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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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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은 이런 것이어야 했다

어느 한 중견 제조 기업이 수출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공장을 둘러보면 너나 없이 신들린 듯 일한다. 회장은 경기고, 서울공대를 나온 수재다. 그의 리더십에 의해 모두다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그는 최근 리더십 만으론 해결하지 못하는 게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열심히 일하는 것 만으론 안 된다는 안 될 것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수백 명이 열심히 삽질을 해봐야 포크레인 혼자 하는 일을 당해낼 수 없다는 생각도 했다.

한국이 선진국에 패하고 있는 원인은 단 한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저들은 시스템 파워를 내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삽질만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란 경영자의 도구다. 그것이 삽이면 삽의 힘, 포크레인이면 포크레인의 힘을 발휘한다. 정부, 기업, 농어촌 모두가 삽의 힘만 내고 있다.

문을 닫아 놓았을 때에는 우리끼리 경쟁을 했지만 WTO 이후엔 선진국과 경쟁하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부장 급 이상의 간부들에게 들어보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별 문제가 없는데 왜 경영진단을 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트 진행 절차를 하나하나 추적해 들어가 보니 문제가 많았다. 설계가 완성되고, 재료 소요량을 결정하는데 4개월이 걸리는 반면, 제작시간은 3개월뿐이다.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는 공학도가 두꺼운 "작업 주문서"(work order)를 하나씩 읽어가면서 도면을 그리고 있다.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서둘러 일을 시작합니다. 갑갑한 상태에서 하나 하나 요구사항에 따라 그려 나갑니다. 그려놓고 나니 코끼리가 되더군요. 시간에 쫒기기 때문에 검토할 시간도 없이 도면이 공장으로 넘어갑니다".

중간에 결제하는 간부들이 있지만 복잡한 도면에서 발생하는 착오를 걸러주지는 못한다. 한 사람이 실수하면 그대로 실수로 이어진다. 선이 누락되고, 치수에 오차가 발생한다. "누구 책임이냐, 똑바로 좀 해" 하는 식의 공방이 다반사로 발생한다.

공장은 돌아가야 하는데 자재가 오지 않는다. 공장이 쉬는 시간에도 임금은 지불된다. 뒤늦게 자재가 도착하면 밤샘이 시작된다. 능률도, 건강에도 문제가 생긴다. 오버타임 비용도 나간다. 에러가 발생한다. 필요한 검사도 서두르게 된다. 이는 클레임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회장에게로 전달되지 않는다. "늘 있는 일, 우리끼리 해결하면 되는 일을 가지고 회장님에게 걱정을 시켜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인해 공장에서는 엄청난 비용이 나가고, 그 비용은 오너에게로 전가된다. 회계 장부에 잡히지 않는 이 보이지 않는 비용이 기업의 흥망을 좌우하는 것이다.

한국 대부분의 공.사 조직의 기능조직이다. 100% 이런 식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과장, 부장, 이사들이 여러 개의 기능조직을 통할하고 협조시키고, 결제를 한다고 하지만 이는 1940년대에 간단한 제품을 기계로 찍어내는 단순 사회에서 고안된 조직 개념이다.

4개월에 해오던 일을 2개월 이내로 줄이고, 한 두 사람의 착오와 누락이 여러 사람에 의해 자동적으로 걸러지게 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도면설계, 강도 계산 등 단순한 일을 몇 살까지 계속할 것인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면 생이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시간이 갈수록 배우고 진화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시스템이 정착되면 인력도 반으로 준다. 나머지 인력은 다른 사업에 전환된다.

겉으로 보기엔 이 회사는 한국 정상의 클라스에 속한다. 85%가 수출되고 엄청난 흑자를 내고 있다. 공장에 가보면 생동감이 넘친다. 회장이 공장에 나타나면 등을 쓰다듬는다. 근로자들이 양처럼 순하다. 노조가 있지만 문제를 일으킬 생각은 없다. 회장도 간부들도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고 믿고 있다.

이런 기업도 파고들면 문제가 많고 개선점이 많은데 하물며 문제가 겉으로 노출된 기업들이야 어떻겠는가?

기업과 은행의 구조조정!

문제가 많은 경영체에 부실채권을 청소해주는 게 아니라 바로 이렇게 기업 단위의 경영시스템을 현대화시킬 수 있도록 유도하고 격려했어야 했다.

2000.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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