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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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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기능조직

많은 재산을 부실한 자식에게 넘겨주면 자식까지 망가진다. 재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업이 가지고 있는 넓은 대지, 방대한 설비들은 불안전한 자산에 불과하다. 자동차의 연료분사 장치가 개발되자 캬뷰레터를 만들던 회사가 가지고 있던 대지와 시설은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됐다. 기업에게 가장 안전한 자산은 핵심역량을 가진 팀조직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조직인 것이다.

한국 대부분의 기업은 기능조직이다. 같은 기능의 사람이나 기계를 한 곳에 모아놓은 조직이다. 회계과는 회계인들만, 설계과는 설계인들만 한 곳에 모아놓은 곳이다. 이 기능조직(Functional Organization)은 선진국에서는 1940년대로부터 시작해서 20여 년간 선호돼왔던 조직이다.

하나의 업무를 수행하거나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지려면 제조물이 여러 개의 기능조직을 컨베이어벨트 식으로 이동해야 한다. 컨베이어벨트 상에 개인의 위치와 역할이 외롭게 주어져 있다. 작업자는 컨베이어벨트 앞에 서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반복한다. 근로자는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기계 역할만 수행한다.

컨베어 벨트가 삽시간에 움직이기 때문에 해야 할 동작을 미처 다 하기도 전에 다음 사람의 손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해서 에러가 생기면 완제품 전체가 불량제품이 된다. 에러를 체크하는 품질 검사 요원 수가 적기 때문에 품질검사 요원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발생하는 에러를 다 걸러줄 수가 없다.

에러를 범한 근로자는 질책이 무서워 에러를 은닉하게 된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근로자 혼자서 에러를 만들고 그 에러의 대부분은 발견되지 않고 공장 문을 나가게 된다. 혼자서 하기 때문에 에러율이 높고 은닉하기 때문에 에러는 반복된다.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일단 에러가 발생하면 그때까지 투입된 재료비와 노무비 및 간접비는 모두가 낭비다.

우리 나라 대부분의 제조업체는 거의 예외 없이 위와 같은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나의 제품이 완성되려면 여러 과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힘을 합쳐야 한다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힘을 합치는 방법에 있다. 제품을 만드는 데에나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다같이 중요한 것은 "설계"다. 아무리 천재라 해도 설계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반드시 여러 사람들의 창의력을 동원해야 한다. 바로 이 설계 단계에서 힘을 집중해야 하지만 우리는 이 과정을 생략한다. 3류 설계, 하자 설계를 가지고 건풀을 짓조 제조를 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우리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일을 찢어 준다. 각자가 자기 업무를 가져가 외로운 방에서 혼자 자기가 맡은 부분을 설계한다. 최종 완제품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자기가 설계하는 부분이 어덯게 결합되는 지 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혼자서 외롭게 자기 식대로 상상하면서 부분을 설계한다.

오해가 생기고 에러가 생긴다. 100조각의 설계도가 제각기 공장으로 방출된다. 설계도를 받은 100인의 작업자가 에러가 잉태된 조각들을 만든다. 조각을 조립하다 보면 큰 에러가 발생한다. 이런 게 바로 시행착오다. 문제는 시스템 자체가 시행착오를 예방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하자가 생겨도 첫 단계에서 걸러지지 않고 후반에 가서야 걸러지게 때문에 그 동안 투입한 재료비, 노무비, 간접비가 낭비되고 납기를 위반하는 사례가 빈번히 일어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설계품질, 도면품질을 개선하는 일이다. 무하자 도면도 중요하지만 "설계개념을 향상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품질도 중요하지만 "속도"도 중요하다.

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개선도 발명도 머리 쓰는 시간이 보장돼야 가능한 일이다. 하루 종일 출근 시부터 야근 시까지 계산기만 두드리다 집에 가면 피곤해 쓰러지는 생활을 하는 사람, 하루종일 그림만 그리다가 집에가 쓰러지는 사람들에게서 무슨 개선과 발명이 있을 수 있는가. 인간능력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하지만 간부들은 이들에게서 정신력만 강조하고 있다.

7개월 짜리 프로젝트를 다면 5개월은 공장 이전의 선행과정에서 소요된다. 50% 이상은 쓸 데 없는 시간이다. 나머지 2개월 안에 납품을 해야 한다며 공장 직원을 다그친다. 그 2개월간에도 도면수정(revision)이 잦고, 도면 에러가 발견되고, 에러가 시정될 때까지 작업을 중지해야 한다. 이런 게 바로 기능조직에서 예외 없이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프로젝트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은 많아도 그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끝까지 책임을 지고 추적하고 관리하는 단일 책임을 지는 팀은 없다. 일단 컨베어벨트에 태워놓으면 그만이다. 그 다음부터 나타나는 에러에 대해서는 부서간 책임공방을 위한 언쟁만 있을 뿐이다. 문제가 커지면 공장장이나 사장에 의해 해결은 되지만 어디까지나 임기응변 식 사항처리일 뿐, 유사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시스템은 개발되지 않고 있다.

우리 나라의 모든 공.사 행정도 거의 예외없이 위와 같이 흐른다. 행정에서의 품질검사 역할을 담당하는 결재자들 역시 에러를 예방할 수도 걸러줄 수도 없다. 1류 설계, 완전한 설계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여러 사람들의 창의력을 유발하는 능력도 없다. 간부들은 오직 결재만 할 수 있다.

2001.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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