이와 똑같다. 통신 기능직이었던 장교가 커서 장군이 되고 조종사가 커서 장군이 된다. 건축 기능직이 커서 건설 기업의 사장이 되고 제조분야 생산직이 커서 사장이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경영직에 있으면서도 경영은 도외시하고 기능직들이 하는 일만 참견하려 든다. 한국 사회에서 장군이 경영 직책을 수행하는 게 아니라 하사가 하는 일을 간섭하고 다니면서 "아무개 하사" 소리를 듣는다. 한국 기업 대부분의 간부들 역시 "아무개 하사"에 지나지 않는다.

경영인과 기능인은 인간 자체가 다르다 할만큼 처음부터 차원이 다르다. 한국 대부분의 경영직 간부들이 "하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좁은 기능 세계에서 잔뼈가 굵었기 때문이다. 시야가 좁고, 고정관념이 높은 반면 경영학의 기초 자체를 모르는 것이다. 좁은 고정관념 속에서 길러진 권위 의식 때문에 모르면서도 배울 생각을 하지 않고 배척부터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릇된 유교 관념 때문에 직급이 높으면 앉아서 결재만 하려 들고 현장을 멀리 한다. 현장에서 멀어진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복잡한 현장의 문제를 골치 아프다며 듣기 싫어한다.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 짜증을 내고 문제가 없다고 하면 얼굴에 희색을 띈다. 개인은 타락하고 회사는 속으로 곪는다.

이러한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직급이 높아질수록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잃는다. 기능 분야에 대해서도 어두워지고 경영 능력도 갖추지 못하게 된다. 조직에 짐만 되는 존재로 타락하는 것이다.

경영관리자는 고도의 분석과 판단력 그리고 리더십을 요하는 직책이다. 한마디로 부지런함과 극기를 생활화해야 한다. 남보다 우수하면 리저십이 발휘되지만 남보다 못하면 리더십이 발휘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한국 간부들은 남보다 못하면서 직급으로 호령한다. 리더십 부재의 사회요 어른이 없는 사회로 전락해 있는 것이다.

고위직책일수록 경영학적 자질을 요구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 간부들은 고정관념과 권위만 키운다. 그들의 권위와 지위를 허무는 것이면 기업에 보약이 되는 시도라 해도 거침없이 내친다. 바로 이들이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거의가 늙은이들이다. 나이가 많아서 늙은 게 아니라 스스로를 차디찬 얼음 관속에 공공 묶어 두고 게으른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늙은 것이다. 사람은 나이로 늙는 게 아니라 이상의 결핍으로 늙는 것이다.

기업마다 많은 외부 및 내부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간부를 교육시키지만 경영 이론과 패러다임에 대한 기초 이론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많은 교육을 받으면서도 경영관리자의 경영 능력을 향상시키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직급이 높으면 앉아서 명령과 지시로만 일을 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명령 및 지시 문화에서 토의 문화로 바꾸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바로 이제까지 명령과 지시 문화권에서 자랐던 간부들이다. "나도 예전엔 다 그랬어, 자네들도 똑같이 하는 거야".

직급이 높은 간부들은 부하들에게 지시만 한다. 일해 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상하게 가르쳐 주거나 함께 의논하는 게 아니라 일감을 집어던지고 다시 해 오라 한다. 하지만 그 자신은 브리핑 차트 하나 만들지 못하며, 발표는 물론 기안지 하나 작성하지 못하고, 요약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필요한 사람들을 불러모아 토의를 주재하여 화끈하게 일을 매듭짓지도 못한다.

외부에서 보기엔 장군들이 군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야말로 군을 잘 모른다. 입으로만 명령을 내리고 잘 못하면 꾸지람이나 주는 행세자들에 불과하다. 공군 조종사가 경영을 모르고 진급을 하면 장군이 돼서도 비행기 운전사일 뿐이다. 한국군이 낙후돼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장군들이 군을 경영하기 때문이다.

외국 간부와 한국 간부의 생산성 차이는 얼마나 나는가. 미국 간부들은 몸과 두뇌로 뛰면서 하위직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지만 한국 간부들은 뭐든지 앉아서 시키기만 한다. 외국 간부들에서 두드러진 것은 그들은 혼자서 모든 종류의 도면을 볼 줄 알고, 경영 및 문서 작성 능력, 요약 및 브리핑 능력, 데이터 베이스 관리 능력이 뛰어나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간부들은 그렇질 못하다. 이를 한국적 현실이라고만 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사람을 길러야 한다. 시스템을 바꾸면 사람도 길러진다. 하지만 지금처럼 하면 100년이 가도 한국 간부는 달라지지 않는다.

각자에게 배우라 하지 말고 시스템에 의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배움을 시스템화해야 하는 것이다. 조직을 바꾸고, 일하는 방법을 바꾸고, 시스템을 설치하면 간부의 능력이 하루 단위로 발전하며 데이터 베이스도 생긴다.

2002. 1. 5


Prev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지만원


Next	한국에 벤처가 자라기 어려운 이유	지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