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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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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 없는 한국 사회

학교재단들은 회계자료는 공개하지 않으면서 적자만 주장한다. 부정사례가 적발될 때마다 그것은 적자를 메꾸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변명했다. 1993년 원주 '상지대' 사례는 이 모두가 허구임을 증명해줬다. 재단 이사장들은 학자금을 빼내갔으며 채용되는 교수와 학부모들로부터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

정부는 재단에 대해 네 가지 시스템을 강요해야 한다. 첫째는 정상적인 회계 시스템을 운용하도록 하고 둘째는 회계의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 학교내의 견제 시스템을 설치토록 하며 셋째는 재단과 학사를 완전 분리시켜 학사의 독립을 보장해 주며 넷째는 지방 유지들로 구성된 15-20명의 감시위원회를 둠으로서 운영에 대한 감시기능을 수행케 해야 한다. 15명이라는 수자는 야합할 수 없는 다수다. 이러한 시스템은 은행, 병원, 연구소, 국가기관, 국영업체 등의 공익기관에 모두 적용돼야 한다.

학교재단의 부패구조 못지 않게 심각한 것은 정부예산의 낭비구조다. 정부 예산관리에 대한 문제는 공무원들의 정신적 자세에서만 유발된 것이 아니다. 예산시스템이 전근대적이고 예산공무원과 이를 감시하는 감사원이 20년 전에 비해 조금도 변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정부예산이 합리적이고 효율성 있게 쓰여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대 정권 치고 정부 예산관리 시스템을 현대화해야 한다는 사실에 착안한 사람은 없다.

돈이 모자랄 때마다 이들은 합리적인 운영방법을 고안해 내지 않고 극히 원색적인 방법으로 돈을 조달해 썼다. 원정치가들은 기업에 손을 내밀었고 행정부는 무작위적인 방법으로 국세를 올렸다. 가장 머리를 쓰지 않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일단 구실이 생기면 100억이 필요한데도 200억을 챙겨 나눠먹었다.

정부가 정부예산의 한푼한푼에 대해 사명감을 가졌다면 그 동안 청와대는 정부의 예산관리 시스템을 현대화하는 일에 범정부적 개혁을 주도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낭비는 없었을 것이며 1960년대에나 어울릴 수 있을 예산회계법이 아직까지도 바이블 역할을 하고 있는 기막힌 현상도 없었을 것이다. 감사원의 예산보호 능력도 지금처럼 유치하지는 안았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자신들이 정부예산관리 현대화작업을 주도했다. 그 중에서도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대통령은 케네디와 죤슨이었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은 행정부 예산관리 시스템을 현대화시키기 위해 정부재정의 30%를 차지하고 있던 국방예산을 표본으로 하여 제도혁신을 주도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과학적인 경영기법들이 유행했다. 마케팅, 재무관리, 생산관리 등 지금 우리 나라 대학에서 강의되고 있는 재래식 경영학으로는 이러한 시스템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따라서 운용분석학 또는 시스템분석학(OR/SA: Operations Research/Systems Analysis)을 중심으로 하는 응용수학기법들이 규모 큰 국가경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총아로 등장되기 시작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 일을 위해 당시 포드사 사장으로 갓 임명됐던 맥나마라를 국방장관으로 전격 기용했다. 맥나마라는 연봉 66만 달러의 높은 급료를 포기하고 연봉 2만5천 달러의 각료직을 택했다.

그때 미국의 장관직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깨끗해서 이권을 챙길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는 경영학,수학 그리고 통계학에 대한 강한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2차대전시에는 중령으로서 군보급을 과학화하는 일에 상당한 경험을 쌓았다.

그의 머리는 컴퓨터와 같다고들 했으며 케네디 대통령은 그를 그의 각료들중에서 가장 훌륭한 각료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맥나나라는 당시 랜드연구소에 있던 힛치(Hitch)박사로 하여금 그가 원하는 모든 분석가들을 이끌고 국방성에 입성할 것을 요청했다.

불과 몇 사람이 고급직위에 앉았다고 해서 그들 소수가 개혁을 주도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히치와 맥나마라는 국방예산 제도를 두 가지 측면에서 개혁했다. 하나는 절차의 과학화이며 다른 하나는 의사결정의 과학화였다. 절차를 위해서는 거의 모든 세계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계획예산제도(PPBS: Planning,Programming and Budgeting System)를 창조해 냈으며 의사결정의 과학화를 위해서는 장관 직속하에 대규모 분석팀을 설치했다. 이것이 한동안 세계를 풍미했던 맥나마라 국방관리 시스템이었다.

그후 죤슨 대통령은 참여관리(Participatory Management)에 대해 각별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하바드의 세계적인 경영학자 앤소니 박사를 국방성 관리차관보로 임명했다. 미국에서 공부한 경영학도 치고 그가 쓴 회계 이론과 감사이론에 대한 교과서를 배우지 않은 사람이 드물 만큼 그의 저서는 인기가 있었다.

1966년 5월24일자 죤슨대통령의 백악관 각서는 지금부터 28년전에 미국 대통령이 얼마나 정부예산 관리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는지에 대해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한국경제의 침몰 참조)

2000.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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