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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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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는 기업의 간부들은 하이에나와 같다

1996년 여름. 우연한 기회로 철도 차량을 만드는 대기업 사장의 요청을 받아 공장을 4시간 동안 견학했다. 4시간의 관찰로도 그 회사에서 발생시키는 생산비를 반으로 절감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하철 객차의 경우 대 당 6억 원에 납품되고 있었다. 나는 생산비를 50% 정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간부들이 믿으려 하지 않았다. 3시간 동안 20명 내외의 핵심 간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했다. 설명을 들은 그들은 대체로 수긍했다. 공장은 세 개의 생산부로 구성됐고, 각 생산부는 독립된 건물을 가지고 있었다. 생산 1부는 차량의 골체를 용접해냈다. 바닥과 벽과 지붕을 따로 만들어 용접했다.

한 사람의 용접공이 도구를 쓰다가 아무 데나 집어던졌고, 다른 용접공이 그 도구를 찾으러 어슬렁거렸다. 빠른 몸놀림이나 신중한 얼굴은 없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듯했다. 최근 삼원정공과 삼성에서 벌였던 5S 운동 같은 것은 없었다. 5S 운동이란 정리, 정돈, 청결, 작업기율 같은 기본적인 환경 유지에 관한 것이다. 공정에도 시스템이 없어 보였다.

하나의 골체가 완성되면 대형 레일에 의해 생산 2부로 이동됐다. 여기서는 각종 부착물들이 용접됐다. 많은 부착물들이 천장에 용접됐다. 용접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거대한 기계가 골체를 돌려, 천정과 바닥의 위치를 전도시켰다. 용접공들은 천장을 깔고 앉아 용접을 했다.

부착물들의 종류는 매우 다양했다. 골체 옆에는 다른 공장에서 만들어진 부착물 즉 단조품들이 쌓여 있었다. 어떤 부착물의 경우에는 세 대 분의 재고가, 또 다른 부착물의 경우에는 30대 분의 재고가 쌓여 있었다. 노느니 만들어놓는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자금의 사장이었다.

이 한가지 현상만 봐도 부착물을 만드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일하고 있는지는 뻔했다. 선진국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부착물을 만들어내는 데 반해, 이 회사에서는 한 사람이 한 가지 부착물만 만들고 있었다. 인력이 남아도는 것이다.

부착물 용접이 끝나면 생산 3부 공장으로 옮겨졌다. 여기서는 내장 공사가 이뤄졌다. 천장에 내장되는 파이프, 배선, 부착물들이 매우 많았다. 여기에는 골체를 돌리는 기계가 없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탁자를 놓고 그 위에 올라가 가정집 도배하듯 일했다.

그런데 이 생산 3부가 바로 불필요한 공장이었다. 3부 공장에서 하는 일은 모두 2부 공장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2부에서 천장을 밑으로 돌려놓고 천장을 용접한 후, 이어서 천장 내장 작업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를 팀조직으로 바꾸면 생산비도 획기적으로 절약되고 팀간에 경쟁이 생기며 실명제 책임을 지울 수 있기 때문에 A/S가 줄어든다. 생산 1,2,3부에 있는 모든 인력을 3개 팀으로 재 구성하는 것이다. 하나의 팀에는 1,2,3부 인력 즉 용접공, 내장공, 조립공 들이 골고루 들어 있어서 한 팀은 차량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만들 수 있다. 3개 팀장이 비슷한 인력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이런 팀조직으로 개편하면 3개 부장이 3개 팀장으로 전환된다. 부장과 팀장이 어떻게 다른가. 우선 품질 관리 책임이 단일화된다. 제1 팀장이 1번 차량에서 50번 차량까지 만들었다 치자. 만일 38번 차량에 문제가 생겼다면 이는 1팀장의 책임이다.

책임의 비 실명제로 인해 그 회사에는 불량품이 너무 많아, 거의 모든 차량이 공정 밖에서 따로 수정 작업을 하고 있었다. 품질 관리 시스템 자체가 없었다. 근로자들이 파업을 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겼다. 3개 부를 3개 팀으로 재편하면 중복된 공정이 없어지게 돼서 인원이 50% 이상으로 대폭 삭감된다. 작업도 빨라진다.

행정 부서에서 발생하는 낭비는 이보다 더 큰 것이었다. 이로 인해 물지 않아야 할 지체상금을 물고, 회피할 수 있는 잔업이 성행했다. 행정 인력은 20% 수준으로까지 절약될 수 있었다.

공장의 문제는 모두 경영 시스템의 문제다. 낭비도 낭비 나름이다. 이는 경영진의 낭비다. 이를 시정하려면 회사의 모양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시스템 전문가들에게 이는 매우 쉬운 문제다. 그러나 고정 관념에 젖어온 경영진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다. 그들은 "경험많은 우리가 못하는 일을 외부의 컨설턴트가 무얼 알겠느냐"고 생각한다.

결국 그 중공업 회사는 2년짜리 컨설팅을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회사 전반에 대한 브리핑도 받았다. 컨설팅 용역비는 결과에 따라 회사가 기쁜 것만큼만 달라고 했다. 사장은 매우 만족해 하며 보수는 대기업 체면 때문에라도 충분히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임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엄청난 변화를 수용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간부의 직제와 역할이 바뀌고 일하는 방법과 시스템이 바뀌어야 했다. 비록 공식석상에서는 명분 때문에 수긍을 했지만, 뒤로는 보이지 않는 저항과 사보타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개혁을 하면 기업은 좋지만 나는 어떻게 되느냐".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곧 시작하겠다던 경영진단이 무산되었다.

지금까지 대기업들이 망가지고, 그래서 워크아웃으로 국민 세금을 쓰면서도 그들은 기업이 쓰러지는 날까지 단 한푼이라도 더 뽑아가려고 혈안이 돼 있다. 망해가는 기업의 간부들, 그들을 하이에나에 비유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그 후 또 다른 2 개의 대기업에서도 반복됐다. 회장이 컨설팅을 하려 하면 간부들은 일단 회장의 의도를 따르는 척 한다. 그 다음엔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컨설팅을 기피한다.

그들이 컨설팅을 하는 것은 많은 변화가 예상되지 않을 경우에만 "회장님 보시기 좋게" 컨설팅을 한다. 솜방망이 식 컨설팅을 주도하여 흉내만 낼뿐이다. 그리고 회장에게는 "컨설팅 결과 지금 회사는 대체적으로 잘 하고 있다 합니다"라고 보고한다.

더러는 컨설팅 비를 올려 나눠 먹기도 한단다. 서로에게 좋은 것이다. 매사에 이러하면 회사돈은 눈먼 돈이 된다. 컨설팅을 외면한 위의 3개회사는 이미 도산돼 버렸다. 이러한 현상이 존속하는 한, 한국기업은 예외 없이 망할 것이다.

거의 모든 기업에는 수십 %씩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100명이 하던 일을 20명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비용을 20%로 절감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1년이 걸리던 일을 1개월 이내에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반하지 않을 경영자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이 회사를 리메이킹할 만큼 엄청난 변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면 모든 간부들이 저항하고 사보타지 한다. 그들의 안전을 위해서다. 그들은 최고 경영자들에게 겁을 주거나 컨설턴트를 비하하기도 할 것이다.

리엔지니어링에 성공한 회사가 없다는 것은 바로 "거저 얻으려는 정신"과 "변화를 싫어하는 의식" 때문이다. 그래서 리엔지니어링에 성공하려면 최고 경영자 자신이 앞장서서 직접 주도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에는 아직 이렇게 훈련된 경영자가 없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극기가 필요하다. 하루를 소홀히 하면 열흘을 소홀하게 된다. 따라서 열흘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면 단 하루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극기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극기 없이 쉬운 방법으로 건강을 얻으려 한다. 그래서 명약을 찾는다. 그러나 이 세상에 그러한 명약은 없다.

2001.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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