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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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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개념 없는 문화공보부

지금은 문화에 의한 경영을 해야 한다. 문화가 정착되면 통제 없이도 누구나 열심히 일한다. 국가 경영에서도 문화창조는 필수 기초다. 문화 창조 없이는 경영의 발전도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가경영에는 문화창조가 없다.

엑스포 시설을 성공작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조각 시설의 나열에 불과했다. 시설은 설계했어도 문화를 설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화는 시스템의 산물이다. 엑스포 문화가 돗데기 문화에 불과했던 것은 시스템을 설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열 그루의 나무와 열 조각의 돌을 정원사에게 맡기면 훌륭한 정원이 탄생되지만 공무원에게 맡기면 볼품없이 나열만 한다.

우리 사회의 모든 공공시설들은 공무원의 작품이다. 그래서 문화가 없다. 하나의 시설을 예술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공무원의 일이 아니라 정원사의 일이다. 사회를 가꾸는 일은 한 사람의 정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예술과 과학을 배합할 수 있는 두뇌집단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OS 없는 컴퓨터가 고물에 불과하듯이 운용시스템 없는 사회는 혼란스럽고 삭막할 뿐이다.

시설물은 하드인프라이지만 운용시스템은 소프트인프라이다. 우리는 하드인프라에만 투자했지 소프트인프라에는 투자하지 못했다. 선진사회는 소프트인프라에 많은 돈을 쓰지만 후진국은 하드인프라에만 투자한다.

서울거리를 운용하는 가장 단순한 신호등에도 시스템이 없다. 교통의 흐름을 도와주어야 할 신호등이 흐름은 무시한 채 제멋대로 불을 바꾼다. 서울 거리의 신호등은 무엇인가? 어느 장사꾼 교수의 소개로 정부는 일본 교통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를 사다가 그대로 설치했단다. 소가 웃을 일이다. 서울에 설치된 신호등 주기는 바로 일본의 어느 거리를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구입한 시스템은 거리마다 다른 교통량을 통계학 기법으로 분석해서 수시로 입력해야 하는 구식 시스템이었지만 그나마도 사용할 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은 수학이다. 수학을 모르는 사람이 소프트웨어를 구입한다는 것은 장님이 물건을 고르는 격이다.

김포공항은 크기에 비해 내부가 허술하고 촌스럽다. 전문 인테어리어에 의해 꾸며진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 적당히 꾸민 것이다. 과천 어린이대공원 정문건물만 해도 외부에서 보면 그럴 듯 하지만 내부에 들어가 보면 시외버스 터미날이다. 지하철역도 크기만 했지 짜임새가 없다. 환승 시스템은 영점이다. 시스템 개념 없는 공무원에게 설계를 맡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설계를 소홀히 생각해왔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설계에 가장 많은 노력과 돈을 투입한다. 인생에 있어서도 태교가 중요하듯이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계개념이다. 개념이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 건축비와 유지비 규모가 결정된다. 설계에 아무리 많은 돈을 들인다 해도 설계비의 절대액은 건축비와 유지비의 불과 1-2%에 불과하다.

미국의 최신형 M1 전차의 경우, 설계비는 전체 수명주기 비용의 불과 2%에 불과했다. 23%는 생산비 그리고75%가 운영유지비이다. 설계비는 불과 2%에 불과했지만 그 작은 비용은 생산비와 운영유지비의 90%를 결정한다. 따라서 일본이나 미국은 설계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설계에는 문화와 환경과 안전이 포함된다.

영정도 공항은 김포공항의 재판(replica)이다. 정부에 문화 설계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공항에서 짐을 벤딩해 주었다. 벤딩하는 동안 짐 검사가 이뤄진 것이다. 이 끈을 김포공항에서 버려야 했다. 쓰레기통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안내양에게 쓰레기통의 소재를 물으니 퉁명스럽게 쳐다보면서 턱으로 가리켰다. 턱 쪽을 향해 돌아보아도 쓰레기통이 없었다. 다시 물어보자 [저 기둥 옆에 있잖아요]하면서 쏘아 붙였다. 그곳에 가보니 5리터 짜리 플라스틱 통이 놓여 있었다. 아무리 건물이 훌륭하다 해도 이러한 문화를 가지고는 후진국이다.

택시를 타려고 줄을 섰다. 싱가포르에서는 택시가 줄줄이 들어와 일곱개의 승차대로 나뉘어 손님을 태웠다. 공항방송 때문에 차가 쉴 새 없이 들어와 기다리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지난 8월 김포공항에서는 택시를 타는 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들어오는 택시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들어온 택시 마저 일 열로 서서 기다려야 했다. 맨 앞차가 손님을 태우고 떠나야 두 번 째 차가 그 자리를 이어받기 때문이었다.

뒤에서 답답하게 기다리던 택시가 앞으로 나와 두 줄을 만들어 손님을 빨리 태우려 했다. 이렇게 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반으로 줄어들 수 있었다. 그러나 경직된 공항 관리원은 이를 한사코 제지했다.

공항관리원과 기사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40분간이나 싸워도 옆에 있는 경찰이 말리지 않았다. 매일 열 번씩은 저런다는 것이다. 이를 지켜본 영국신사가 한국정부를 욕했다. 한국정부가 국가의 얼굴을 저렇게 추하게 내버려 둘 수 있는 것이냐고. 영정도 공항도 이의 재판이다. 문화공보부장관에게는 이런 개념이 없는 것 같다.

2001.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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