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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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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비용]에 착안하라

우리의 생활을 뜯어보면 거기엔 반드시 두 가지 비용이 관련돼 있다. [보이는 비용]과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보이지 않는 비용]을 중시하지만, 지혜 없는 사람은 한푼의 [보이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수백 푼의 [보이지 않는 비용]을 유발시킨다.

정확을 기한다며 박스 속에 들어있는 실 바늘 수를 일일이 세는 사람이 있다. 보이지 않는 비용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것이다. 미국 공무원의 출장비는 영수증에 의해 결산된다. 조금만 걸으면 전철을 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출장에 나선 공무원은 호텔로 택시를 불러 타고 나간다. 전철을 타면 영수증이 없지만 택시를 타면 영수증이 있기 때문이다. 1달러면 될 것을 가지고 미국정부는 30-50달러나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과도한 통제가 보이지 않는 낭비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 행정부에는 공무원이 업무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다. 현장조사나 정보획득을 위해 인근지역에 조사를 나가려 해도 일일이 자기 비용으로 충당해야 한다. 미국 행정부에는 공용차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간단한 카드만 작성해 내면 누구나 쉽게 차를 이용할 수 있다.

정부출연 연구소에 있는 학자가 세미나에 참석하는 데에도 행정이 복잡하다. 기대되는 효과가 무엇이냐, 안가면 안 되느냐 하는 따위의 물음받침을 받다 보면 세미나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가셔 버린다. 현장을 관찰하지 않고 탁상에서 연구하기 때문에 연구결과는 설득력을 잃는다. 이러한 식의 통제는 동분서주로 뛰어야 할 공무원과 연구관들의 발을 묶는 행위다. 눈에 보이는 작은 돈에 집착한 나머지 눈에 보이지 않는 천문학적인 낭비를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에게 서비스 정신을 가지라고 신문마다 당부하고 있지만 당부만으로 공무원의 역할이 달라질 수는 없다. 시스템을 바꿔야만 공무원이 달라질 수 있다. [탁상인허가 시스템]을 [현장지도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공장을 짓겠다는 의사를 한 창구에만 표시해 주면 각 분야의 공무원들이 줄줄이 현장에 나와 규정을 보여주며 일일이 지도해준다. 우리 공무원도 이렇게 일해야 한다. 시스템은 바꾸지 않고 당부만 한다면 이는 마치 화살을 가지고 전투기를 쏘아 내리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탁상인허가 시스템이 유발하는 보이지 않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도 절약할 수 있는 이 일을 정부는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군은 워싱턴 DC에 군수무관단에 많은 고급장교를 보내고 있다. 5층짜리 큰 건물을 임대했고 이들에게 많은 수당을 주고있다. 그러나 자료수집비, 교통비, 출장비는 별로 없다. 본국으로부터 일일이 출장허가를 받으려면 몇 개월씩 씨름해야 하기 때문에 아예 출장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전화나 편지로만 일을 보고 있다. 이렇게 일하려면 구태여 미국에 사무실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 작은 돈을 아끼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도 아무런 가치를 뽑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작은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천문학적 비용을 낭비하는 사례는 매우 많다. 불편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출근시간 이전에 벌써 파김치가 돼 버린다. 엄청난 생산 에너지를 길에다 낭비한 것이다.

인허가 과정을 밟고 있는 창업자는 창업 이전에 이미 염증을 느낀다. 은행돈을 빌리는 사람은 은행원들로부터 받는 인간공해 때문에 지쳐버린다. 납품업자들은 돈 받으러 다니느라고 길에다 시간과 돈을 뿌린다. 이렇게 시간을 배앗기고 있는 기업들이 품질개선이나 디자인 개선에 마음을 쓸 수는 없다.

정부는 일부러 행정서류와 정차를 복잡하게 만들어 국민 시간과 주머니 돈을 을 낭비시키고 있다. 주민등록등본을 어느 곳에서나 뗄 수 있다고 자랑하지만 그러한 서류 자체를 없애겠다고 자랑한 적은 없다. 그 어느 선진국도 등초본이나 인감과 같은 서류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미국에서는 일도 아닌 자동차 등록, 운전면허 시험을 한국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로 만들고 있다. 요사이 면허시험을 보는 데에는 시간은 차치하고서라도 100만원이 든다고 한다.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해결해주면서 붙어먹고 사는 거머리 직종들이 많다.

신도시 지역 한산한 도로변에 몇 개의 주차선이 그어져 있다. 주차선이 없는 곳에 차량이 빈틈없이 주차했다. 시민들의 상식으로는 그렇게 해도 교통에 지장이 없는 곳이다. 구청직원이 어쩌다 한번씩 나와 벌금 스티커를 붙이고 간다. 모든 차량에게 골고루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나온 스티커 수만큼만 붙이고 간다. 용달차로 벌어먹는 시민이 정부에 대고 욕을 해댔다. 이 달에 벌써 일곱 번째라는 것이다. 당하면서도 그 곳에 차를 계속 주차하는 것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 했다.

국민들의 마음을 가장 많이 상하게 하는 사람들은 공무원과 경찰이다. 이들로부터 마음이 상하면 몇 일씩 지속된다. 이들로부터 기분상한 사람들이 출근을 하면 연쇄적인 인간 접촉을 통해 또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이렇게 기분 상한 사람들이 만든 제품과 서비스의 질이 좋을 리 없다. 국민 생산성을 높이고 싶으면 공무원과 경찰부터 깨끗한 매너를 훈련해야 한다.

2001.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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