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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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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돼야할 군사문화/지만원(더불어 생각하며)

[한 겨 레] 1992-11-29 (매체) 칼럼.논단 10면 2460자

70년대초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가 이끄는 하나회가 육군 인사권을 잡고 있었다. 그 계통이 아니면 육사 출신도 ‘공정가격’을 지급해야 진급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중령급에서부터의 진급공정가격이 회자되고 있었다. 76년 국방부엔 육사 12기 하나회 회원이 준장으로 있었다. 진급에 떨어진 소령과 중령들이 그에게 공정가격을 가져다주었다. 전방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해도 그들이면 무마되었고 사소한 사고라도 그들이 아니면 처벌되었다.
70년 월남에서는 하나회 정치장교가 연대장이었다. 그가 지휘하던 연대는 경계소홀로 인해 베트콩에게 얕보였다. 베트콩들이 그들의 숙영지에 많은 수류탄을 던졌다. 작전중에 당한 피해는 병가지상사로 용서되지만 경계소홀로 인한 피해는 군법회의감이었다. 그날 그는 피해상황을 보고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그는 암시장에서 몇개의 베트콩 소총을 사갔다. 그날밤 그의 작전지역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것은 교전하고 있는 것처럼 꾸민 쇼였다. 전과와 피해상황이 조작된 대로 보고되었다. 전투를 못하는 그 정치장교는 그와 비교되는 일반장교 출신 연대장의 약점을 캐고 모함하는 데 그의 심복들을 동원했다. 이러한 수법은 정치에서도 볼 수 있었다. 전쟁은 늘 전쟁을 상상하고 부하들을 훈련시키는 사람만이 잘 할 수 있다. 평시에 인간관계 형성을 위해 모든 시간을 바치는 정치장교들이 전투를 잘 할 수는 없었다. 월남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부대들은 대부분 하나회 정치장교들의 부대였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끄떡없었다.

○전과 조작한 정치장교
정치장교들과 인연이 있는 장교들은 서울 근교 부대에서 주요보직을 쌓으면서 인간관계를 활발하게 유지했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동부전선에서 오래도록 근무했다. 장교가족들간에는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자조섞인 탄식이 유행했다. 강원도 산골에 있는 ‘인제’와 ‘원통’이라는 마을로 상징되는 그들의 외롭고 힘없는 처지를 읊은 탄식이었다. 하나회 울타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열심히 일해봐야 모두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럽다”고 미국과 캐나다로 이민간 장교들도 많았다. 이민을 가기 위해 냉동기술을 배우러 야간학원을 다닌 장교도 있었다. 윤필용 전성기였던 70년내초에 많은 똑똑한 장교들이 이민을 갔다. 아웃사이더들은 술도 많이 먹고 울분도 토로했다.
70년도부터 이들이 연대장을 할 때에는 ‘끝발’과 금일봉으로 장병들의 마음을 샀다. 이들 정치장교들이 지나간 자리에 어쩌다 비정치장교들이 가면 그는 가장 인기없고 무능하게 보였다. 이들의 뒤에는 돈있는 대구·경북(TK) 인사들이 돈줄을 대고 있다고 했다. 거의 모든 야전시험에서 이들은 1등을 했다. 그러나 그 1등들은 대부분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들은 국가나 군의 발전보다는 자기지분 확보에 민감했으며 군이 제공하는 모든 혜택은 누렸어도 군을 위해 이렇다할 제도나 문화상의 업적 하나 남기지 못하고 군을 나갔다. 이들은 군에서 인간유대를 위해 그들의 모든 시간을 들여 왔기 때문에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한국군이 어떻게 발전해가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군의 중요한 문제인지에 대해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의 머리는 굳어져 갔으며 따라서 이들은 군에 논리와 과학이 유입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논리·과학 도입 꺼려
2차대전 때부터 연합군 작전은 수학자들이 주도했다. 걸프전에서의 작전 소프트웨어도 수학자들이 개발했다. 소프트웨어의 질은 수학이 좌우한다. 선진국은 물론 특히 소련의 군사학은 “수리공학을 작전운용분야에 응용하는 학문”으로 정의해 왔다. 그러나 한국군 고급장교들은 작전분야에 무슨 놈의 수학이 다 필요한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군에는 자칭 작전통들이 많다. 그러나 군의 그 어디에도 작전분야를 전문분야로 취급해온 것은 없다. 이들은 지도에 색연필로 공격축선을 그리고 방어진지를 그리는 1차대전때 소부대 작전방법을 대부대 작전에도 쓸 수 있는 것으로 안이하게 생각해 왔다. 한국군은 정치장교들의 손에서 너무 오랫동안 깊은 잠을 자며 세계를 외면해 왔다.
전우라는 세계에서 비밀 사조직을 만들어온 사람들에게 공인정신이 깃들 수는 없는 것이다. 눈을 뜨고 선진국을 흉내내야 할 장교들로 하여금 제닭잡기식의 인간관계에 젊은 시절을 허송케 해온 군사문화는 혁신되어야 한다. 하나회는 설사 후배들의 사조직과 직접 연결이 없다 해도 육사인을 분리시키고 출세지상주의라는 그릇된 문화로 그들의 후예를 길러낸 데 대해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군의 사조직은 일종의 마피아였으며 하나회가 없었다면 군이 5·6공을 이루어낼 수도 없었다. ‘알자회’를 해체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릴 수는 없다.

○연구하는 군인 절실
몇대의 탱크와 전투기를 덜 사더라도 군에 전문 대학원을 세워 ‘끝발주의 군사문화’를 ‘연구문화’로 바꾸어가는 데 군은 신사고적 착안을 할 필요가 있다. 멋도 모르고 선배 정치장교들을 흉내낸 젊은이들이 벌을 받아야 한다면 하나회 선배들부터 벌을 받아야 명분있는 처사가 될 것이다.

〈군사평론가·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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