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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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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 문화

ROTC 4학년생들이 3학년생에게 가혹행위를 가한다. 비를 맞게 해서 감기에 들게도 하고 겨울에 옷을 벗겨 몇 시간씩 떨게도 한다. 일반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비인격적인 기합을 주고, 갈비집에 데려가 식사를 하고 후배에게 계산토록 한다.

가혹행위가 학훈단에 나가있는 현역 장교들에게 발견되면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지만 위험을 감수한다. 이는 대학생들의 문화지 군사문화가 아니다. 군 내무반은 고등학교 출신 이상의 한국 청년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곳이다. 이들 역시 장교들의 눈을 피해 가혹행위를 자행한다.

신참병들을 후미진 곳으로 데려간다. "민주군대 좋아하네, 임마 군대는 밥그릇이야". 대부분의 내무반에서는 신참병에 성추행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모양이다. 수치감을 일으키게 해서 신참병을 지배하려 하고, 이로 인해 자살하는 병사들이 많은 모양이다.

많은 이들은 깊이 따져보지도 않고 이런 문화를 군사문화라고 밀어붙인다. 그러나 군사문화는 사회문화의 부분집합이다. 사회문화가 군사문화를 지배하는 것이다.
이러한 밥그릇 문화는 선수 세계, 교수 세계, 법관 세계, 의사 세계, 심지어는 목사 세계에서도 존재한다.

이들에 비하면 장교 세계는 오히려 신사적이고 신선한 편이다. 후배장교에게 비인격적이거나 야비한 행동을 하는 고급장교는 그 다음 진급에서 십중팔구 누락된다. 처방이 틀리면 진단도 틀리다. 한국 사회 전체에 만연돼 있는 한국병을 군사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국지적인 토속병이라고 진단하는 한, 치료는 없다.

문화는 의식의 집합체다. 한국인 전체에 밥그릇 의식이 들어 있는 것이다. 밥그릇 의식은 어디에서 자랄까? 창조력 상실에서 자란다. 창의력은 없고, 지분은 유지해야겠고, 행세도 하고싶다. 밥그릇 말고는 다른 수단이 없지 않은가?

게으른 고참 교수가 미국에서 이름을 날리다 돌아온 후배 교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복종을 요구한다. 고참 예술인도 재능 있는 젊은 예술인에게 밥그릇 질서를 강요하고 있다. 사회가 퇴화되고 있는 것이다.

창의력 있는 교수, 창의력 있는 예술인은 그들의 치사하게 기득권이나 밥그릇을 이용하지 않는다. 능력에 의해 권위를 쌓아간다. 권위, 그것은 버려야만 얻어질 수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창의력을 상실한 것은 물론 입시라는 틀로 길러낸 인스턴트식 두뇌 탓이다. 이에 못지 않게 잘못된 것은 책읽기 싫어하고 생각하기 싫어하는 한국인들의 졸부적 생활습관이다.

불과 몇 일 전에 일본을 10일간 다녀왔다. 전철은 조용한 도서관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주부도 독서요, 직장인 학생도 독서였다. 비좁은 커피숍 탁자에 앉은 사람 대부분이 독서하고 사전을 찾았다. 내가 본 대부분의 일본인은 평화로워 보였고, 환경, 거리, 행동이 미국에 못지 않은 선진국이었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대하기 전에 그들보다 더 열심히 배우고, 생각하고, 창의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치사한 밥그릇 문화는 아무도 고치지 못한다. 지역감정 역시 누구도 고치지 못한다. 창의력을 기르고, 창의력으로 발빠르게 경쟁할 때가 돼야 바닷가 모래위에 쓰여진 글씨처럼 스스로 지워질 것이다.

2000.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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