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View Articles

Name


	지만원

Subject

시스템 리더십과 미국 테러 사건의 교훈

전구는 에디슨이라는 개인이 발명했다. 그러면 인공위성은 누가 발명했나? 시스템이 발명했다. 인공위성은 개인이 발명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1930년대에는 에디슨이라는 한 개인이 미국 일자리의 6분의 1을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기술제품은 시스템 의 힘만이 개발할 수 있다.

각가지 연장이 창고를 무질서하게 가득 채웠다고 하자. 필요한 연장을 급히 찾으려고 보니 창고에 질서가 없어 하루 종일 찾다 말 것이다. 연장이 많으면 많을수록 골치덩이다. 시스템이 없으면 다다익선이 아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혜와 지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지혜와 지식은 현실적 가치를 창조할 수 있도록 조직화돼야 의미가 있다.

한 분야에서 경험을 많이 쌓은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경험으로부터 지혜와 교훈을 이끌어내고 그것들을 조직화하여 현실적 가치를 구현해내지 못하는 한 그들은 "원주민"일 뿐이다. 반면 시스템에 대한 센스와 이론을 갖춘 사람은 남의 경험을 가지고 가치를 창조해낸다. 바로 이들이 전문가인 것이다.

상식인들이 갖고있는 지식과 지혜를 체계화하고, 시스템공학자들이 다양한 수학적 분석 기법을 동원하여 찾아낸 문제의 해답들을 체계화시킨 것이 바로 소프트웨어라는 자산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건물이나 도로보다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조해낸다. 지식산업의 결정체가 바로 시스템인 것이다.

홍수의 물결 속에서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개울 양쪽에 있는 두 사람이 밧줄의 양끝을 쥐고 있었다 하자. 줄넘기 식으로 늘어진 밧줄의 중앙을 개울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잡게 하려면 밧줄을 상류에서부터 내려 주어냐 하겠는가 또는 하류에서부터 훑어 올려줘야 하겠는가.

나는 이 질문을 인명구조를 책임지는 소방서 초급간부들에게 강의시간을 통해 물어보았다. 대부분이 밧줄을 상류 쪽에서 내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일 밧줄을 상류에서부터 내려주면 성난 물결이 밧줄을 마구 때릴 것이다. 이런 밧줄이 구조될 사람을 때려 보자. 균형을 잃고 떠내려갈 것이다. 따라서 밧줄은 하류에서부터 훑어 올려줘야 한다. 이렇게 설명해주니까 거의 모든 간부들이 동의했다.

만일 상류에서부터 내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간부들이 인명을 구출하러 나섰다 하자. 그들은 한 사람의 목숨을 일순간에 절단 냈을 것이다. 시간이 많을 때에는 느긋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토의에 붙일 수도 있겠지만 위급한 상황에서는 그러한 여우가 없다. 따라서 시간이 있을 때에 지혜를 조직화해서 위급 시에는 조건반사적으로 그 지혜가 발휘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토의와 연구를 통해 각종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가상해내고 둘째, 그 각각에 대한 상황처리 방법과 절차를 연구해내서 이를 표준화하고 셋째, 구조 장비와 표준화된 절차를 연합시켜 구조요원들에 대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 이것이 시스템이다.

머리좋은 두 학생이 같은 반에서 공부를 했지만 1등은 언제나 정해져있었다. 2등을 한 학생은 "이제 모든 내용을 완전히 소화했으니 문제가 나오면 그때 그때 응용력을 발휘해서 풀면 된다"라는 자세로 시험에 임했다.

1등을 한 학생은 제한된 시간 내에 자기의 실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예상되는 문제의 패턴을 상상해내고 각 패턴별로 문제풀이 요령과 절차를 표준화해서 그에 따라 훈련을 한 것이다.

경영이란 "수많은 타인의 능력을 활용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기술"이다. 따라서 수많은 타인의 능력을 한 곳으로 지향시키는 데에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 시스템의 질이 성과를 좌우한다.

옛날 모세 때에는 선악에 대한 판단과 단편적인 지혜만을 가지고도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지혜와 판단들을 시스템이라는 매체로 잉태시킨 후 그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야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지금은 시스템이 사람을 통제하는 시대다. 은행의 대기번호표 시스템이 사람을 통제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훌륭한 최고경영자의 약속도 시스템으로 뒷바침되지 않으면 공수표에 불과한 것이다. "내 밑에서 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시스템 리더십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경영자와 관리자는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2001. 9. 11일 미국 심장부가 테러를 당했다. 월드 트레이드센터 두 개가 테러리스트들의 가미가제 공격에 폭삭 내려앉았고, 펜타곤이 파괴됐다. 만 여명이 사망했고, 주식시장이 문을 닫고 전국에 비상령이 선포됐다. 하늘에 나르는 민항기를 탈취하여 가미가제 식으로 건물을 드려 받으리라고는 아마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이러한 시나리오를 미리 상상만 했더라도 모든 여객기에 테러 경고 시스템을 설치했을 것이다. 테러 경보 단추 여러 개를 비밀스런 곳들에 설치해 놓고 승무원이면 누구라도 단추를 누를 수 있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그 항공기만이 갖는 고유 전파와 함께 항공기 위치가 계속 항공 테러 상황실에 보내졌을 것이다. 테러 당한 비행기가 추적되면 가장 가까운 공군기지에서 전투기가 떴을 것이다.

자기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보편적인 한국인들이다. 남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사람도 있다. 선진국 사람들이다. 더 멋있는 사람은 여러 사람들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그에 대한 시스템적 대책을 마련하는 사람이다.

2001. 9. 12


Prev	측정 시스템 없으면 경쟁력도 없다	지만원


Next	사회는 혁명으로 치닫는가? (노재봉 전총리)	지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