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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보호법」만들자／지만원

「약자보호법」만들자／지만원（한국병어떻게할것인가：２５）

미국에는 「약자보호법」이 있다．소수민족을 차별하면 중벌을 받는다．대 기업과의 분쟁에서는 중소기업이 보호를 받는다．약자를 보호하는 데는 돈 이 들지 않는다．가장 먼저 나서주는 사람이 지역구 국회의원이다．법원도 약자가 살고 있는 동네까지 가서 재판해 준다．변호사도 약자의 편에 서준다．약자의 편에 서는 변호사는 대부분 승소한다．승소하는 변호사는 강자로부터 충분한 수임료를 얻어낸다．따라서 약자는 변호사 수임료를 걱 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약육강식의 원시적 행태가 만연 돼 있다．

정부는 입만 열면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고 했지만 법과 행 정은 언제나 대기업 편이었다．지난해 ７월２９일자 서울경제와 ８월２６일 자 내외경제신문에는 대기업과 소기업 사이에 일고 있는 특허분쟁이 크게 보도됐다．이 한가지의 분쟁사례를 보면 세계화가 얼마나 겉돌고 있는지 를 실감할 수 있다．Ｈ화학은 오랫동안 ＰＶＣ 조립식문짝과 창틀 분야에 서 ２백억원 시장을 독점해 왔다．여기에 Ｓ화학이라는 소기업이 뛰어들었 다．조립식에서의 핵심기술은 문짝이나 창틀의 직각부분을 어떻게 조립하느 냐에 대한 것이다．두개의 ＰＶＣ 막대기를 직각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연결고리를 사용해야 한다．그 연결고리가 제품간의 차이를 결정해 준다．

두 회사의 연결고리를 비교해 보면 세가지가 현저히 다르다．첫째，연 결개념 자체가 전혀 다르다．둘째，Ｈ화학 설계대로라면 숙련된 기술자가 많은 시간을 들여야 문짝이 조립되지만 Ｓ화학설계에 의하면 아무나 쉽게 문짝을 조립할 수 있고 조립시간도 현저히 짧다．셋째，Ｈ화학제품은 눈 으로 보기에도 복잡하고 약해 보이지만 Ｓ화학제품은 단순하고 견고해 보 인다．이러한 이유로 인해 Ｓ화학제품은 도입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얻어 불과 ４개월만에 ２０％에 가까운 시장을 잠식해 버렸다．고객이 만족해 하는 그 자체로 게임은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당연한 상식이 우리 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데 있다．한국의 대기업들 은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제품에 대해 온갖상표를 생각해내서 등록해 놓고 있다．중소기업이 모르고 비슷한 상표를 사용하면 이 수많은 상표중의 어느 하나에 저촉하게 된다．이처럼 대기업과의 분쟁에 말려들면 언제나 망하는 쪽은 약자다．

Ｈ화학은 문짝과 문틀에 대해서만도 ６백여개의 의장 특허를 등록해 놓고 있다．다른 대기업인 Ｌ화학도 １천여개의 의장특허를 등록해 놓고 있다．이렇게 많은 특허중에서 그들이 불과 １０％미만을 사용하고 있다．나머지는 있지도 않은 가공의 디자인들로서 자신들의 시장 에 뛰어드는 중소기업을 잡기 위한 덫들이다．이들을 모두 비교해 보면 유사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그러나 대기업들간에는 특허분쟁을 하지 않는 다．

Ｈ화학이 Ｓ화학을 옭아맨 제소내용은 크게 두가지다．하나는 문짝 의 조립에 관한 것이다．「연결고리의 설계」는 현저히 다르지만 「막대기 두개를 직각으로 연결하는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것이다．창틀을 직각 으로 연결하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다른 하나의 제소 내용은 문틀에 대한 것이다．화학제품과 닮은 문틀은 얼른 보아도 수십개 나 된다．

Ｈ사 설계와 유사한 설계는 오히려 Ｌ사 제품에서 많이 발견된 다．Ｓ화학제품은 누가 봐도 Ｈ화학제품과 닮지 않았다．Ｈ화학 설계에 사 용되는 문짝의 수평막대와 수직막대는 굵기부터 다르다．수평막대가 수직막 대 속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Ｓ화학의 설계에 의하면 수평 막대와 수직막대가 동일하다．Ｈ화학의 설계를 이용하려면 「굵은 수직막대 」와 「가느다란 수평막대」를 따로 생산해야 하지만，Ｓ화학의 설계를 이 용하려면 한가지 막대만 생산해서 잘라 쓰면 된다．이렇게 열등한 제품을 가지고 독점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소비자의 행복을 허무는 행위다 ．

더욱 심각한 것은 특허청의 무능과 검찰의 편파성이다．１９９４년 Ｈ화학은 Ｓ화학을 상표위반으로 고소했다．１０월에 서울지검 Ｓ검사는 Ｓ 화학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그러나 Ｈ화학은 １２월에 또다시 의장법위 반으로 고소했다．이번엔 서울지검의 Ｊ검사가 사건을 맡아 특허청의 의견 이나 변리사협회의 의견도 참조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기소해 버렸다．재판 에 회부되기도 전에 Ｈ화학은 기소사실을 근거로 법원에 재산 가압류신청 을 냈다．법원은 Ｓ화학제품과 기계에 대해 ２억７천만원어치의 가압류처분 을 내려버렸다．Ｈ화학은 단독 ６７만원의 수수료만을 내고 가압류 처분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Ｓ화학이 이를 풀기 위해서는 ２억７천만원의 현금 을 공탁해야 했다．법원의 판결에서 Ｓ화학이 이긴다 해도 이 가압류처분 은 그 자체로서 소기업에겐 사형선고였다．

특허청은 특허건수가 해마다 증가한다고 발표한다．한사람이 다루는 특허건수가 많아 업무가 과중하다 고 엄살을 부린다．그러나 특허건수라는 것은 결국 이처럼 못난 설계도면 들로 가득 채워진 것들이다．창틀에 대한 설계특허는 소비자의 다양한 선 택과 생산성을 위해 과감히 폐기돼야 한다．이는 표준화의 대상이지 더이 상 특허의 대상이 아니다．또한 대기업은 경쟁자를 사랑하는 법부터 배워 야 한다．경쟁자가 없으면 자기도 망하기 때문이다．＜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 장＞

1995.03.14 (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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