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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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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 기강 확립 시스템

한국 시장이 선진국 시장만큼 생산적이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신용 시스템의 낙후성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받을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누가 열심히 일할 것인가? 한국에서의 신용은 개인의 덕목이나 도덕성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의 신용은 시스템에 의해 강요받는다. 선진국에서 개인이나 기업이 신용을 지키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금방 법 집행 시스템에 의해 파산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 가장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신용 시스템이다. 돈을 꾸고서도 갚지 않아도 버젓하게 살아갈 수 있고, 납품을 받고서도 어음 쪽지를 남발한 후 부도를 내도 솜방망이 식 처벌만 받고 있는 것이 한국사회다. 한국사회에서도 갚아야 할 돈을 제때에 갚지 않을 수 없도록 경제 사범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재판과정이 빠르고 공정하게 진행된다면 한국경제는 지금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번영할 것이다. 만일에 한국 사회에 선진국의 신용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다 적용한다 해도 한국사회의 신용은 금방 선진국으로 발 돋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1998년, 수도권에 있는 한 기업인이 60억 원을 들여 제조설비를 갖췄다. 그러나 그는 그 설비를 별로 써보지도 못하고 포크레인으로 찍어내 고철로 팔았다. 공장을 가동하면 전기료, 인건비, 재료비 들이 모두 현금으로 나간다. 그러나 제품을 만들어 납품을 하면 어음 쪽지만 받는다. 그래서 그 공장 부지는 주차장으로 변했고, 그 주차장 수입은 적기는 하지만 온전한 현금 수입이 됐다.

그 지역 일대에 이러한 회사 수가 반을 넘는다. 많은 실직자들 중에는 "그래도 한 번 뛰어보자"고 결심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 결심들은 금방 시들어버리고 만다. "뛴다"는 것은 돈을 쓴다는 것이다. 납품하기까지에는 많은 돈이 들지만 막상 납품을 하고 나면 어음 쪽지만 받는다. 결론은 한가지 "가만히 있는 게 돈버는 길"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누가 경제활동을 하겠는가?

일간지들의 보도에 의하면 1998년도 한해에 50%의 자영업자들이 사업을 포기했다 한다. 환전이 불가능한 어음쪽지, 끈질기게 질질 끌다가 떼어먹는 외상 매출 때문에 도산하고 있는 업체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미국에서처럼 남의 돈을 떼어먹을 수 없도록 엄격한 신용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면 그 즉시부터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다. 반면 지금처럼 대금결제에 대한 기율을 확립하지 않으면 점점 더 많은 국민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 첫 번째 원흉은 어음제도이고 두 번째 원흉은 돈을 갚지 않은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어진 허술한 법 체계다.

미국의 청구서 제도와 한국의 어음제도는 외상 매출이라는 목적에서는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청구서 제도에도 30일, 60일, 90일 단위로 납품대금을 후불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미국에서도 신용만 좋으면 얼마든지 외상거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청구서 제도는 세 가지 면에서 어음제도와 다르다. 첫째, 30일이 넘어서 결제할 때에는 이자보다 더 높은 가산금을 내도록 돼 있다. 그래서 채무자는 30일을 넘기려 하지 않는다. 둘째, 90일이 지나도 갚지 않으면 수금대행기관에 보고하도록 돼있다. 그러면 그 채무업체는 신용불량 업체로 기록돼 외상거래나 은행거래가 차단된다. 그렇게 되면 그 업체는 현금으로만 거래해야 한다. 이러한 업체는 사실상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다. 셋째, 어음은 그 자체로 현금처럼 유통되지만 청구서는 유통되지 않는다.

더러는 말한다. 어음제도를 없애려면 현금거래를 해야 되는데 그런 현금이 어디 있느냐고. 그러나 이는 왜곡된 주장이다. 청구서 제도에도 90일까지 외상거래가 허용되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말한다. 어음은 얼마든지 유통될 수 있어 현금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청구서는 유통이 안 된다고. 모든 사람들이 90일 이내에 돈을 갚도록 강제 화하면 누구에게나 돈이 골고루 돌아간다.

90일 이내에 돈을 갚지 못하는 업체는 경쟁력 없는 업체이자 남에게 페만 끼치는 업체다. 남의 돈을 떼어먹으면서 사업을 하겠다는 업체는 철저히 도태돼야 한다. 그런 업체는 공무원의 손으로 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알아서 도태시키는 것이다.

어음제도가 있는 한 흑자 도산을 피할 수 없다. 기업인들이 경영에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돈 얻으러 다니는 데 신경을 쓰면 국가경쟁력이 자랄 수 없다. 돈을 받으려고 길바닥에 뿌리는 시간과 돈이 년간 20조를 넘을 것이다.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그림의 떡에 불과한 "육성자금"에 의해 풀려질 문제가 아니다. "온라인 자금결제를 의무화"하고, "결제 규율"을 확립해 주면 저절로 해결된다.

미국에서는 남의 돈을 떼어먹고서는 그 어느 곳에 가서도 살 수 없다. 일단 블랙 리스트에 오르면 그는 폐인이나 다름없이 살아가야 한다. 취직조차 안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떤가? 남의 돈을 갚지 않고도 부자가 되고 떳떳이 지낼 수 있다. 그런데 어찌 모든 사람들이 줄 돈을 제 날짜에 척척 갚으려 하겠는가?

작은 돈을 갚지 않는 기업이나 개인은 신고되자마자 판사의 법 집행 명령이 발동된다. 변호사가 필요 없이 판사가 마을회관에 나와 판결을 내주고 갚을 날짜를 지정해준다. 미국인들이 저절로 신용을 잘 지킨다면 미국에 왜 이런 시스템이 거미줄처럼 짜여져 있겠는가?

게으른 사람은 응당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열심히 뛰는 사람이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건설분야의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 재료비와 인건비를 현금으로 지급해가면서 훌륭한 제품을 설치해줬지만 거의가 다 외상이다. 일부만 주고 나머지는 끈질기게 주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일은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빚만 늘어간다. 그러는 동안 사회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된다. 빚을 갚지 않는 사람에 대해 신고만으로 판사가 명령을 내리고 법집행을 강제해주는 단순한 재판 시스템이 미국에는 있는데 왜 한국엔 없는가?

이렇게만 해주면 모든 기업이 살맛을 느낄 것이다. "흑자 도산"도 없을 것이다. 기업인이 운전자금을 위해 은행을 찾지 않을 것이다. 옛날 동해 백주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기업이 흑자 도산했다. 외상판매 때문이었다.

자금결제 기율이 확립되면 품질도 덩달아 향상된다. 중소기업이 자금난에 허덕이면 그 손해는 대기업으로 이전된다. 자금난으로 허덕이며 만든 부품의 품질이 훌륭해질 수 없으며, 그 부품으로 만든 대기업의 완제품 역시 훌륭해 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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