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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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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왜 불신을 자초하는가 (시론)

[한 겨 레] 1992-04-02 (종합) 칼럼.논단 01면 2262자

우리 군대는 지금 할일이 많다. 과학국군으로의 발전과 군의 사회적 위상 및 복지향상이 그것이다.
우리 군은 70만 대군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작전권은 미군에 넘겨주고 있는 상태다.한국군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민족 전체의 수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의 지배욕 때문이 아니라 놀랍게도 우리 군이 아직도 스스로의 힘으로 전쟁을 치를 만큼의 정보·작전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군은 지금까지 몸집은 키워왔어도 두뇌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는 소홀히 해왔다. 이런 머리 기능이 미발육된 기형아적 군사력을 정상적인 과학군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군은 남북 상호군축을 구실로 현상유지를 고수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일방적인 군축을 계획해야 할 때를 맞이하고 있다. 다시 말해 5년, 10년 뒤의 과학군의 비전을 국민앞에 제시하고, 이에 대한 예산을 정당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점점 약화되어가는 군사안보 의식과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부족으로 인해 국방비는 해마다 줄어갈 것이다. 국방비의 감축은 가장 먼저 군의 복지를 위축시킬 것이 분명하다. 군의 중하위급 간부들은 이미 열악한 복지문제와 군의 사회적 위상 추락으로 사기와 긍지를 잃어가고 있다. 사관생도 지망생들의 성적이 중하위권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이는 군의 발전에 엄청난 적신호이다.
이처럼 군은 지금 군 고유의 문제에만 전념하더라도 지혜와 전문능력이 부족해서 고민해야만 할 실정이다. 그런데도 엉뚱하게 군은 지금 부재자투표니, 여당지지 정신교육이니 하는 것들로 구설수에 올라 있다. 이는 군이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과감한 주도권을 취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국민의 여망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군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해서는 안될 일에 뛰어들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부재자투표 부정과 여당지지 정신교육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설사 이들 불법행위가 사실이 아니더라도 대다수 국민들이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어 할 만큼 우리의 군민 관계가 불신 지향적으로 진전돼 왔다는 사실이다. 군은 자칫 군만의 힘으로 국가안보를 지킬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국민과 호흡을 맞추지 못하는 군은 결코 국가 방위를 성공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 군과 민의 호흡을 일치시키기 위한 유일한 길은 군이 국민으로부터 능력과 정직성에 대한 신뢰를 획득하는 일이다. 민주군대의 군인은 ‘군인이기 이전에 훌륭한 모범시민’ 이어야 한다. 군 간부의 마음속에 아직도 특권의식이 살아 있거나 많은 간부들의 도덕성이 잘못된 출세주의에 물든 일부 정치장교들의 영향력에 의해 오염될 때 군은 민주화될 수 없다. 군인의 마음속에 여당은 우군이고 야당은 적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박혀 있는 한 군의 정치적 중립은 이룰 수 없다.
우리 군은 그동안 정치인의 양성소라 할 만큼 많은 정치인을 양산했으나, 이렇다 할 군사전문가나 군사전략가는 배출하지 못했다. 그만큼 군은 정치 지향적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출세 지향적인 장교들은 전문분야에 몰두하기보다는 정치적 고리를 통해 더 많이 출세해 왔다. 그러나 군대에서 정치부정을 저지를 수 있는 장교들은 극히 적은 수에 국한된다. 따라서 군의 정치부정이 사실이라면 이들 소수의 정치장교들로 인해 수많은 선량한 군 간부들이 도맷금으로 불신당하도록 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민은 정치가들이 걸핏하면 ‘국민의 뜻’을 내세워 그들의 주장을 정당화해온 것에 물려 있다. 마찬가지로 국민은 일부의 정치장교들이 그들의 잘못된 행동에 집중되는 여론을 피하기 위해 ‘군 전체의 사기를 해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등의 매너리즘에 의존하는 것도 보기 싫어 할 것이다. 국민은 행동을 믿을 수는 있어도 말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몇년전 어느 신문기자가 군사문화에 대한 대수롭지 않은 칼럼을 썼다 해서 장군까지 동원된 테러를 당했다. 그리고 이번 안기부의 선거부정은 사실인 것으로 판명됐다. 따라서 수많은 정보기관들을 가지고 있는 군에 이런 불상사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더구나 많은 수의 장교들이 신문사와 공선협 그리고 야당에 군의 선거부정 사례를 알려왔다고 한다.
군은 일반 자연인과는 다른 높은 사회규범에 의해 존경을 받는다. 이러한 규범은 마음의 진실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외관적인 진실까지를 요구한다. 매너리즘적 처리방법은 몇몇 정치장교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면하게 해줄 수 있을지언정 군 전체의 위상에는 깊은 상처를 줄 것이다. 국민은 군의 결백성을 보고싶어 한다. 그러나 그 결백성보다 더욱 기다려지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군의 용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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