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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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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의 시스템칼럼] 리더십 상실의 시대

19990609   [지만원의 시스템칼럼] 리더십 상실의 시대

1970년.  40세의 고참 대위가 한국에서 포대장을 마치고 월남에 가서 또
포대장을  했다. 파월 병사들은 거칠어서 경험이 풍부한 고참이 지휘를 해
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끔찍한 사고를 당해 처벌됐다.
사나운  병사들이 술을 마시고 장교들에게 대들고, 총과 수류탄을 들고 싸
움을 벌이기도 했다.

  바로  이 부대에 30세 된 어느 한 장교가 임시 대위를 달고 극히 예외적
으로 포대장에 취임했다. 연약해 보이기까지 하는 신출내기 장교가 부임하
자,   어느 한 하사가 포대장 앞에서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었다. 포대장은
전   부대원을 집합시켜 그들의 심금을 울리는 일장 연설을 했다. "추억을
쌓는 젊음은 아름답고, 돈에 사로잡힌 젊음은 추한 것"이라는 요지였다.

  병사들의  복잡한 마음이 정리됐다. 이어서 그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이곳은 너무나 더우니 상의는 입지 말고 하의는 마음대로 잘라 입으라"는
것이었다. 병사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포대장은   또 식사 때마다 식기를 들고 배식기 앞에 늘어서 있지 말고,
분대별로 식당에 사람을 보내 분대별 식사시간을 예약하도록 했다. 기상시
부터  취침순간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집합을 생략했다. 병사들은 기상하자
마자  분대장의 인솔하에 분대별로 행동했다. 그 대신 분대장들은 매일 저
녁 포대장과 회의를 했다. 다음날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능
률적이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가에 대해 토의했다. 3개월이 지나자 토의
문화가  정착됐다. 그 후부터는 포대장이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시스템에
의해 부대가 돌아갔다.

  그 부대는 상급 부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어느 날 보급품을 실어
오던  병사가 헌병에게 따귀를 맞았다. 포대장은 마치 자기가 맞은 것처럼
분해서 펄펄 뛰었다. 그러자 다른 장교들이 포대장을 진정시키려 했다.

  "포대장님, 원래 애들은 헌병에게 맞는 겁니다." 그 말에 포대장은 더욱
화가 났다. 그는 트럭에 건장한 병사들을 태우고 헌병초소로 향했다. 어두
울   때 나타나는 베트콩의 위험도 무릅쓴 채였다. 그는 그 헌병을 찾아내
병사들 앞에 무릎을 꿇게 했다. 그 후부터 병사들은 포대장을 진정으로 사
랑했다.

  병사들이 보내는 편지는 지휘관이 보안검열을 하게 돼 있었지만, 대부분
의  지휘관들은 검열을 하사관에게 맡겼다. 젊은 포대장은 모든 병사의 파
일을 만들어 놓고 편지 내용을 요약했다. 요약 내용만 보면 구태여 병사들
을  불러 쑥스러운 신상면담을 하지 않아도 병사들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
다.

  어느  한 운전병이 3년마다 갱신되는 면허증 때문에 걱정하는 편지를 썼
다. 그 편지를 읽은 포대장은 도지사에게 편지를 써서 파월병의 애로를 풀
어달라고  호소했다. 도지사에게서 답장이 왔다. 도지사 편지를 가지고 귀
국해서  운수교통과에 제출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포대장은 편
지에 나타난 병사들의 애로를 이런 식으로 여러 건 해결해주었다. 면담 한
번 하지 않고 병사들의 애로를 뒤에서 해결해주는 포대장을 병사들은 귀신
이라고 불렀다. 포대장이 생색내지 않고 뒤에서 병사들을 위해주니까 병사
들도 생색내지 않고 포대장을 도왔다.

  지위가 별로 높지 않은 대위도 부하들의 애로를 발견해내려고 온갖 지혜
를 동원했다. 병사들의 아픔을 본인의 아픔으로 여겼다.

  그런데 행정관리들로부터 억울함을 당한 국민들이 청와대에 억울함을 탄
원했더니  청와대는 그 탄원서를 그대로 그 행정 부서들에 내려보내 '괘씸
죄'까지  걸리게 했다. 국방부 앞에서는  10여일째  군에서 의문사를 당한
120명의 가족들이 단식을 하면서 이렇게 무책임한 청와대를 원망하고 있다.
탄원서가   이런   식으로 처리된 경우는 이 밖에도 많다. 이런 일을 당한
국민들은  과연 대통령이 국민과 정의의 편에 서있는 사람인지를 의심하게
된다.  박대통령 때에는 청와대에 진정서를 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조사를
해서 아픔을 해결해 주었다.

  150명에  불과한 부대에서도 지휘관이 병사들에게 꼼수를 쓰면 지휘권이
상실되고  사고가 연발했다. 하물며 온갖 머리 좋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한
국 사회에서 국가 사령관이 꼼수를 쓰니 민심이  어찌  사나워지지 않겠는
가? 이제는 대통령이 무슨  말과  약속을 해도 국민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개혁을  하고 사정을 강화하겠다며 요란을 떨어도 들으려조차 하지 않는다.
엄청난 냉소주의다. '개혁세력'이 '빨대세력'으로 비쳐지고 있다. '철학은
없고  꼼수만 번쩍이는' 빈곤한 리더십에서 당연히 싹틀 수밖에 없는 부패
문화가 투영한 기막힌 정서인 것이다.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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