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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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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비용

행정부가 기업에 유발시키는 비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업체가 현금으로 지불하는 도장값과 그 부수 비용이고, 다른 하나는 삼팔선보다 더 완강한 관청 문턱이 국민의 의욕과 기회를 말살하고, 방해하고, 지연시키는 데에서 발생하는 천문학적인 기회 비용이다.

1980년대 중반에 미국에서는 화이트 칼라의 관료주의가 유발시키는 기회 비용을 부각시키기 위한 연구가 있었다. 그 결론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일반 사기업의 경우에는 "매출액"의 20-40%의 기회 비용을 유발시켰고, 비영리 공공 기관에서는 40% 이상의 비용을 유발시켰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무능한 경영자는 눈에 보이는 비용을 절약하려고 하지만, 그 절약이 유발시키는 기회 비용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무능한 경영자는 보증 수리비를 절약하려 든다. 결함 수리비, 재작업비, 시험 검사비, 반품 및 폐품 처리비 같은 것들은 회계 장부에 잡히는 비용이기 때문에 눈에 보인다. 무능한 경영자는 이러한 비용을 절약하려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비용을 보지 못한다.

기업 이미지로부터 발길을 돌리는 고객이 유발하는 기회 비용, 재고 축적으로 인한 자금 사장 비용, 값싼 설계가 유발시키는 사후 보수비용, 삼풍과 같은 사고 비용, 의사 결정 기간이 길어서 잃게 되는 기회 비용, 기계 고장이 유발하는 기회 비용, 사원들과 간부간의 접근을 어렵게 해서 잃게 되는 기회 비용, 복잡한 행정이 유발하는 의욕 감퇴 비용, 애매한 목표와 구식 기준이 유발하는 의욕 상실 비용, 직장 내 불쾌감과 위압감이 유발하는 생산성 저하 비용, 비생산적인 회의가 유발하는 시행 착오 비용, 하청 업체를 과도하게 경쟁시키는 데에서 발생하는 품질 저하 비용; 이 모든 것들은 회계 장부에 잡히지 않는 비용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공부하지 않는 경영자, 목에 힘주는 경영자, 비리마인드를 가진 경영자, 회의를 잘하지 못하는 경영자; 이러한 사람은 그의 무의식적 행동이 회사에 얼마나 엄청난 비용을 유발시키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사례에 비춰볼 때, 우리 나라 국가 공무원들이 유발시키는 비용은 국가 GNP의 50%를 훨씬 넘을 것이다. 이러한 국가 공무원이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과 이를 저지하려는 민간 단체, 그리고 이들 간의 분쟁을 해결해주는 선진화된 재판소만 있고, 행정부 전체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만일 앞으로 10년간만 행정부 공무원들이 봉급만 받고 집에서 휴가를 즐겨준다면 우리 나라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 대열에 낄 수 있을 것이다. 행정 비용과 준조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를 위해 정부는 행정쇄신위원회를 청와대에 만들어 "규제 완화" 작업을 시도했다. 4년이 되도록 행정쇄신위는 2,500여 개의 규제를 완화했다고 하지만 국민이 느끼는 체감 지수는 영점이다.

실패는 처음부터 예측된 결과였다. 규제를 왜 완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과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목표가 확실하지 않으면 매사가 헛수고로 끝난다. 규제의 과중함을 느끼는 쪽은 국민이다.

행정쇄신위는 국민과 기업 편에 서서 그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덜어주는 방법으로 일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행정 부처에게 규제 완화 대상을 이실직고하라는 식으로 일을 시작했다. 따라서 공무원들은 자기 권한을 축소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면피용으로 보고를 했다. 결국 행정쇄신위는 국민의 불만과 공무원들의 변명 사이에서 공무원의 편을 들어주고 있는 관변 위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규제는 왜 완화돼야 하는가. 규제완화 자체가 행정쇄신위의 목표는 아니다. 첫째 목표는 국민 시간의 절약이어야 했다. 선진국 국민의 생산성을 따라잡으려면 정부는 우리 나라 국민 시간을 선진국 이상으로 절약시켜줘야만 한다.

행정쇄신위의 한 간부가 지난 3월 22일 심야 토론에 나왔다. 그는 운전 면허증에 관련된 "적성 검사"를 폐지시킨 사실과, 주민등록등본을 아무 동사무소에서나 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의 업적으로 내세우면서, 국민이 이에 대한 고마움을 너무 빨리 잊어버려 서운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운전 면허증을 따는 데 20달러와 두 시간만 할애하면 된다. 필기 시험과 실기 시험을 아무 때나 걸어들어가 개별적으로 치른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평균 100여 만원의 돈과 100여 시간을 날리고 엄청난 불쾌감을 감수해야 한다. 운전 면허 시험장을 둘러보면 세상에 이런 후진국이 어디 있을까 싶다.

한 시간만 관찰해도 창구에 앉아 있는 면허소 여직원과 응시자들이 위아래 없는 고성과 상스런 욕을 주고받는 광경을 여러 번 볼 수 있다. 시스템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국민 정서를 해치고, 국민 시간을 가장 많이 빼앗는 이러한 원시적 시스템은 언제나 고쳐질 것인가. 현대적 시스템을 공무원들이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공무원의 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퇴직한 공무원들이 할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은 무능함을 자초한 그들의 게으름 때문인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주민등록등본을 요구하는 행정 절차가 없다. 행정쇄신위가 주민등록등본을 아무 동회에서나 발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면, 왜 선진국처럼 주민등록등본 자체를 요구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하지 못했는가. 시스템 개선에 대한 비전이 없었던 것이다.

규제 완화의 두 번째 목표는 행정부를 인허가 관청에서 국가 경영을 위한 책임 경영 주체로 전환시키는 것이어야 했다. 이렇게 되면, 규제로 인해 불편을 겪는 쪽은 국민이 아니라 바로 공무원이다.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일을 처리해주도록 임무를 바꿔주면, 규제의 숲 속을 헤쳐나가야 하는 주체는 민원인이 아니라 공무원이 된다. 이렇게 될 때에야 공무원들은 비로소 지금의 규제들이 얼마나 복잡하고 불합리하며 파괴적인 것인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01.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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