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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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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개조 35제 (14) - 선진시스템이 선진공무원을 만든다

  과제9 . 선진시스템이 선진공무원을 만든다

미국의 중앙부처 과단위에는 공무원이 3명 뿐이다. 수가
적은 대신 여러 사설 두뇌집단에 과제를 주고 매주 1회
씩 토의를 한다. 이러한 생활을 오래 할수록 공무원과 두
뇌들의 능력이 향상된다. 미국사회는 발 빠른 두뇌집단과
진화하는 공무원들의 협력체제에 의해 경영된다. 그래서
사회가 진화하고 있다.
―――
우리의 중앙부처 과단위에는 15명 이상의 과원이 있다.
이들을 돕는 두뇌집단도 없다. 시간이 갈수록 공무원이
퇴화한다. 퇴화하는 공무원들이 만든 제도와 정책에 의
해 굴러가는 사회가 진화할 리 없다.

  미국의 월터리드 의료센터는 시간이 흐를수록 의사의 능력
을 진화시키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의사는 병원, 학교,
연구소를 회전하며 근무한다. 학교에서는 이론을 체계화하고, 연구
소에서는 이론을 실험하며, 병원에서는 약값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
껏 처방한다. 시간이 갈수록 의사의 능력은 향상된다.

  의사와 간호사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시스템도 있다. 약품과
의료용품이 자동화된 모노레일을 통해 전달된다. 의사에게 필요한
최소 재고량이 정해져 있다. 창고 전산기에는 각 진료실에 무엇이
얼마나 부족한지가 표시된다.

  각 진료실로 전달될 바구니에 물품이 채워진 후 모노레일 위에
실린다. 각 진료실을 찾아갈 바구니는 방문 앞에서 정지한다. 신호
를 받은 간호사가 이 바구니를 가져간다. 품목 리스트를 확인한 후
이상 유무를 전산기에 입력한다. 이렇게 해서 의사나 간호사의 시
간낭비를 대폭 줄인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1982년도에
관찰된 내용들이다.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 하더라도 한 번에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밖에는 없다. 그러나 군 장교는 단 한번에 수십, 수만 명의 목숨
을 절단 낸다. 장교들의 질적 문제가 논의될 때마다 우리는 의식만
탓했다. 그러나 미국군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시스템을 개선한다.
그래서 미군은 시스템 덩어리다. 무기개발 이상으로 시스템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선진화된 시스템 속에서 바삐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능력이 향상된다. 미군 장교들은 예편하자마자 취직이 보장된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스스로 잘 팔린다. 그중에서도 현대과학의
집결지라는 군수분야에서 성장한 장교들은 날개를 단 것처럼 아주
잘 팔린다. 그 유명한 맥나마라 국방장관도 군수중령 출신이었다.
그러나 한국군 장교는 예편하면 취직하기 어렵다. 그중에서도 군수
장교들은 더욱 더 어렵다. 한국군 군수장교들이 부정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타락한 세무공무원은 국민이 낸 세금을 수십억씩 축
낼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무능한 고위 공무원이나 대통령은
수십, 수백조의 예산을 공중으로 날려버린다. 우리는 이 모든 낭비
에 대해 의식과 정신을 탓한다. 모든 공직자들이 성인군자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성인군자로만 구성된 공무사회
는 없다. 우리는 그동안 가장 중요한 착안사항을 망각해왔다. 바로
진화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중앙 행정부처의 과단위는 공무원 수가 단 3명 뿐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5~20명이다. 그들은 인원이 적은 대
신 사설연구소에 지급할 수 있는 과제비를 많이 가지고 있다. 워싱
턴 D.C의 순환도로에는 ‘순환도로의 산적’(beltway bandits)이라 불
리는 700여개의 사설연구소가 있다. 국방문제를 연구하는 BDM이
라는 연구소에는 대우나 삼성빌딩과 같은 건물이 12개나 밀집되어
있다. 사설연구소지만 기술적인 1급 비밀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
랜드연구소도 그 중의 하나다.

   과제를 준 공무원들은 매주 1회씩 사설연구소 두뇌들과 의무적으
로 토의를 한다. 과제가 많기 때문에 하루에 4~5시간씩을 토의에
할애한다. 사설연구소 두뇌들은 대학 교수들보다 40% 정도 더 많은
보수를 받는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직업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해마다 연구소 내에는 내부 인력시장(internal labor market)이 형
성된다. 중진 연구위원들이 연구 과제를 사냥해 와서는 과제에 맞는
연구원을 고른다. 이들에 의해 선발되지 않은 연구원은 연구소를
떠나야 한다. 매정하기 이를 데 없다. 똘똘한 두뇌들만 연구소에서
생존할 수 있다. 이들과 토의하는 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공무원
의 두뇌는 자연적으로 진화한다.

  공무원들에게 제공되는 교육내용도 해마다 발전한다. 그래서 미
국 중앙부처의 과장 정도 되면 대단한 존경을 받는다. 결국 미국사
회는 두뇌집단이 만든 제도와 정책에 의해 경영된다. 자연히 사회
가 진화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러한 공무원과 한국 공무원이 협
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데 어떻게 국익이 보호될 수 있겠는가.

  반면 우리의 경우를 보자. 공무원들은 대체로 외부전문가와 담을
쌓고 산다. 그래서 공공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외부전문가도 별로
없다. 이들은 매일 눈치와 절차와 형식으로 근무한다. 이들에게 제
공되는 교육도 형식적이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외
국 공무원에게 제공되는 교육내용과 비교하면 교육이라고 부르기
조차 어렵다.

  교육을 말할 때 우리는 교육기간을 가지고 그 수준을 판단한다.
교육내용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어느 기관장이
기관원 교육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기관에 소속된 학교장은
4개월짜리 교육과정을 8개월로 늘렸다. 그러나 교육과정과 교수진
은 그대로였다. 교수들은 같은 내용을 가지고 시간만 질질 끌었다.
늘어난 것은 학생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잡담뿐이었다. 그러나
4개월 과정을 8개월로 늘렸다는 보고를 받은 기관장은 매우 만족
해 했다.

  한국 최고의 대학원으로 회자되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이 공
무원들에게 석사학위를 부여하고 있다. 공공행정의 핵심은 정책과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 학교의 행정대학원 교육내용에는 정책과 시
스템이라는 내용이 전혀 없다. 결국 한국 공무원들에게는 새로운
교육이 제공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공
무원의 두뇌는 퇴화한다. 이렇게 퇴화되어가는 공무원들이 만든 제
도와 정책에 의해 경영되는 사회에 문제가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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