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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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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문화를 가꾸고 키워주자(34)

1945년부터 15년 간 미국으로부터 받은 총원조액은 27억달러였으며 1959년 원조액은 2억 달러였다. 당시의 세출 예산은 미국으로부터 받은 잉여 농산물, 석유, 석탄을 시장에 매각한 돈으로 충당됐다. 미국으로부터의 잉여 농산물 유입은 우리 농촌을 피폐시켰고 이농 현상이 증폭되어 2백만의 실업자가 도시로 떠돌았다. 부패 관료와 전후 상류 계급에 의해 사치 풍조가 만연됐고 밀수품이 범람했다.

부패 관료들은 축첩을 했고 도덕적으로는 지금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타락해 있었다. 대기업은 모두 정부 관리하에 있었으며 기업인들은 정치 하수인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들은 회사돈을 빼내 위에도 상납했고 자기들도 챙겼다. 기업에는 매년 적자가 누적됐지만 그 돈은 관치은행에서 채워 주었다. 기업에도 정부에도 주인이 없었다.

34대 대기업이 연체시킨 은행돈은 3.700만 달러였다. 이는 기업의 총자산을 매각해도 갚을 수 없는 돈이었다. 당시 국가 총예산 2.5억 달러였고 연간 무역 역조가 5,000만 달러 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금액이었다. ‘엽전들이 별수 있나’라는 자조적인 말들이 어디서나 들렸다. 무기력감, 열등 의식, 비전의 상실; 이 세 개의 낱말이 당시의 사회상을 대변했다.

이것이 박 대통령이 ‘문민 대통령들’로부터 접수했던 폐가의 모양새였다. 박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무기력하고 열등의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국민들로 하여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 것이다.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니다. 박 대통령은 죽어 가는 인간 에너지를 소생시켜 놓았지만 그 이후의 대통령들은 그 소생된 에너지를 어지럽히기만 했다.

3공 이전에는 비율빈, 태국, 버마, 인도네시아가 한국에 비해 엄청난 선진국이었다. 북한도 남한보다 2배나 더 잘살았다. 여기까지를 결산해 보면 15년간의 이승만장면의 문민 정권이 군사 정권보다 훌륭했었다고 말할 수 없다. 만일 박 정권이 그 이전의 문민 정부처럼 무능  부패  타락했더라면 그 역시 부패관료  상류 계급들과 어울려 한강의 기적을 이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대통령의 단기 업적주의는 두고두고 군사 문화의 상징으로 비난받고 있다. 단기 업적주의는 한국에서만 있는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가장 전형적인 것은 과학적 생산관리의 아버지였던 테일러리즘을 들 수 있다. 테일러 방식은 생산성 앞에서는 창의력과 인성을 철저히 무시했다. 지금의 경제 전쟁에서 미국이 일본에 패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이 단기 업적주의를 빨리 청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기 업적주의가 지나칠 만큼 심각한 곳은 한국이다. 이는 고질적인 한국 기업 문화다. 한국에는 기업가 정신이 없다. 오직 단기 이윤 정신이 있을 뿐이다. 클레임과 A/S를 받아주면 단기 이윤이 줄어든다고 생각했다. 로비에 의해 사업권을 따내서 바가지 가격으로 돈을 벌었다. 단기 이윤을 올리지 못한 경영자는 과정을 따지지 않고 해고됐다. 이윤 앞에서 인간성과 인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도 선진국 국민이 200달러에 사 쓰는 텔레비전을 우리는 700달러에 사 쓰고 있다. 근로자도 고객도 모두 이윤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모든 국민이 그토록 당연하다고 생각한 이윤 극대화 정신이 사실은 한국병의 진짜 병균이었다. 단기 업적주의는 바로 한국 기업 문화가 확산시킨 것이다.

지금 와서 누가 옳고 그르다는 것을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단지 우리는 값비싼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분석해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는 폐가를 어떠한 모습으로 가꿀 것인가에 대한 비전과 청사진이 있었다.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국민 에너지를 단기에 동원할 수 있었다. 외국에 나가 있는 두뇌를 대거 유치해다가 국가를 경영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공무원 에너지마저 활용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목표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군사 정권의 주변에는 장교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신들이 포진해 있다. 이 두 진영에는 분명히 능력차가 존재한다. 현 정부를 문민정부라고 부르지만 이는 단지 가신 정권일 뿐이다. 문민이란 말은 문치를 의미한다. 기준 없는 언치를 하지 말고 제도에 의해 경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신 정치를 중지하고 아이디어 뱅크에 의해 경영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문민정부라 불릴 수 있다. 그래도 박 대통령에게는, 그에 대들면서 원칙을 주장하고 소신을 밝히는 장관과 보좌관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일사 백사라는 말이 있다. 현 정부는 성수대교 사고를 과거의 유산이라고 비난했다. 바로 이 한마디에서 백사를 읽을 수 있다. 일개 중대장도 전임자를 탓하지는 않는다. YS가 국제 무대에 나갈 때마다 유일하게 자랑하는 자산이 있다. 자본과 기술이다. 이는 과거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그는 그 많은 자본과 기술을 물려받고도 성수대교 하나 관리 하지 못했다. 아시아나 사고로부터 삼풍 백화점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는 수많은 사고를 경험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경험으로부터 배운다지만 그는 자기 경험으로부터도 배우지 못했다. 사고 후에도 과적 차량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수돗물 하나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군사 문화를 비난하려거든 군사 정권보다 더 훌륭한 비전과 능력부터 보여 주어야 한다. 여기까지에서 보면 문민을 자처하는 가신 문화가 군사문화보다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의료계나 목회에까지도 저급한 밥그릇 문화가 있다. 선배 운동선수가 후배에게 스타킹 세탁을 강요한다. 학훈단장이 그렇게 체벌을 금지시켜도 4학년 대학생들은 몰래 숨어서 3학년을 괴롭힌다. 심지어는 재래식 변소에다 물구나무도 세운다. 이는 대학생 문화이지 절대로 군사 문화가 아니다. 이런 것들은 군 장교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저질 문화다.

군 내무반은 고교 출신 이상이 모인 젊은이들의 집단이다. 장교들이 그렇게 구타를 하지 못하도록 감독해도 고참자는 신참병을 으슥한 곳으로 불러내 ‘민주 군대 좋아하네, 임마, 군대는 밥그릇이야’ 하면서 기를 꺾고 구타를 자행한다. 이 역시 청년문화이지 절대로 군사 문화는 아니다.

아무것이나 잘못된 것이면 입버릇처럼 군사 문화를 탓한다면 군과 민 사이는 점점 더 벌어지게 될 것이다. 이는 국방을 허무는 일이며 군인들의 행복을 침해하는 일이다. 말하는 사람은 책임감 없이 함부로 말하지만 그 때마다 마음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배려해야 할 것이다.

비난받아야 할 것은 탄압 문화다. 군인들 중에도 정치 군인들로부터 탄압을 받고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한 이들이 많다. 정치 탄압은 ‘한명회식 이조 문화’나 ‘일제 문화’라고는 부를 수 있어도 절대로 군대 문화가 아니다. 일부 군인들이 벌였다 해서 그것을 어찌 다 군사 문화라 부를 수 있는가? 소수의 군인들이 전치 탄압의 앞잡이가 되었다면 그들을 나무랄 것이지 왜 국민이 마음놓고 잠잘 수 있도록 전방을 지켜주는 고마운 군인들을 욕하고 서운하게 만드는가?

남을 탓하는 마음에는 창의력이 깃들 수 없다. 남을 탓하는 마음에 위대한 정신이 싹틀 수 없다. 우리는 앞으로 언제까지 남을 욕하며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100여년 전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욕해 왔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인들은 어떤 행동들을 하고 있는가. 불쌍한 외국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못된 일들을 자행했던가. 영주권없이 미국에서 숨어사는 동포를 무임금으로 착취하다가 귀찮으면 미국이민국에 고발하는 민족이 바로 한국민족이 아닌가.

만일 우리가 제국주의 시대에 다른 나라를 침략했다면 우리 국민들은 아마도 일본인들보다 더 나쁜 만행을 저질렀을는지 모른다. 일본이 우리를 침략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있을 때, 선조들은 무엇을 했던가. 못나서 당한 일을 가지고 우리는 앞으로 언제까지 부끄러운 과거를 스스로 들춰 내면서 누워서 침뱉는 식의 못난 짓을 계속할 것인가.

모든 이벤트는 시대적 산물이다. 우리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처럼 못난 과거를 거쳐 오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일본에게 점령당할 만하니까 점령을 당했던 것이다. 미국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을 만큼 못났으니까 지금도 그들의 수모를 받고 있는 것이다. 못났기 때문에 북한의 불바다 수모를 받고도 꼬리를 내린 채, 그 엄청난 4조 원어치의 경수로 비용과 2.000억 원어치의 쌀을 주면서 북한의 환심을 구걸한 것이다. 못난 짓은 도맡아 하고 있으면서 가장 잘난 체하는 것이 지금의 YS정부인 것이다.

못났기 때문에 쿠데타로 한동안의 역사를 이어 온 것이다. 훌륭한 정치인들이 나와서 국정을 제대로 경영해 왔다면 어떻게 목숨 걸고 쿠데타를 결행하는 장교들이 출현할 수 있었겠는가. 남을 욕하고 과거를 욕할 수 있는 권한은 오직 미래를 건설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남을 비난해야 지식인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아무것이나 군사문화의 잔재라고 뒤집어씌운다. 원인을 잘못 규명하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이 군사문화의 탓이라면 치료는 매우 쉽다. 군사 문화를 바꾸는 일은 매우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병의 병균은 군사 문화가 아니다. 오히려 군사 문화의 병균이 바로 한국 문화인 것이다. 그래서 치료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에는 모두 독특한 문화가 있다. 70만 군대에도 군사 문화가 있다. 이는 존중의 대상이지 동네 북의 대상은 아니다. ‘안 되면 되게 하라’,‘글쎄요는 없다. 예스냐 노냐를 분명히 하라’; 이것이 군사 문화다.

지금 군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못난 사회 문화가 군에 유입되어 깨끗하고 분명한 군사 문화를 오염시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전한 청년들은 모두가 군사 문화를 거친다. 군은 젊은이들을 가꾸는 가장 중요한 교육기관이다. 따라서 국민은 군을 부정적인 시각과 몰아치려는 자세를 버리고 군으로 하여금 신선한 문화와 규율을 간직하면서 이 나라 청년들을 재창조할 수 있도록 군을 도와 주고 격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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