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View Articles

Name


	지만원

Subject

대형사고 대책, 지금도 없다.

열 그루의 나무, 열 조각의 돌을 정원사에게 맡기면 훌륭한 정원이 가꿔진다. 그러나 이를 공무원에게 맡기면 나열만 한다. 그 나열 물에 생명이 있을 리 없다. 이 말은 사고가 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사고관리에 대한 근본대책을 다짐하고 있는 정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정부가 지금 발표하고 있는 방안들 중에 현실성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단어의 나열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의 공무원 손으로 이러한 다짐을 구체화할 수 있다면, 이는 아마도 사하라사막에 비가 내리는 이변이 될 것이다.

마치 공무원이 정원사가 될 수 없듯이, 공무원의 손으로는 절대로 전문적이고 정교해야 할 사고관리 시스템을 만들 수 없다. 필자는 감히 이를 단언하고 저 한다.

YS정부 때 대형사고에 의해 절단 난 인명피해만 해도 5.18 광주학살이 빚어낸 피해의 2배를 넘는다. 그러고도 지금 정부는 구체성이 전혀 없는 말 잔치로만 일관하고 있다.

박대통령은 박태준씨를 발굴해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제철회사를 만들라]고 엄명했다. 목표가 확실했기 때문에 그의 뜻은 이루어 졌다. 만일 그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 첫 대형사고를 당하자마자 박태준씨와 같은 사람을 발탁해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감리회사를 만들어보라]고 엄명했을 것이다. 수시로 보고받고 현실성 여부를 챙겼을 것이다.

그가 오클라호마 사고 처리과정을 지켜보았더라면, 평소에 별로 할 일이 없는 [비상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불러 미국의 [비상관리청(FEMA)]과 똑같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라고 엄명했을 것이다.

사고예방 시스템을 고안해보라고 엄명했을 것이다. 5분대기조를 편성하고, 사고처리용 장비를 갖추고, 사고처리 절차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광활한 지역에 그럴듯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5분대기조의 시범을 관람했을 것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그의 일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성수대교가 붕괴됐을 때, 정부는 외국감리회사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겠다고 했다. 삼풍참사가 발생하자 이번엔 [전면 허용]하겠다고 했다. 꿈에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감리회사를 시범적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은 그려본 적이 없다.

가장 훌륭한 감리회사라면 시공업체에 따라 감리비용을 차등적으로 받을 것이다. 시공능력과 품질관리 시스템이 허술한 건설업체에 대해서는 엄청난 감리비용을, 이러한 시스템이 훌륭한 업체에게는 저렴한 감리비용을 부과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모든 건설업체는 엄청난 감리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앞을 다투어 가면서 시공능력과 품질관리 능력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대통령이 일일이 나서서 엄명할 필요없이 감리회사와 건설업체간에 치고 받는 싸움을 계속해 가면서 발전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이 [사회발전 자동화 시스템]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감리는 하나의 통과의례요 먹이 사슬에 불과하다. 감리 능력도 없다. 따라서 감리사는 공무원의 시녀에 불과하다. 한국에 만일 훌륭한 감리회사들이 양성되고, 이들이 원칙대로 감리활동을 한다면 공무원은 먹을 일이 없어 살맛을 잃을 것이다.

삼풍백화점과 같은 엄청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가장 훌륭한 감리회사가 감리를 해도 벅찬 일이었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이를 구청 주택과장에게 맡긴 것이다. 전문지식은 없고, 이집 저집 다니며, 불법개축 건수나 찾아내 돈을 챙기기로 소문나 있는 구청 주택과장이 삼풍백화점 안전도에 대해 전권을 쥐고 도장값을 받은 것이다. 삼풍에서 발생했던 천여명의 인명은 바로 정부의 못난 시스템이 절단 낸 것이다.

민관합동점검반을 편성해 모든 건축물의 안전여부를 점검하겠다는 것은, 듣기에는 그럴 듯해도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소가 웃을 일이다. 그 엄청난 건축물에 대해 [한시적으로 운영될 민관합동점검반]이 무슨 수로 3년에 한 차 레씩 안전점검을 실시한다는 말인가.

누가 그 많은 건물에 대해 매 3개월마다 안전을 점검한다는 말인가. 이 땅에 사고의 대상이 건물붕괴 뿐인가. 철로, 지하철, 홍수, 선박, 항공, 가스, 교량 등에 대한 안전점검은 누가 다 한다는 말인가.

시설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안전지식을 전파하고 교육하는 일은 누가 한다는 것인가. 새로운 안전지식은 누가 개발할 것인가. 정부는 아직도 시스템에 대한 발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때우려는 발상과 말로 때우는 발상만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는 매년 2,000억원 정도의 수해 예산이 반영돼 있다. 수해가 나면 이 예산은 긴급을 요한다는 명분으로 [수의계약]에 의해 마구 방출된다. [수의계약]에서는 엄청난 콩고물이 떨어진다.

사고가 나야 공무원들에게 이익이 돌아오는 데, 그들이 무엇 때문에 사고위험을 호소해 오는 주민들에게 귀를 기울이겠는가. 더러는 [공무원도 사람인데 설마] 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사와 같은 소시민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를 관리하는 사람은 이렇게 [순진]해서는 안 된다. 이 나라에는 선진국처럼 사고예방 및 처리에 대해 책임을 지는 기구자체가 없는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제보되는 위험신고를 반색해주는 기관도 없는 것이다. 정부는 소방국을 소방청으로 확장하겠다는 것을 [가장 큰 대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부분적 시각으로는 절대로 사고를 예방하거나 관리하지 못한다. 해마다 장마가 오고, 장마가오면 늘 똑같은 사고들이 발생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전과 똑같은 행태로 속수무책이다.

10여명의 중국인 학자들이 학술회의 차 내한했다. 그들은 한국에 법이 없기 때문에 사고가 반복된다고 진단했다. 삼풍의 간부들에게 어떻게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누가 이러한 엉터리 법에 매달려 사는 법관들을 존경할 것이며, 누가 엉터리 같은 법을 지키고 싶어 할 것인가]. 전 주미중국대사의 말이었다.

2001. 3. 25


Prev	한국인의 아이덴티티	지만원


Next	감사원이 국가발전의 걸림돌	지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