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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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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정부와 한국정부의 차이

미국정부는 GNP의 18%만을 세금으로 걷어간다. 그 돈으로 그 넓은 국토에 훌륭한 인프라를 건설했고,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을 가꿔놓았다. 젊어서 세금을 많이 낸 국민에게는 많은 혜택을, 적게 낸 국민에게는 적은 혜택을 주고 있다. 정부에 경영능력이 있고, 공신력이 있는 것이다. 공무원의 능력이 있고, 그들을 돕는 두뇌집단이 있고, 끊임없이 개발해온 시스템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엔 이런 것들이 없다. 이를 만들어 놓는 일; 바로 그것이 정부 제 1의 과제다. 소수정예 공무원, 전문 두뇌집단, 국가경영 시스템; 이 세 가지가 국가 경영 엔진이다. 선진국엔 이 세 가지가 훌륭하게 가꿔져 있다. 그래서 한국 대통령은 선진국 대통령보다 할 일이 더 많은 것이다.

한국 정부는 준조세를 합쳐 GNP의 75%를 세금으로 걷어가고 100조를 넘는 각종 기금을 운용하면서도 국민에게 아무 것도 보답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 세금에 대한 보답이 무엇인가. 빈약한 인프라, 더러운 환경, 무질서한 사회, 비전없는 교육, 불안한 안보, 짜증나는 인허가들이 아닌가. 한국 사회에서 생산성이 가장 낮은 정부가 국부의 절반을 탕진하고 수많은 규제를 통해 국민 시간을 빼앗아 간다면 국민 생산성이 어찌 되겠는가.

경영은 과학이다. 과학은 상식으로 접근할 수 없다. 선진국들은 과학으로 국가를 경영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 만은 상식인들이나 출세지향적인 사이비 학자들이 점령하여 상식과 직관을 가지고 권한을 행세해 왔다. 비록 타이틀은 학자들이지만 객관적 입장에 있는 과학집단에 의한 분석 과정 없이 고속전철 사업 등과 같이 중요한 국책 사업들을 왜곡되게 결정해 왔다. 이들은 시스템에 의해 국가를 경영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손가락으로 불과 몇 사람의 행정서기들을 움직였을 뿐이다.

도요타 자동차사의 한 사람 한 사람은 우리 한국인 기술자와 크게 차이 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도요타 시스템은 우리 한국인들이 흉내조차 낼 수 없을 만큼 훌륭한 힘을 발휘한다. 결국 세계 최고의 생산성은 사람이 직접 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내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지혜롭던 솔로몬이라 해도 시스템 없이는 도요타의 생산성을 재현낼 수 없다.

문제 있는 곳엔 반드시 해결책이 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력도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그 널려진 창의력을 조직화할 수 있는 리더십이 없는 것이다. 문제를 의식과 정신력 탓으로 돌리면 해결책이 없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거의 다 시스템 탓이다.

분석의 시스템화, 계획의 시스템화, 집행의 시스템화가 이뤄질 수 있는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영종도 공황건설, 항만 건설, 고속전철, 지하철, 항공산업 등과 같은 국제적 규모의 국책 사업을 훌륭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분석과 세부 계획이 국제적 수준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최고급 수리공학 기법들이 동원돼야 한다.

이러한 수준의 고급 분석가들은 국내외를 통털어 100명을 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국책 사업에 대한 분석과 시스템 설계는 선진국에서라면 적어도 천만 달러의 용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산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과정을 공무원에게 맏겼다. 한국 공무원보다 한참 우수한 미국 공무원도 이러한 일은 전문 용역 연구소에 맏긴다.

계획과 설계는 그렇다 하더라도 집행 실태는 어떤가. 동네 땅을 다섯 번씩 파고 묻는 일을 매년 반복하고 있다. 식수 문제 하나를 가지고 5개 부처 장관이 서로 칼자루를 나눠쥐고 있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의 거듭된 다짐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회창 전총리가 낙동강 오염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
다. 그러나 그의 약속은 허언으로 끝났다. 시스템을 개선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지시와 대책회의를 가지고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수만개 과장급들이 제각기 만들어 내는 복잡한 규정들을 가지고는 그 어느 문제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 실타래 처럼 서로 엉켜있는 규제를 정리정돈 하려면 규제의 통합(regulation integration)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바로 이러한 취지에서 고건 총리가 1만 1천개의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장담했지만 그의 약속 역시 허언에 불과했다. 이는 정말로 훈련된 시스템 분석가들의 집중적인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시스템 황무지로 방치돼왔던 사회 곳곳에 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수만명의 시스템 설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그동안 불편을 느껴온 국민들의 제보도 필요하다. 모든 국민을 동원하고 모든 분석가들을 동원하여 시스템 사회를 건설하려면 새마을 운동의 구심점이 시스템 개발 운동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국가경영 엔진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첫째, 지금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소수정예의 공무원 집단 들째, 프로급의 시스템 분석이 전제된 정책결정 주의 셋째, 공무원의 행정수완과 사설 두뇌 집단과의 콤비 시스템 넷째, 시스템 있는 행정력을 갖춘 작은 정부다.

2000.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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