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View Articles

Name


	지만원

Subject

진화하는 조직과 퇴화하는 조직

과학 경영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가장 먼저 착안해야 할 것은 조직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조직인지 또는 퇴화시키는 조직인지에 대한 것이다. 성장시킨다는 것은 승급을 시키는 일이 아니다. 1년 전의 능력과 1년 후의 능력이 얼마나 향상됐는지에 대한 것이다.

머리가 영리한 장교가 전방에서 다년간 근무했다. 산골에서 모시는 상관들을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근무했다. 1년 동안에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들이 번갈아 가며 바뀌었다. 상관들은 1년씩만 근무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상관들은 짧은 기간 내에 업적을 빛내고 싶어했다.

젊은 장교는 끊임없이 바뀌는 상관들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해내야 했다. 책 한 권 읽을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다년간 근무하고 나니 창의력이 퇴화됐고, 시각이 좁아졌다. 머리로 일하는 것은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발로 뛰어다녀야 일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어린 장교의 창의력이 퇴화되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군생활에서는 계급이 올라갈수록 창의력이 퇴화된다. 창의력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권위주의와 경직성 그리고 밥그릇 문화다. 군대가 권위주의와 경직성의 상징으로 낙인찍힌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경직된 문화권에서는 창의력이 발휘될 수도, 향상될 수도 없다. 조직의 성과도 없다. 품질은 사람의 작품이다. 조직원의 창의력이 퇴화되면 품질도 퇴화된다. 사람은 키워 쓰고 고쳐 써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경영자들은 잘해야 입사할 때의 능력만 이용한다. 사람을 소모품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군대 내에서의 일만이 아니다. 사회의 여론을 가장 창조적으로 형성시켜 가야 할 언론사들도 기자들의 능력을 퇴화시킨다. 기자들이 책을 잡고 있으면 싫어하는 간부들이 있다. 신문사 간부들은 너무 오랫동안 센세이셔널리즘에 무비판적으로 젖어왔다.

칼날 같던 센스를 가지고 입사한 기자들 역시 신문사 간부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느라 매일 매일 충격적인 기사를 찾아 발로 뛰다 보면 창의력을 잃어간다. 잦은 순환근무로 인해 전문성을 쌓을 수도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조직원의 창의력과 전문성을 성장시키는 조직을 찾아볼 수 없다.

공무원의 창의력과 전문성도 연륜을 쌓을수록 퇴화돼 왔다. 한 분야에 오래도록 근무한다고 해서 전문성이 쌓이는 게 아니다. 낱개 사실을 많이 안다는 것은 전문지식이 아니라 원주민 식 지식일 뿐이다. 낱개 사실은 개선을 위해 체계화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 즉 시스템으로 전환될 때에만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2000. 12. 25


Prev	경리 시스템 개선	지만원


Next	낙후된 경영은 낙후된 경영진 탓	지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