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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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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관리 현대화를 추진하자(20)

1994년도에 경제기획원과 군이 다퉜다. 기획원이 두 가지의 경영 혁신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군수 시스템의 개혁이며, 다른 하나는 사단 단위별 예산 편성이었다. 기획원측은 예산의 효율성을 주문했고, 군은 ‘해보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없다’고 버텼다.

군수부대는 매년 30만 가지 품목을 조달해서 각 소비 부대에 배급해 준다. 이러한 ‘배급제’는 소비 부대의 사고방식을 피동적으로 만들었다. 피동적으로 받아 쓰다 보니 소비부대에서는 품목간 불균형 문제가 발생했다. 어느 품목은 1년내내 써도 남아돌아 이사람 저 사람 발길에 채이다 없어지는 반면, 어떤 것들은 단 몇 개월만에 동이 나버렸다. 남는 것을 반납하면 귀찮게 군다고 눈총만 받았다.

검열이 있을 때 장비가 고장나면 지휘관은 불이익을 받게 된다. 다급한 지휘관들은 자기 돈을 써가면서 하사관들을 남대문 시장에 보내 부속품을 사날랐다. 이러한 불균형 현상은 해가 가도 시정되지 않았다. 몇몇 군수 부대 장교들이 실정을 파악한다는 명분으로 소비 부대들을 돌아다니지만 이는 그 자체가 낭비요 관폐였다.

실정이 파악될 리도 없지만 설사 개선 방안을 찾아냈다 해도 수십 년 간의 이권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해마다 5만개를 납품해 온 업체에게 2만 개만 납품하라고는 안면 상 말할 수 없었다. 따라서 20년 전에 부족했던 품목은 지금도 부족하고 20년 전에 남아돌던 품목은 지금도 남아돈다.

기획원의 주문은 바로 이 ‘배급제’를 ‘쇼핑제’로 바꾸라는 것이었다. 군수 부대는 마치 백화점처럼, 조달한 품목을 창고에 진열만 해놓고 배급은 해 주지 말라는 것이다. 소비 부대가 와서 ‘쇼핑’해 갈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무능한 사람이라 해도 창고만 돌아보면 무슨 품목이 남아돌고 무슨 품목이 부족한지를 금방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은 물자는 그 다음해에 적게 구매하고 부족한 물자는 즉시 조달해 주자는 것이다.

같은 군 생활을 하면서도 보병 장교들은 늘 군수 장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보병을 상대하는 군수 장교들은 자기 재산을 선심 쓰는 것처럼 생색을 냈고, 업자를 상대하는 군수 장교들은 콧대 높은 상전으로 군림했다. 경제기획원의 말대로 한다면 군수 장교들은 이러한 두 가지 입지를 빼앗기게 되는 셈이었다.

도요타의 ‘다이이치 오노’씨 역시 기획원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전 공정에서 열심히 만든 재공품을 무조건 후 공정으로 ‘배급’해 오던 종래의 방법을 역전시켜, 후 공정으로 하여금 전 공정을 '쇼핑‘하러 가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전 공정은 후 공정이 가져간 것만큼만 생산하도록 했다. 이 간단한 착상에 의해 도요타는 그 유명한 ’적시 생산‘(JIT)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이다. 기획원이 군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렇게 유명한 결과를 적용시키려는 것이다.

두 번째 개혁안은 ‘사단별 예산 편성’이다. 사단은 연간 500억원의 예산을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예산은 사단장이 계획한 예산이 아니라 배급되는 예산이다. 98퍼센트는 물자로 배급되고 2퍼센트는 현금으로 배급된다. 사단 차량에 대한 수리 부품비는 국방부의 수리 부품 예산관이 전년도 예산에 물가를 적용해 배분해 준 것이다.

유류비는 국방부 유류 담당 예산관이 같은 방법으로 배당해 준 것이다. 따라서 사단장은 배급받은 휘발유를 가지고는 50만 킬로미터의 거리를 운행할 수 있지만, 배급받은 수리 부품비를 가지고는 20만 킬로미터밖에 운행할 수 없게 된다. 유류비와 구리 부품비 간에 불균형 문제는 이렇게 해서 발생한 것이다. 이는 ‘가라 행정’의 가장 큰 원인이 돼왔다.

건물 보수비도 사단마저 공평하게 나눠 주기 때문에 어느 사단은 급하지 않은데도 보수비가 나온다. 그러한 예산은 ‘가라 정리’의 대상이 된다. 몇 년 간 보수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건물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군의 예산 통제 방법은 매우 원시적이다. 예를 들면 100만원 봉급자에게 한 가지 돈으로 100만원을 주지 않고, 80가지의 색깔을 칠해 배급했다. 5만 원에는 노란색을 칠해 주면서 식량만을 살 수 있게 한정했고, 2만 원은 파란색을 칠해서 문화비로만 사용케 했다. 각 색깔별로 사용처를 한정해 주는 방법이었다. 쓰다보니 파란 돈이 남고 빨간 돈이 모자라 이를 바꿔쓰려고 하면 저항을 받았다. 색깔이 틀리다는 것이다. 이는 엄청난 낭비를 유발했다.

기획원은 바로 이러한 낭비를 제거하기 위해 사단장에게 예산 편성권을 부여해 주겠다는 것이다. 사단의 실정에 맞도록 예산을 현실적으로 편성하고 융통성있게 운영하되 관리 회계만은 철저히 하라는 것이다. 군은 이러한 요구에 오히려 감사해야 마땅하다. 이 제도는 예산 절약에도 엄청난 도움이 되지만 장교들 개인에게도 경영 기법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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