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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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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돈이아니다？

시간은돈이아니다？／지만원（한국병어떻게할것인가：２６）

날이 갈수록 은행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다．통상 ３０분을 기다려 야 차례가 온다．공기도 탁하고 의자 수도 모자란다．기다리는 시간때문에 ３０만원을 찾으려던 최초의 계획을 바꿔 ２백만원을 찾아버렸다．은행의 주수입원은 「예대마진」이다．기다리기 싫어 사람마다 ２백만원씩 찾는다 면 은행은 거덜날 것이다．미국에는 세계 각국의 은행들이 있다．미국에 있는 일본인 은행에 가면 분위기 자체가 미국인 은행과 다르다．물론 미 국인 은행들도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은행원들을 스파르타식으 로 혹독하게 훈련시킨다．손님을 대하는 매너를 훈련하고 복장과 머리모양 까지도 통제한다．싱가포르와 대만의 은행엘 들르면 분위기가 한국의 은행 들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발전돼 있음을 알게 된다．

은행은 고객이 사용하는 공간과 은행직원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구분된다．외국에서는 고 객이 사용하는 공간이 넓고 은행직원이 사용하는 공간은 좁다．그러나 한 국의 은행들은 공간을 거꾸로 사용하고 있다．한국의 은행들을 보면 마치 직급도표를 마네킹으로 묘사해놓은 것처럼 간부들이 조직도표대로 진열해 앉아 있다．계장 대리 과장 차장 부장 그리고 지점장에 이르는 고리타 분한 결재자들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이러한 그림은 외국은행에서는 도저 히 볼 수 없는 몬도가네다．

외국은행의 간부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도움을 바라는 손님을 족집게식으로 알아맞춘다．은행에 가서 두리번거리기만 하 면 영락없이 간부가 손님에게 접근해서 무엇을 도와줄까를 묻는다．아무리 초라해 보이는 손님에게도 커피를 권하고 대화를 유도한다．이는 미국에 서는 물론 싱가포르와 대만에서도 겪는 일이다．기다리는 손님이 많으면 간부들이 나와 창구를 증설，손님을 기다리지 않게 한다．그러나 한국의 은행에서는 손님에게 서비스하지 않는 간부들이 줄줄이 앉아만 있다．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구미에서는 １９５０년대부터 사회적 경영개선의 가장 큰 아이템이었다．기다리는 시간을 분석하기 위한 수학 모델이 있다．큐잉모델（ＱｕｅｕｅｉｎｇＭｏｄｅｌ）이다．이발소에서 기다 리는 사람의 수도 「큐（Ｑｕｅｕｅ）」이며，교환기에 도착하는 다이얼 손 님도 큐이며，전산기에 연결돼 있는 사용자들도 큐다．문제는 손님의 도착 시각과 서비스 시각이 일정하지 않은 확률적 무작위 숫자라는 데 있다． 이러한 무작위성때문에 「큐잉이론」은 엄청난 수학이다．그러나 한국에서는 「큐잉이론」은 커녕 「큐잉개념」조차 아직 없다．

시테크라는 말이 유행했다．Ｓ그룹을 중심으로 초관리운동이 일었다．６０만원 봉급자가 커피 한잔 마시는데 회사돈 １천８백원이 날아간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시테크 에 앞장섰던 이 Ｓ그룹도 다른 사람의 시간은 무시했다．Ｓ건설이 신도시 에 매우 훌륭한 아파트를 지었다．잔금을 다 치른 입주자에게는 입주권이 주어진다．이 입주권은 등기로 얼마든지 송달될 수 있다．그러나 Ｓ건설 은 굳이 입주권을 강남에 있는 주택문화관까지 와서 찾아가라고 했다．신 도시에서 그곳까지 갔다오는 데에는 ５시간이 걸렸다．한국인 평균근로자의 임금으로 쳐도 이는 ３만원어치의 시간낭비다．입주자 １천가구를 합치면 ３천만원어치의 시간을 뺏아버렸던 것이다．

주택문화관은 고객이 기다 리는 공간과 직원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구분돼 있었다．직원이 사용하는 공간은 ９９％인 반면 고객이 기다리는 공간은 １％에 불과했다．어린이들 을 데리고 온 고객이 두 가족만 들어와도 카운터 앞이 꽉 찼다．１０여 명의 여성들이 아무런 할 일 없이 넓은 공간에 앉아 있고 맨 뒤에는 남성 과장이 앉아 있었지만 고객에게 봉사하는 직원은 단 한명의 여성 뿐이었다．그녀의 단발머리가 자꾸 얼굴을 내려덮었다．그럴 때마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옷소매가 그녀의 손끝까지 내려왔다．자라손처럼 짧 게 나온 손끝으로 서류를 들고 손님과 전산기 사이를 오락가락했다．미국 인 같으면 당장 해고감이었다．사무실에서 할 일 없이 앉아 있던 다른 여성들과 과장이 유발시킨 낭비는 결국 고객이 부담하는 것들이었다．

국민연금에 가입했다．이사했기 때문에 고지서를 새 주소로 받고 싶었다． 연금공단에 전화해서 주소를 변경해 달라고 요구했다．그러나 연금공단은 새 주민등록등본과 도장을 가지고 출두해서 주소변경을 신청해야 한다고 했다．주소변경의 목적은 단지 우편물 접수를 위한 것에 불과했다．혼자 살면서 자주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들은 친척이나 친구의 집으로 모 든 우편물을 받고 싶어한다．이것이 바로 「우편물 주소」다．시간을 빼앗 기게 된 고객은 구태여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국민연금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해약해버렸다．

정부는 이보다 더 많은 국민시간 을 박탈하고 있다．국민시간을 절약해주는 일은 범정부적 프로젝트로 추진 돼야 한다．국민시간을 낭비시키면서 국민생산성의 세계화를 외칠 수는 없 는 것이다．＜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

1995.03.17 (금)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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