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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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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시간을 절약시켜라

한편으로는 고임금을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정부가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 시간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가장 가까운 곳부터 들어보자. 미국에서 운전 면허증을 따려면 두 시간이면 된다. 필기 시험에서는 20개 정도의 교통 규칙에 관한 상식만 묻는다.

필기 시험은 단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데스크 앞 공간에 놓여진 여러 개의 탁자 위에서 개별적으로 치른다. 시험 시간에 대한 제한은 없지만 선다형이고 교육적이어서 대부분 5-10분이면 끝나고, 70점만 받으면 합격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시험장에 가면, 50 쪽짜리 책자가 쌓여 있다. 그 책을 읽는 데에는 한 시간이면 족하다. 시험 문제는 그 중에서만 출제된다.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도 있다. 친구들이 치른 시험지를 몇 개만 얻어 가지고 20분 정도만 읽어보면 100점도 맞을 수 있다. 여기에 무슨 돈과 시간과 스트레스가 결부되겠는가.

실기 시험은 주행 시험뿐이다. 예약된 시간에 자기 차를 몰고 와 거리를 주행하고 길가에 주차하는 실력만 보여주면 합격이다. 소요 시간은 20분 정도다. T자나 S자 코스 같은 것은 없다. 만일 한국의 택시 기사를 불러 갑자기 T자나 S자 코스를 운전시켜보면 많은 이들이 불합격될 것이다. 이렇듯 실용성이 없는 시험을 무엇 때문에 시키는가. 한국의 운전 면허 시험은 실용성을 위해 치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괴롭히기 위해 있는 것이다.

나는 미국 면허증을 한국 면허증으로 바꾸는 데에도 3일을 보냈다. 전화로 일일이 문의하고 갔는데도 서류가 부족하단다. 여권만 보면 출입국 사실이 다 증명되는 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출입국관리소가 발행한 증명서를 떼어오라고 해서 김포에까지 다녀왔다. 미국에서 발급받은 국제 면허증만 가져오면 된다기에 그것만 가져갔더니 의외로 요구하는 서류가 많았다.

갱신 기간이 10년 이상 초과된 미국 면허증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 가는 길에 미국 자동차등록관리소에 들러 그 면허증을 보여주었더니 즉시 컴퓨터에 조회를 했다. 기록이 나오자 그 공무원은 나보다 더 좋아하면서 "여기에 당신 기록이 있습니다. 사고 기록이 없으니 내가 재발급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더니 사진을 찍으란다. 사진 찍는 공무원이 활짝 웃으라며 사진을 찍었다. 두 개의 사진을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어느 사진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손바닥만한 쪽지로 된 임시 면허증을 내주면서 정식 면허증은 4주-6주 사이에 집으로 배달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정식 면허증은 4주만에 미국 친구의 집으로 배달됐고, 그 미국 친구는 등기 우편을 통해 내게 전해줬다. 그 미국 면허증과 미국에서 발행해준 국제 면허증을 가지고 국내 면허증으로 바꾸는 데에만 3일을 꼬박 소비한 것이다. 미국 공무원은 나를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자세였고, 한국 공무원은 어떻게든 나를 골탕먹이려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1980년도에 한남동 면허 시험장에서 면허증을 땄다. 툭하면 시동이 꺼지는 낯선 차량을 가지고 주행 시험을 두 번이나 치르면서 딴 것이었다. 미국에 오래 있다보니 면허증의 갱신 기일이 지났다. 귀국 후 갱신을 하려니까, 출국할 때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갱신할 수 없단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니 그 엄청난 지옥을 드나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 갈 때마다 10달러를 주고 국제 면허증을 받아왔다.

미국 정부는 갱신 기간을 10년 이상 넘긴 한국인 방문자에게도 즉석에서 면허증을 갱신해 주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미국을 갈 때 신고를 않았기 때문에 면허증 갱신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장기간 체류를 위해 외국에 나가면서, 운전면허소에 신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가령 두 사람이 동시에 출국해서 5년 간 해외에 있다가 동시에 들어왔다고 하자. 한 사람은 신고를 했고, 다른 사람은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자. 면허증을 갱신받는 데 있어, 출국 사실을 신고한 사람과 신고하지 않은 사람 간에 실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한국에 규제가 많다는 것은 바로 "출국 신고"와 같은 불필요한 요구 조건을 가급적 많이 늘려 국민과 기업을 괴롭히고 시간을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 시간을 절약해주는 방법을 획기적으로 시정하고 개발해내지 않는 한 국민생산성은 향상되지 못한다. 시간을 많이 빼앗는다는 것은 시간만의 낭비가 아니라 교통비, 공해, 시간 등과 같은 낭비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낭비는 그 불필요한 행정에서 국민 각자가 느끼는 불쾌감과 좌절감이다. 이러한 정신적 상처가 국민문화와 생산성에 얼마나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공무원들은 생각해야 한다.

국민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실이나 총리실에 임시 연구 조직을 두어야 한다. 정부 출연 연구소, 사계, 학계의 전문가, 그리고 특히 경영학이나 산업공학 학도들로 구성된 태스크팀인 것이다. 이들이라면 국민 시간 절약 과제를 찾아내고, 이에 대한 시스템적 대안을 찾아내며, 이를 실천 계획으로 전환하여 각 부처에 하달하고, 실천 과정을 지도 감독하는 일을 책임질 수 있을 것이다.

규제를 완화하고 행정을 간소화하는 일도 이들이 해야 할 것이다. 이 조직으로 하여금 모든 민원을 받아 원스톱 서비스를 수행해주도록 해야 한다. 청와대 특별 팀에서 정부의 각 부서를 움직여가면서 민원을 해결하다보면 무엇 무엇이 불필요한 규제인지 금방 발견할 수 있고, 행정 시스템의 한계와 맹점에 대해서도 파악될 수 있을 것이며, 대안을 찾기 위해 수많은 연구소를 동원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많은 문제들이 동시에 풀린다. 기업은 민원 목적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어 부지런히 기업 활동을 할 수 있으며, 민원 부정도 없앨 수 있다. 사실 중소기업청을 만들 것이 아니라, 이러한 팀을 먼저 만들었어야 했다. 행정쇄신위원회가 여러 해 활동을 했지만 성과가 없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의 행정쇄신위의 편성을 보면 이러한 전문 분야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비단 행정쇄신위뿐만 아니다. 교육개혁위원회를 포함하여 이제까지 청와대에서 만든 위원회를 보면 거의가 다 그랬다. 청와대에서 무슨 위원회를 만든다고 하면 고정 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줄을 대고 로비전을 펼치면서 자리를 차지했다. 결국 그들은 능력의 한계에 부딪쳐 공무원들의 들러리로 전락했다.

2001.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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