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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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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의의 비법

"판에 박힌 회의",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회의"

우리 한국인들이 익숙해져 있는 회의다.

"타인들에게 잠재해 있는 창의력을 이끌어 내서 아이디어를 창출하거나, 문제를
발굴해 내거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토의"

우리 한국인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교육은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과정이다. 경영은 이렇게 훈련받은 간부들의 창의력을 유발시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우리 교육은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지식, 책의 저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복사하여 주입하는 과정이다.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고, 시각을 다양하게 기르는 것이 아니라 많이 외우게 하는 것이 우리 교육이다.

자기가 외우고 있는 내용과 다른 것을 말하는 사람을 반사적으로 적대시한다. 이는 토의에 절대적 필요조건인 "토의 매너"를 파괴한다. 토의를 했다 하면 감정싸움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토의의 충분조건은 두 가지로 구성된다. 하나는 토의 매너 및 센스이고 다른 하나는 리더의 "아이디어 브레이킹"(idea breaking) 능력이다. 토의 리더는 조련사다. 지루하지 않게, 늘어놓지 않게 문제의 핵심을 향해 아이디어가 집중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토의 장소는 각자가 알고 있는 것을 발표하는 장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절실한 아이디어를 창안해 내는 장이다. 참여자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핵심에서 동떨어진 말은 차단하되 무안하지 않게 농담 같은 것으로 덮어주고, 때로는 지나치기 쉬운 말에도 관심을 집중시키고, 발표된 말에 아이디어를 보태는 식으로 아이디어의 질을 높여나가야 한다.

"센스를 발휘하라". 하지만 어떻게 발휘하란 말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다만 상황에 따라 훌륭한 센스가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책으로 깨우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토의의 천재(?)가 발휘하는 훌륭한 센스를 관찰하고 음미함으로써 깨우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막막할 때, 아이디어를 내면 침체됐던 토의가 살아난다. 팀 리더는 "아이디어 브레이커"여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매뉴얼은 없다. 이 역시 책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토의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관찰하며 얻을 수 있는 훈련이다.

더러는 토의하는 요령을 터득할 수 있는 책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런 책들은 단지 토의의 매너와 토의 리더의 덕목에 대해 써 있을 뿐이다.

일본 기업에 세계적인 토의문화가 형성된 것은 가오루이시까와 박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요타 자동차가 그를 모셔다가 토의 문화를 심었다. 그 토의 문화로 인해 지금은 4만 명으로부터 연간 300만 개의 아이디어가 창출된다.

한국기업이 스스로 토의 문화를 심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외부에 있는 토의-천재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토의가 없으면 팀 파워 즉 시스템 파워를 절대로 낼 수 없다. 팀-파워를 내지 못하는 기업은 예외 없이 망할 수밖에 없다. 경쟁자들이 토의능력으로 무장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모든 조직이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야 할 것은, 조직을 팀제로 바꾸는 일과 팀-파워를 낼 수 있을 만큼의 토의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토의가 내는 파워에 대한 사례, 토의의 요령이 담긴 사례 몇 개가 본 홈페이지 "기업경영"란 제73 호(토의가 내는 위력)에 실려있다.

아이디어 브레이킹에 대한 사례 하나를 더 들어보자.

어느 대기업체 부장급들에게 한탄강 상류의 오염 사례 하나를 내놓았다.

"어느 날 염색 공장 하나가 한탄강 상류에 들어섰다. 페수량이 한탄강 수량에 비해 매우 적기 때문에 "환경영향평가" 합격했다. 한 개의 공장이 들어서자 수십 개의 염색공장이 들어섰다. 강물이 검게 변했다".

"주민들의 원성이 빗발치자 당황한 정부는 염색업 협회에 공동 페수처리장 설치를 종용했다. 협회 입장에서는 수익사업이 저절로 굴러온 것이다. 공장들로부터 배출되는 페수관이 페수 처리장으로 연결됐다. 페수관에 설치된 계량기에 따라 페수 처리비를 협회에 지불했다. 얼마 후 일부 업체들이 비밀 통로를 만들어 폐수의 일부를 몰래 방류했다. 방류된 수량 만큼 돈을 적게 냈다".

"이를 눈치챈 협회에도 컨닝 정신이 발동했다. 폐수처리 장비를 가동하지 않고 받아놓은 폐수를 방류했다. 업체로부터 받은 돈이 고스란히 남았다. 이를 눈치챈 공장들이 협회를 불신했다. 모든 공장이 폐수를 직접 강으로 방류했다. 결국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는 또다시 주민들의 분노로 이어졌다. 이어서 주민과 업체들간의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이 문제를 같이 풀어보자고 했다.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교육, 교육이 문제입니다. 어려서부터 환경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눈치였다. 탈출구를 찾지 못하면 토의는 여기에서 끝이다.

"문제는 지금 풀려는 것입니다. 한국인 모두가 철저히 교육되려면 앞으로 몇 년이 걸리겠습니까? 그럼 그때까지 오염문제는 방치해야 하나요?"

다른 부장이 손을 들었다.

"공무원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철저히 감시해야 합니다"

"시스템은 성악설을 근거로 하는 겁니다. 업자도 머리 좋은 도둑이고, 공무원도 머리 좋은 도둑이라고 생각하고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토의는 여기에서 또 멈췄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토의 리더가 필요한 것이다.

"혹시, 정부가 업체에 들어가는 취수량을 계량기로 측정하면 어떻게 될까요? 취수량이 곧 폐수량이 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참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다른 부장이 이를 받아 쳤다.

"업자가 지하수를 파서 몰래 쓰면 그것도 헛일입니다. 계량기가 달려있는 파이프로는 50%만 쓰고 지하수로 50%를 쓰면 폐수처리비를 50%만 내게 됩니다".

"그럼 폐수 방류관에 계량기를 달면 어떨까요?"

"그것도 헛일입니다. 비밀 폐수 방류관을 설치하면 얼마든지 몰래 내보낼 수 있습니다".

토의는 여기에서 또 정지됐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생산량과 폐수량이 정비례하지 않을까요? 생산량을 측정하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생산량은 누가 측정하지요?"

"공무원이 측정해야 합니다"

"그 공무원도 머리 좋은 도둑인데요? 돈을 받고 눈감아 줄텐데요?"

토의는 여기서 한동안 또 중단됐다.

"생산량을 알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한동안 생각들을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혹시, 전기 사용량, 전기를 많이 사용하면 생산량도 많은 게 아닌가요?"

"맞습니다. 전기 사용량은 속일 수 없습니다. 전기 사용량은 생산량과 정비례합니다"

결론은 폐수사용량을 측정하는 대신 전기 사용량을 측정하면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러한 토의과정을 거쳐 그들은 불과 2시간 내에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었다.

1) 취수량과 폐수량을 계량기로 측정하되 사람이 계량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컴퓨터에 연결하도록 할 것

2) 취수량, 폐수량, 전기 시용량이 자동적으로 컴퓨터에 연결되도록 해서 이들간의 상관관계 분석에 의해 단서를 잡아 낼 것.

3) 폐수의 농도를 자동 측정하여 컴퓨터에 연결시켜 농도 환산 작업을 통해 업체에 처리비를 부과할 것.

4) 취수량과 폐수량을 운반하는 파이프에 봉인 수단을 설치할 것.

5) 수치 조작을 예방하기 위해 매 1분 단위로 컴퓨터로 보내지게 할 것.

6) 처리시설 배출구에 오염도 측정기를 달고 그 밑에 1급수에서만 사는 물고기를 기를 것.

7) 컴퓨터에 의해 처리된 자료는 지방정부, 환경처, 민간 환경단체. 감사원에 일일 단위로 전달할 것.

8) 여기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작성하는 것은 회사 전산실에 위임할 것.

이상의 토의 과정은 오직 위 문제만을 위한 것이다. 다른 경우에는 또 다른 착상과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이상의 해결방안을 처음부터 부장들에게만 맡겼다면 아마도 그들은 하루 종일 시간만 낭비했을 것이다. 그리고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안돼, 토의문화가 없는 걸 뭐"

2001.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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