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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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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에 대한 역사심판 자제하라( 1994년에 쓴 글)

5.18사태를 보는 시각은 양분돼 있다. 하나는 광주시위대를 민주투사로 보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광주시위대를 폭도로 보는 시각이다. 이에 따라 군의 위상도 천지차이로 다르다. 반란군이냐 진압군이냐. 모두가 어느 편이 옳고 그른지를 명백하게 가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섯 가지 제약점이 있다.

첫째, 누구의 시각으로 역사를 심판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 정부에는 아직까지 역사를 심판할 수 있는 능력이 축적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5.18 사건은 16년이나 지난 과거사건이고 조사와 분석의 범위가 매우 방대한데 비해, 차세대전투기사업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매우 간단한 사업이다. 우리의 국가기관은 그 간단한 차세대전투기사업에 대해서 마저 심판하지 못했다.

그 많은 감사원 감사관들과 검찰들이 노태우가 F-16기 제작사로부터 로비자금을 받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1년이나 되는 엄청난 시간을 들여 조사했지만 그 결과는 청와대 김종휘 안보수석까지도 제작사로부터 단 한푼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했을 뿐이다. 그런데 하물며 16년전의 역사를 누가 새삼스럽게 조사할 수 있으며, 설사 조사를 했다 해도 그걸 공정한 조사라고 누가 인정해 줄 것인가?

셋째, 심판에 소요되는 노력과 비용은 엄청난 반면 그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비전이 없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배움의 대상이지 심판의 대상은 아니다. 잘못된 일이 발생했을 때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지려는 국민은 교훈을 얻지 못한다. 무엇 때문에 그 잘못이 발생했는지를 분석해서 교훈을 이끌어내는 국민만이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다.

사람도 훌륭하게 성장하기까지는 못난 과거를 거쳐야 하지 않는가. 국가도 마찬가지다. 못난 과거가 없었다면 어떻게 잘난 오늘이 있을 수 있는가. 오늘의 잣대로 과거를 심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넷째, 어떤 소요사태를 보는 시각이 입장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이다. 남한이 북한에게 점령당하면 일반국민들은 살 수 있지만 군인가족들은 죽는다. 따라서 광주사태를 바라본 그 때의 군인시각]은 [지금의 일반국민시각]보다 훨씬 더 예민했다. 당시에는 초급장교들까지도 광주사태를 위기로 생각했다.

다섯째, 역사는 여론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요사이 사회일각에서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왜 광주에서의 병력사용을 승인했느냐에 대한 원망의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법정에는 불과 몇 사람의 군인만 서있지만 여론재판 법정에는 한국군과 주한미군 전체가 서있는 것이다. 이는 매우 위험한 재판이다.

한국군을 심판하는 데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가. 앞으로 유사한 소요사태가 발생했을 때 군이 진압에 나설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주한미군을 심판하는 데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가. 독립국의 체신을 스스로 허물고 한미관계를 악화시키는 문제가 있다.

광주사태는 주한미군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내정의 문제다. 6.25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UN군사령관의 작전통재권을 명학히 한정했다. UNC의 작전통제는 [외침으로부터 한국방위를 책임지는 경우에만] 한하며, 국내 의용군과 준 군사기구는 육군참모총장의 휘하에 둔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다시 1954년11월27일 [한미방어조약합의의정서]에 명백히 반영됐다. 이에 따라 미국은 정책지침에 [UNC의 작전통제는 외침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위하는 데 한하며, 내부작전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명시했으며, 한국은 1967년 12월 15일자 대통령 훈령 28호에 [외국군의 개입없이 독자적인 대간첩작전을 수행한다]는 정책을 명시했다. 이에 따라 5.18 당시의 특전사, 수경사, 20사단은 연합사령관의 작전통제에서 제외돼 있었다.

국내소요는 자칫 남침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군은 연합사령관에게 광주진압에 대한 상황과 조치계획을 알려줘야 했다. 이는 허락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협조의 일환일 뿐이었다. 연합군사령관 작전통제하에 있지 않은 부대들을 사용하여 광주사태와 같은 내부소요를 진압하려는 한국군의 지휘권행사는 연합군사령관이 간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을 원망하려는 사람들은 미국이 왜 내정에까지도 좀 간섭해주지 않았느냐고 원망하고 있다. 이는 스스로 주권국이기를 거부하는 행위로 비쳐질 수 있다.

최근 [저널 오브 커머스]라는 미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는 잡지에 난 기사와 위컴사령관과의 인터뷰 내용이 [연합사령관의 사전승인] 사실을 뒷 바침하고 있다는 기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승인]이라고 말했다면 이는 그가 [의정서]의 내용을 모르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만일 그가 광주진군을 [승인]사항으로 잘 못알고 있었다면 객관적 지위에 있었던 연합사령관의 눈에도 광주사태는 군으로 진압돼야할 사태인 것으로 비쳐진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가 [승인]이라고 말한 것은 한국군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뜻일 수밖에 없다. 한미의정서는 그에게 그 이상의 권한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5.18에서 심판 받아야할 대사은 민란군이지, "민란을 정벌하기 위해 출동한 한국군"이 아니다.

2001.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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