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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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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개조 35제(26) - 기법경영의 투명성 확보

과제20.  기법경영의 투명성 확보

―――
   미국에서는 기업의 투명성을 감시하는 가장 무서운 공인
   회계사가 한국에서는 기업의 몸종이다. 한국경제에는 논
   리 자체가 없는 셈이다.
―――
   주가는 기업의 실력이고, 그 실력은 재무제표에 나타난
   다. 그런데 재무제표가 불완전하고 가짜이면 누가 그 회
   사의 주식을 사겠는가.
―――
    지금의 위기는 외환 위기다. 원화를 실명제에 의해 통제
    해야 한다면 외환은 무슨 제도에 의해 통제해야 하는가.
    국가부도는 외환부도이다. 왜 더 중요한 외환관리는 방
    치하고 덜 중요한 원화만 실명제로 통제하려 했는가.

  시장경제 제2의 원칙은 정보의 투명성이다. 재무정보의 투
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시장경제는 있을 수 없다. 그런
데 우리에게는 바로 이 중요한 것이 없다. 시스템을 모르는 경제학
자들은 이 사실을 간과한 채 툭하면 ‘시장경제’에 맡기자고 주장했
다. 기업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어떻게 하는가.
공인회계사에게 기업 감시의 경찰권을 부여하고 있다. 공인회계사
의 공신력이 무너지면 미국 경제에 가장 중요한 주식시장이 마비
된다.

  한국에서는 은행과 사채시장이 기업의 가장 큰 젖줄이지만 시장
경제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주식시장이 가장 큰 젖줄이다. 주식시장
이 건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나는 재무제
표의 신뢰성을 보장해주는 공인회계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증권
시장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증권 감독 시스템이다.

  주가는 기업의 실력이다. 기업의 실력은 재무제표에 나타나 있
다. 그런데 그 재무제표가 가짜로 작성된다고 생각해보자. 누가 주
식을 사겠는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기업들, 특히 재벌기업들
의 재무제표는 100% 가짜이다. 선진국 사람들이 이 사실을 늦게야
알았기 때문에 혼비백산하여 달아난 것이다.

  만일 증권시장의 질서가 허술해서 펀드매니저들이 쉽게 편법을
동원해 주식시장을 동원해보라. 누가 믿고 주식을 사겠는가. 그래
서 미국에서는 SEC(Security & Exchange Commission)가 증권시장
을 밀착 감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SEC의 망령이 누구에게나 드
리워져 있다.

  여기에 걸리면 경제활동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벌을 받는다.
미국에서는 형사사범보다 경제사범이 더 혹독한 벌을 받는다. 형사
범은 개인을 해치지만 경제사범은 시장경제 전체를 파괴하기 때문
이다.

  미국인들은 공인회계사의 서명을 믿고 주식을 산다. 그래서 공인
회계사는 재무제표에 관한 한 무한책임을 진다. 재무제표 항목에
관한 한 ‘기업비밀’이란 있을 수 없다. 기업은 ‘완전공개원칙’(full
disclosure principle)에 따라 공인회계사에게 모든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만일 이에 저항하는 기업이 있으면 미국공인회계사협회
(AICPA)로 부터 ‘감사불가’ 판정을 받게 된다. 그런 기업은 그날로
끝장이다.

  재무제표 종류도 미국에서는 4가지이지만 한국에서는 2가지다.
한국은 ‘현금출납 흐름표’(statement of cash flow)와 ‘연결재무제
표(consolidated financial statement)를 작성하지 않는다. 왜 2가지만
작성하는가. 4가지 모두를 작성하면 가짜회계가 불가능하기 때문
이다.

  한국이 작성하는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에는 정적인 기업정
보가 들어 있지만 우리가 작성하지 않는 나머지 2개의 재무제표에
는 동적인 정보가 실려 있다.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지 않으면 그
룹기업간의 거래가 모두 이익으로 분장된다. 의도적인 속임수다.

  선진국 공인회계사는 공신력을 갖지만 한국에서는 기업의 몸종
이다. 공인회계사의 공신력이 타락하면 미국의 경제라 하더라도 금
방타락한다. 한국기업의 재무제표를 진짜로 만들지 않으면 한국시
장은 영원히 불신 당한다. 투자자들도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
다. 한국기업은 파행경영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파행경
영은 외국의 과학경영과의 첫 라운드에서 KO당한다. 그래서 정부
는 이에 대해 엄격해야만 한다.

  IMF는 바로 이를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매우 부끄럽게
도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이에 저항했다. 우리는 스스로 자청해서
경제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에 가입했다. 이제 와서 ‘한국적 상
황’을 내세우며 국제공준을 외면하는 것은 국제적 조소감이다. 이
를 알지 못하는 경제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이 한국재벌을 무서워
해 해체하려 한다’며 감정적인 국민정서를 유도했다. 바보스러운
국수주의다.

공인회계사, 선진국에서는 경찰, 한국에서는 몸종

  공인회계사석 수임료에도 시스템이 있다. 한국에서의 수임료는
건당 무조건 정액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회계시스템의 신뢰성에
따라 기업마다 차등적으로 부과된다. 시스템의 신뢰성이 높으면 샘
플기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수임료가 적게 든다. 그러나 신뢰성이
낮으면 모든 거래를 일일이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수임료가 비싸
다. 따라서 기업은 수임료를 줄이기 위해 시스템의 신뢰도를 증진
시키려 한다. 투명성이 자동적으로 증진되고 있는 것이다.

  공인회계사! 미국에서는 국민을 대신해 기업을 감시하는 서슬 푸
른 경찰이지만 한국에서는 기업의 몸종일 뿐이다. ‘내가 일으킨 기
업인데 감히 누가 간섭해.’ 이 천민자본가 의식은 IMF의 힘을 벌려
서라도 청산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비자금’은 거의가 기업으로부터 나온다. 공인회계
시스템이 죽어 있기 때문에 성행하는 것이다. 공인회계 시스템이
살아나면 비자금도 차단된다. 그런데 그 많은 경제학자들은 왜 이
렇게 중요한 분야를 외면하고 지엽적인 금융 실명제부터 주장했는
가. 시스템은 모르고 정의감만 앞섰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업으로부터 검은돈이 빠져나가 많은 이들의 캐비닛 속
으로 들어가고 있다. 검은돈의 원천은 차단하지 않고, 캐비닛이라
는 블랙홀로 들어가는 검은돈을 은행에 신고하라면 누가 할 것인
가. 공인회계 시스템은 기업을 정상화시키고 검은돈과 정경유착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없어서는 안 될 우선순위 제1위인 핵심 시스템’
이다.

  이런 시스템은 방치한 채, 우선순위 제10위의 금융 실명제를 먼
저 실시한 것은 시스템 차원에서 보면 코미디다. 많은 경제학자들
이 입으로는 시장경제를 외치고 있지만, 그들은 아직도 경제를 시
스템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가. 30조에 이른다는 그 검은돈은 과소비
되거나 외화로 바뀌어 장롱 속, 금고 심지어는 콘크리트 벽 속에
숨거나 해외로 유출될 수밖에 없다. 어제까지도 비었던 캐비닛이
오늘 검은돈으로 채워질 수 있다. 그 어마어마한 돈을 갑자기 받는
사람은 지하경제에 큰돈을 굴릴 수 있는 전문가들이 아니다. 신분
때문에 막연한 무서움에 떨 것이다. 누가 감히 이자돈 좀 벌자고 자
칫하면 패가망신할 수 있는 엄청난 모험을 감행하겠는가. 그런 돈
은 지금도 장롱에 숨어 있다. 신분이 높을수록 ‘쥐가 돈으로 집을
짓고 살아도’ 그 돈은 나오지 않는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처럼 한 푼이 아쉬운 때는 이러한 돈이
꼭 제도권으로 나와야 한다. 골프하는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농
담이 있다. ‘골프가 안 될 때는 양말이라도 바꿔신으면 달라진다’는
말이다. 금융실명제는 파기하고 그 대신 공인회계 시스템과 거래실
명제를 설치해야 한다. 경제가 건강하다면 일단 만들어진 제도를
무리를 감수하면서라도 밀고나갈 수 있겠지만 임종 직전에 놓인
허약한 경제상황에서 실명제의 강행은 독약이 될 수 있다.

원화를 실명제로, 외화는 무엇으로?

  실명제는 기껏해야 '한국 돈’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한국 돈 때문이 아니라 외환 때문에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는 무역
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자금시장이 개방되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외환관리 시스템이 없다. 금융실명제 주창자들
에게 묻고 싶다. 한국 돈을 실명제로 통제해야 한다면 외환은 무슨
제도에 의해 통제해야 하는지를.

  은행과 종금사들은 단기성 외채만 선호했다. 1년 이상짜리 장기
외채는 재경원에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3개월 미만짜
리가 전체 외채의 50%를 차지한다. 이런 돈은 신고조차 하지 않고
마구 들어왔다.

  한국경제에 대한 소문이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이들 단기외채를
꾸어준 외국 은행들은 대출금을 일시에 회수해버린다. 국가가 부도
날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국가부도는 즉 외환부도다. 외환부도의
위험성은 바로 재경원이 만들어낸 것이다. 약간의 이자 차이 때문
에 장기성 의채는 통제하고 단기성 외채는 방치해 버린 재경원의
실책은 질타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외환관리 무풍지대에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외환
관리 시스템에 착안하자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아직도 금
융실명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농경
문화권에서 하루빨리 시스템 문화권으로 진입해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공인회계 시스템을 현대화하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영원히 신뢰를 잃는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회계법인체를 이용하여
한국 회계수준을 증진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영 ․ 회계 ․ 감사 ․
시스템 분야에서 존경받는 국내 최고의 석학을 선출하여 미국의 공
인회계사협회(AICPA)와 같은 실력 있고 존경받는 무시무시한 사령
탑을 설치해야 한다. 미국 공인회계 법인체들이 유입되지 않고서는
한국 공인회계 시스템은 ‘죽어도’국제 수준으로 변신하지 못한다.

  포항제철에도 신화가 있듯이 경제시스템 황무지에 사령탑을 세
우는 데에도 신화적 존재가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최고의 석학들이
산출해내는 회계공준과 기준들을 한국에서는 재경원 사무관들이
대신하고, 미국에서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관장하는 공인회계사협
회가 재경원 퇴직 공무원들로 채워져 있으니, 이 어찌 한심한 사회
가 아닌가.

  IMF는 최소한 금융기관에 대한 재무제표 감사를 미국 최고의
공인회계 법인체에 의뢰할 것이다. 앞으로 미국의 공신력 있는 공인
회계 법인체에게 감사를 의뢰하지 않는 대기업의 주식은 외국 투
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것이 공신력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공
신력 황무지다. 대통령과 장관들에게도 공신력이 없다. 한국 사회
전체가 잃어버린 공신력을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하는가. 만일 IMF
가 강제력을 행사해서라도 한국의 공인회계 시스템만 제대로 설치
해 준다면 선진 공인회계 시스템이 발취할 엄청나고 실감나는 영
향력은 한국사회 전체에 본보기이자 자극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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