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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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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키워드: 시스템과 패러다임

새 천년은 지난 천년보다 많이 다를 것이다. 과거보다 다른 것들은 수없이 많이 열거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가장 의미있는 것은 변화의 속도가 과거와는 비교조차 안될 만큼 빨라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지구촌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으려면 적응능력도 창의력도 빨라야 할 것 같다.

대우가 무너졌고, 현대가 식물기업이 됐다. 환경의 변화 속도에 비해 이들의 변화 속도가 너무나 느렸기 때문이었다. 다른 재벌들, 국영기업체들, 방만한 정부가 변화하는 속도 역시 대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들의 붕괴는 국가 운명에 대한 조기경보로 비쳐지고 있다.

우리는 새천년이 가져다 줄 과실에 대한 설레임보다는 먼저 땀흘려 변해야 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새천년을 맞이해야 할 것 같다. 첫째는 개개인의 변화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의 집 즉 국가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젊었을 때에는 누구에게나 미래에 그가 되고 싶어하는 가장 이상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있다. 인습과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그 스스로가 정한 목표에 도전하며, 스스로의 기율에 따라 세상을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인간이 인간이 우리들의 가슴에 들어있는 멋쟁이 인간상이 아닐까.

1960년대에 "방랑의 무법자"라는 서부 활극이 있었다. 통념과 인습과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겁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의협심 있는 총잡이가 멋의 상징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인간상이 그때의 총잡이를 대신할 수 있을까? 필자는 맥가이버식 능력을 가진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방면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구태어 한 직장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어디에 가든 살아갈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생동안 단 한 가지의 손재주만 익혀가지고 먹고 사는 사람은 그 직장에서 떠나면 죽는줄로만 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수 있다. 그러나 빌케이츠는 아무런 재산 없이도 두뇌 하나만을 가지고 오늘날의 세계 제1갑부가 됐다. 보이는 자산이냐 또는 보이지 않는 능력이냐?

세계적인 선진기업 간부들에게 "기업의 최고 자산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학습능력이 뛰어난 사원"과 "핵심역량을 가진 팀조직"을 든다. 그러나 후진 기업의 간부들에게 물어보면 "부동산, 공장설비, 제품"들을 열거한다. 바로 이 하나의 표현이 세계경영의 새로운 파라다임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시장의 변화는 제품의 변화를, 제품의 변화는 설비의 변화를, 설비의 변화는 사원의 변화를 수반한다. 따라서 어제의 제품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어제의 성공 사례가 내일에 적용될 수 없다.

창의력만이 가장 확실한 자산인 것이다. 창의력은 학습능력에서 자라고, 학습능력은 학습 시스템에서 자란다. 창의력은 저절로 자생되지 않는다. 창의력을 계발시키려면 생활 자체가 배움과 학습의 과정으로 시스템화돼야 한다. 창의력은 어디로부터 생기는가? 어제의 문제로부터 생긴다.

우리는 5천년 역사를 자랑해왔다. 그러나 우리 민족 만큼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민족도 드믈 것 같다. 우리는 최근에 들어서만도 수많은 사고를 반복적으로 당해왔으면서도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당파싸움에 날새는줄 모르다가 일본에게 점령당해 놓고서도 지금도 정치꾼들은 소모적인 당파싸움을 답습하고 있다. IMF를 당해놓고도 또 다른 환란을 부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우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가장 생생한 증거가 아닐까.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선진 국민은 그 문제가 왜 발생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분석한다. 문제로부터 교훈을 추출해내고, 다시는 유사한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실사구시적 대책을 마련한다. 이들에겐 어제의 문제가 곧 오늘의 지혜다.

이와는 정반대로 한국인들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누구를 처벌할 것인가부터 생각해왔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처벌받지 않으려고 문제를 은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문제로부터 교훈이 도출될 수 있겠는가. 역사는 "어제들"의 집합체다. 어제의 문제로부터 지혜를 뽑아내지 못하는 민족에게 무슨 배움이 있겠는가?

배우는 방법이 바뀌어져야 하고 지식의 틀이 바뀌어져야 한다. 역사는 교과서에 분류돼 있는 단순 일대기에 관한 외움물의 대상이 아니라 어제 있었던 문제들의 집합체다.

지식이라는 것은 박학다식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 수 있는 실질적인 능력이어야 한다. 문제를 풀지 못하는 지식은 의미 없는 지식이다.

2001.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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