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View Articles

Name


	지만원

Subject

한국에 벤처가 자라기 어려운 이유

한.일 벤처 사장들의 모임이 있었다. 양국에서 각기 10명씩의 벤처 사업가가 번갈아 나가 10분간씩 경험을 발표했다. 한국 벤처인과 일본 벤처인 사이에 선이 그어졌다. 한국 벤처 사업가들은 한결같이 자산규모와 기술을 자랑했다. 하지만 일본 벤처 사업가들은 자신들의 실패 사례를 말했다. 돈을 벌어보려고 했을 때 실패했고, 창의력으로 일하며 행복을 느낄 때 성공했다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증언이었다.

창조 행위 자체가 인생의 행복이며, 행복을 느끼는 동안 돈이 스스로 불어났다고 말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 돈에 안주하게 되고 돈에 안주하게 되면 창의력에서 오는 행복과 프라이드가 소멸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기업가는 벤처기업을 만들어 한참 돈을 벌어들이고 있을 때 돈 한푼 받지 않고 남에게 주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벤처 정신이란 물질적 귀족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 귀족이기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돈을 추구하지 말고 개선을 추구하라, 개선이 되면 돈은 자연적으로 따르게 돼 있다". 오늘날의 파나소닉을 이룩해 놓은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소니의 신화를 창조한 아키오 모리타씨가 다같이 강조했던 말이다. 그 선조들에 그 후손이라는 격언이 실감된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벤처 정서는 골드 러시였다. 대통령의 연설을 포함하여 TV 프로를 주도했던 수많은 벤처인들이 한결같이 강조했던 것은 바로 일확천금이었다.

일본 벤처인들이 마이크를 잡으면 한결같이 "이윤 추구" 마인드 자체가 실패의 원인이었다고 토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벤처인들은 작성해온 원고에만 집착하면서 "몇 년 후에 얼마만큼의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식의 발표만 계속했다. 일본 벤처인들이 들려주는 교훈조차 귀담아 듣지 않았다. 바로 그 결과가 오늘날 한국 벤처들의 거품이 된 것이다.

소니를 창설한 이부카씨와 모리타 씨는 돈을 벌기 위해 소니를 세운 것이 아니라 미지의 개척자(seeker of unknown)가 되기 위해 세웠다. 미지를 개척하다보니 기술에 대한 소화력과 마케팅에 대한 창의력이 생겼다. 그들이 처음부터 돈을 벌려고 했다면 오늘날의 소니는 없었을 것이다.

반면 한국 기업가들은 한결같이 이윤극대화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다. 이러한 가치관을 갖은 최고경영자는 모든 간부와 사원들을 돈의 노예로 생각한다. 간부와 사원을 완전하게 통제하는 것이 최고의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 돈의 미끼를 사용한다. 간부, 사원, 근로자, 심지어 고객까지도 이윤추구의 대상이요 게임의 대상일 뿐이다.

한때 유행하던 "고객만족"도 용어로만 존재하다가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과거 한동안 일본인들에게 붙여졌던 "경제적 동물"이라는 멸시적인 용어는 이제 한국인들에게 붙여져야 한다. 한국인들의 천민자본주의 의식이 바로 한국병의 가장 큰 병균인 것이다.

사람은 일하는 데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일하는 데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게 만드는 회사가 훌륭한 회사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기업은 일하기 싫어하도록 만든다. 일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사원들은 일하기를 싫어하고 기업주는 싫어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시켜보려고 돈으로 미끼를 삼는다. 바로 이런 게임이 이뤄지고 있는 곳이 한국 기업들이다.

각 개인에게 비현실적인 목표를 배당하고 그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가를 측정하려는 초일류 기업이 있다. 목표를 정하는 과정도 비현실적이고 목표달성 여부를 평가하는 방법도 비합리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설계나 감리 등 전문분야의 일을 하는 고급 기술자들에게도 마치 막노동 근로자들을 감독하는 것처럼 작업 인.시(man-hour)를 정해주는 기업이 있다. 두뇌인력 한 사람에게는 여러 개의 프로젝트가 배당된다. 이들에게 일을 시키는 중역간부가 각 개인에게 부여한 프로젝트 하나 하나에 대해 나름대로 예견한 작업 인.시를 배당한다.

김차장이 맡은 프로젝드 A에는 주당 30%의 시간을, 같은 김차장이 맡은 프로젝트 B에는 주당 40%의 시간을 투입하라는 명령서인 것이다. 김차장이 프로젝트 2개를 할당받으면서 주당 70%의 시간만 계획돼 있는 반면, 박차장은 프로젝트 C,D,E의 3개 프로젝트를 할당받아 주당 120%의 기간을 할당받는 것으로 계획한다.

한 사람이 1년간 떠맡는 여러 개의 프로젝트 중에서 어떤 프로젝트는 예상했던 인.시보다 더 많은 품이 들고, 어떤 프로젝트는 예상했던 것보다 적은 인.시가 소요된다. 그래도 행정은 계획했던 인.시로 실적을 맞춘다. 계획대로 했다고 해야 뒷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제 방법 때문에 주당 70%만을 할당받은 김차장과 120%씩이나 할당받은 박차장간에는 위화감이 형성된다. 실제 하고 있는 업무를 보면 김차장이 박차장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다. 김차장의 기분이 어떠하겠는가.

각자별로 이러한 식의 통제를 가하면 옆 사람과 담을 쌓고 극도의 개인주의로 치닫게 된다. 옆 사람이 간단한 문제를 가지고 고생을 해도 자기 일이 아니면 잠깐이면 도와줄 수 있는 일도 애써 외면한다. 연봉 5천 만원 짜리의 고급 엔지니어들을 이렇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시너지는커녕 개인이 낼 수 있는 능력마저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시너지란 여러 사람의 협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그토록 설명을 해도 이 간단한 원시적인 제도 하나 고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기업주는 벤처기업이라며 자부하고 있다.

한국기업들의 통제 마인드는 정말 못 말린다. 시스템이 가장 잘 돼 있다는 소리를 듣는 소위 초일류 기업의 예산통제 방법이야말로 희극적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전근대적이다. 예산을 사용하는 데에는 창의력이 필요하지만 일류기업의 예산 통제 방법은 단 1%의 창의력도 수용하지 않는다. 상급자 앞에서도 자유가 없지만 예산 앞에서는 더더욱 자유가 없다.

현장에서 사용하는 예산은 현장 나름대로의 사정과 창의력에 의해 효용가치를 높일 수 있다. 창의력은 본부에 있는 참모에 의해 창출되지 않는다. 또한 창의력은 시간표에 따라 유발되는 게 아니다. 어제는 A가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오늘은 B가 최상의 방법일 수 있다. 예산은 그런 창의력을 수용하고 격려하도록 융통성 있게 운용돼야 한다.

하지만 일루 기업의 예산 통제 방법은 현장사람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본부 참모가 옭아매는 식으로 편성하여 쥐어짜는 식으로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관행은 본부 참모가 현장 사람들을 얕보고 불신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몇 푼 되지도 않는 경비를 이런 식으로 통제하면 절약 액보다 손해가 더 많다. 현장직원은 짜 맞추기 식으로 비경제적인 행정을 하느라 전문분야에 사용해야 할 귀중한 시간을 축낼 수밖에 없다. 고객만족을 위한 시간, 고객에게 제출해야 할 성과보고서를 작성하는 시간 그리고 데이터 베이스 구축을 위한 기술 및 원가 자료 생산에 필요한 시간이 축나게 된다.

이러한 식으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다보면 기분이 상하고 본부 간부 및 사장에 대한 냉소적 분위기가 싹튼다. 불과 몇 푼 되지 않는 예산을 이런 식으로 통제하면서 얻는 것은 불과 수십만 원 단위지만 잃는 것은 수천-수억 원이 될 것이다. 소탐대실인 것이다.

현장의 경비는 10-20개의 비목으로 구성돼 있고, 각 비목별로 월별 상한선이 주어져 있다. 어느 품목은 한번 쓰면 몇 달간 쓰지 않는 데도 매월 똑같은 액수가 배당돼 있다. 예를 들면 컴퓨터 잉크는 7-8만원 한다. 그런데 사무용품비는 매월 5천원씩 책정돼 있다. 14개월 치의 행정 비를 합쳐야 잉크 하나를 살 수 있다. 잉크는 사야하고 잉크 살 예산이 없는 현장은 자기 돈으로 잉크를 사거나 아니면 다른 비목을 전용해 쓰고 가짜 정리를 해놓는다. 이 때 느끼는 감정이 어떻겠는가.

사원이 100만원의 봉급을 받는다고 치자. 사원이 그 돈을 부인에게 주면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현실에 맞게 창의적으로 예산을 사용한다. 하지만 만일 100만원 중에서 3만원은 노랑색을 칠해서 쌀 사는 데만 쓰게 하고, 4만원은 파란색을 칠해서 문화비로만 쓰라고 해 보자. 이렇게 100만원을 10여 가지의 칼라로 나누어주고 각 칼라별로 목적을 지정해주면 얼마나 불편하고 비경제적일가.

쓰다보니 파란 돈은 남고 노란 돈이 모자란다. 파란 돈은 반납하고 노란 돈은 자기 주머니에서 내 쓴다. 이를 바꾸어 달라고 하면 행정이 불편하고 잔소리를 듣는다. 그게 싫어서 자기 돈을 쓴다. 더러는 가라 정리를 한다. 1980년대 초 필자는 국방예산 개혁을 주도하면서 나는 이를 colored money system이라고 명명했다.

군에서도 20년 전에 타파를 시도했던 이 전근대적인 시스템을 초일류기업이 고수하고 있다. 타파하라고 하면 할수록 더 보배처럼 보존하려 한다. 직급이 높을수록 더 많이 저항한다. 융통성을 주면 통제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 하나 타파하지 못하는 답답한 간부, 답답한 기업인들이 입으로는 모두다 벤처를 외친다.

2002. 1.3


Prev	한국에는 사원만 있고 경영인이 없다	지만원


Next	예방적 품질 시스템과 경찰관식 검사	지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