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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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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할수록 손해보는 시스템, 한국기업 시스템

"각자가 서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어찌 잘 안될 리 있겠느냐". "서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 바로 이러한 한국적 상식이 지난 10여 년간 거의 모든 국민, 기업, 정부 기관들로 하여금 신바람운동을 신봉케 했다. "서있는 자리에서 각기 최선을 다하면" 과연 국가와 기업이 잘 되는가? 최선을 다하면 잘 되는 패러다임이 있고 최선을 더 할수록 손해를 보는 패러다임이 있다. 최선을 다하기 이전에 먼저 체크해야 할 것은 시스템 즉 패러다임이다. 최근 기업마다 패러다임을 바꾸자(paradigm shift) 표어들이 회자되지만 아직은 본래의 뜻을 모르고 하는 소리로 들린다.

최선을 다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경우를 보자. 도요타 자동차에 12대의 기계가 하나의 공정을 이루고 있었다. 12대의 기계에 12명의 근로자가 배치됐다. 일감을 기계에 걸어놓으니까 기계가 일을 했다. 기계가 일하는 동안 근로자는 할 일이 없었다. 일하는 시간보다 서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이를 지켜본 사장이 각자에게 똑같은 기계를 하나씩 더 사주었다. 근로자 개인 당 생산성이 2배로 올랐다. 이 2배의 생산성은 우리의 신바람운동으로서는 도저히 꿈꿀 수 없는 높은 수치였다. 우리의 신바람운동은 10%의 생산성 향상에도 매우 만족해하지 않았던가.

열두 사람이 쉴 새 없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장의 마음은 기뻤다. 그만큼 이윤이 상승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손익 계산서에는 이윤이 점점 더 내려갔다. 과학적 통계자료가 사장의 상식을 뒤엎은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할수록, 생산성이 향상되면 될수록 이윤이 점점 더 내려가는 이 기막힌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유명한 다이이찌오노라는 부사장이 있었다. 이 명제에 골몰하다가 차안에서 무릎을 쳤다.

그는 각 근로자 앞에 미처 소화되지 못한 재고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후 공정"은 "전 공정"이 금방 만들어 낸 부품만 사용했다. 맨 밑에 있는 부품은 1년이 가도 사용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재고의 높이가 올라갔다. 맨 밑에 있는 재고는 한 달 후에 소재를 구매해서 만들어도 되는 것이었다. 재고가 많이 쌓인다는 것은 늦게 구매해도 되는 소재를 미리 구매한 것을 의미했다. 자금이 불필요하게 사장되고 있었던 것이다. 열심히 일할수록 생산성이 향상될수록 더 많은 돈이 사장됐다. 어지럽게 던져진 재고는 또 다른 일손에 의해 정리정돈 돼야 했다. 더 많이 만들면 더 많은 일손이 필요했다. 생산성이 향상되면 될수록 이윤이 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이이치 오노씨는 재고를 없애기 위해 하나의 작업 원칙을 만들었다. "전 공정은 후 공정에서 소화한 것만큼만 만들고 시간이 남아도 그대로 서 있으라"는 것이었다. 렇게 하니까 두 가지 비용이 일거에 절약됐다. 이윤이 상당한 폭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시간이 남는다는 원래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사장은 시간이 남았을 때 똑같은 기계를 더 사주었다. 한 사람이 한 가지 기계만 다뤄야 숙달이 되고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고정 관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사장은 왜 한 사람이 열 가지 스무 가지 기계를 다룰 수 없느냐고 반문했다. 간단하지만 이는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는 1번 기계를 다루는 근로자에게 2번 기계를 다루도록 했다. 2번 기계를 배우면서 기계의 오묘한 원리를 터득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몰두야말로 가장 아름다움 모습이며 몰두의 시간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 행복은 금전적 보상으로 안겨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는 봉급에도 관심이 없었다. 정복한 기계 수가 증가할 때마다 그의 자부심과 직업에 대한 안정감도 향상됐다. 각자는 스스로를 직장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기술을 습득할수록 자유와 해방감을 느꼈다. 회사를 나가더라도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드디어 12사람이 다루던 12대의 기계를 한 사람이 다루게 됐다. 한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대의 기계를 다루게 하는 데에는 작업 반경이 문제가 되었다. 작업 반경을 줄이기 위해 그는 기계의 설치를 일렬로 하지 않고 U자형의 연속으로 배열했다. 몸만 돌리면 여러 대의 기계를 접할 수 있게 했다.

인건비가 12분의 1로 절약됐다. 간단한 발상의 전환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적시 생산(JIT; Just In Time)시스템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렇듯 재고 없이 딱딱 맞물려 돌아가게 하는 시스템을 우리는 경영학적 용어로 Coupling System이라고 부른다.

위에서와 같이 현재의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열심히 일하라고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일하는 방법 즉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1인당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1인당 2대의 기계를 다루게 했던 전자의 시스템 속에서는 열심히 일할수록 손해를 보았지만, 한 사람이 12대의 기계를 다루게 했던 후자의 시스템 속에서는 열심히 일할수록 이윤이 상승했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언제나 "최선"을 외쳤다. 하지만 "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지 않은가. 지난 10년간 우리의 기대를 모았던 신바람 운동은 일하는 방법 즉 시스템을 바꾸는 운동이 아니라 현 시스템 속에서 더 열심히 일하자는 운동이었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 기업들은 근로자들에게 신바람 인센티브를 마련한다며 도덕적 해이만 부추겼다.

열심히 일할수록 손해인 경우는 얼마든지 많다. 공장이나 건설에는 현장 품질관리 요원들이 있다. 공사규모는 큰 데 반해 품질관리 요원의 수는 매우 적다. 중요한 작업과정에 대해서는 품질관리 요원이 지켜 서 보는 가운데 작업을 해야 하고(on spot inspection), 한 단계 작업에서 다음 단계 작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품질관리 요원이 작업상태를 사후에 검사해야 한다. 특수 재질을 침투시켜 침투 테스트를 하거나 X-레이로 사진을 찍어 판독하기도 한다. 그 판독이 끝나기 전까지는 다음 작업이 중단돼야 한다.

영업 수주에 욕심이 많은 기업이 수주를 많이 받았다. 수주를 받는 날부터 모두가 바쁘게 돌아간다. 설계인력이 일을 열심히 할수록 도면과 자재 소요를 계산하는 데 에러가 많았다. 에러 많은 도면이 공장으로 방출되고, 에러 투성이의 자재구매 요구서가 구매 부서로 날아갔다. 공장에서도 수많은 일손들이 제조상의 에러를 낸다. 빨리 할수록 제조 에러가 증가한다. 설계 자체가 틀렸기 때문에 작업을 정확히 해도 소용이 없다. 품질관리 요원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각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에러를 지적하려 한다. 지적되는 에러가 많으면 많을수록 재 작업량이 늘어난다. 재 작업은 비용을 증가시키고 납기를 지연시킨다. 그렇다고 에러를 감지하고도 "go" 사인을 줄 수는 없다. 더 큰 손해를 유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검사를 요하는 작업 수는 한꺼번에 몰리면 소수의 검사요원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여기 저기서 검사요원을 기다리느라 작업이 중지된다. 검사요원을 기다리는 시간이 바로 낭비되는 시간이다. 통상의 공장이나 건설업에서 이렇게 낭비되는 시간은 아마도 30%를 넘을 것이다. 기업들은 이러한 "대기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낭비 규모 자체에 대해서마저 관심들이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인들은 예방적 품질관리를 개발했다.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높이기 위한 일본 고유의 품질관리 기법인 것이다.

한국에서의 품질향상은 곧 원가 상승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는 정 반대의 이론이 생활화돼 있다. 품질향상이 원가의 상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원가의 절감을 의미한다. 모든 작업이 정확하면 재 작업이 없다. 빨리 빨리 작업을 서두르면 재 작업량이 늘어난다. 재 작업을 한다는 것은 기존의 작업을 원상복귀 시키고, 재료를 다시 구매해야 하고, 설계를 다시 해야 하고,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두를수록 인건비가 추가되고, 재료비가 추가되며 납기가 늦어진다. 정확한 길이 가장 빠른 길이지만 대부분의 공장 시스템은 "빨리 빨리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 지적에는 동의하면서도 새로운 시스템은 죽기를 각오하고 배척한다. 그래서 새 술은 새 그릇에 담아야 하는 모양이다.

우리의 현 모습과는 달리 일본인들은 50년 전에 작업자 스스로가 "정확한 시스템"을 가꾸어 가도록 훈련했다. 공정 하나 하나에 대한 통계적 품질관리를 하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에게는 작업자체도 중요하지만 작업과정을 통계수치로 측정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한다. 그 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를 사전에 발견하고 지혜와 교훈을 스스로 찾아낸다.

한국식 품질 검사는 잘해야 불량품을 발견해 낼 수는 있어도 양질의 제품을 만들 게 할 수는 없다. 우리가 근로자의 15에 해당하는 많은 품질관리 요원을 확보하고 있는데 반해 일본인들은 1-3%의 품질관리 요원만을 확보한다. 이렇게 적은 숫자의 품질관리 요원들을 가지고 일본인들은 어떻게 해서 무하자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우리의 품질관리 요원은 사후에 불량품을 적발해내는 경찰관이었지만 일본의 품질관리 요원은 근로자들 스스로가 불량품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능력을 계발시켜 주는 교사다. 일본인들은 모든 근로자들이 품질관리 전문가가 되도록 교육시킨다. 일본의 품질관리 요원은 자상한 교사이지만 우리 품질관리요원은 거드름을 피는 경찰관이다.

일본인들이 지난 50여 년간 과학적 품질관리에 맹훈련을 해오는 동안 우리는 겨우 그들보다 40여 년 후에 시작했다는 게 겨우 쓰레기 같은 의식개혁(spiritualism)이요 신바람운동(emotionalism)이었다. 일본인을 따라잡아도 시원치 않은 시기에 엉뚱한 것들에 희망을 걸고 10여 년의 아까운 시간을 허송했다. 의식을 문제삼는 사람들은 의식이 개혁될 때까지 기다리자는 사람들이다. 변화에 저항하는 게으른 사람들이다.신바람운동 역시 게으른 경영진의 심적 탈출구에 불과했다. 시스템만이 살길인 것이다. 시스템에 대해 시비를 거는 이들은 한참 잠자는 관념주의 적 몽상가들이다.

WTO 이후인 지금. 우리 기업이 선진기업에 패하고 줄줄이 도산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저들은 시너지를 내고 있는 반면 우리는 내부 에너지만 낭비하기 때문이다. 저들은 1달러를 쓰면 1달러 이상을 재생산하지만 우리는 1달러 이하밖에 재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영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옛날에는 망하지 않던 기업이 지금은 왜 망하는가? WTO 이전에는 외국의 완제품(end item)이 한국 땅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래서 국내기업은 선진국에서 200달러에 팔리는 TV를 우리 국민에게 700달러에 팔 수 있었다. 원하는 것만큼 받았기 때문에 국민은 불쌍하게 살았어도 기업은 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외국제 완제품이 자유롭게 들어온다.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을 비싸면서도 질 낮은 제품만 만들어내는 게으른 한국기업에 바칠 국민은 이제 없다. 수입선 다변화 원칙이 1999년 1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해제됐다. 그러자 마치 막혔던 둑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이 일본 제품들이 들어와 국내 시장을 파죽지세로 잠식하고 있다. 1999년 7월과 8월 두 달 동안 밀려들어온 48개 품목에 대한 수입액이 1년 전 연간 수입액의 184%로 증가했다. 특히 캠코더의 경우 146배나 증가해 내수 시장의 30%를 잠식해 버렸다. 카메라도 23배나 증가했다. 1년 전에 비해 수입액이 2배 이상 증가한 품목이 25개나 됐다.

차량, 기계, 전자, 광학, 정밀 분야에서의 한국 상품은 일본 부품이 없으면 사실상 제조가 불가능해 진다. 일본은 한국에 완제품 수출을 점점 더 늘리기 위해, 그리고 한국의 경쟁 기업에 타격을 주기 위해 한국에 부품 공급을 기피하거나 가격을 올리고 있다. 이들 품목들 중에서 가장 애로를 겪고 있는 품목들은 차량의 자동변속기, 에어백, 수치제어 소프트웨어, 정밀부품, 캠코더용 렌즈, 휴대폰 배터리, 볼베어링 등 80-90개나 된다. 일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핵심 부품의 종류는 앞으로 완제품에 대한 수입금지 해제 대상이 확대될수록 점점 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반면 우리의 경영능력은 제자리걸음이다. 수십 년간 형성된 고정관념에 중독 된 기업 간부들의 경영능력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었다. 한국기업이 선진기업에 패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경영진이 "내부에너지 소진 체제"를 "시너지 체제"로 바꾸기 전에는 우리의 모든 기업이 패망할 것이다.

경영진에게 경영능력을 기르라고 하면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경영능력을 기를까? 아마도 경영 분야의 책을 읽거나 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에 가서 등록을 마친 후 여러 강사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세월을 여유롭게 보낼 것이다. 기업을 시너지 체제로 바꾸는 것은 학교를 다니고 강연을 듣는다고 해서 되지 않는다. 어깨 너머로 얻어들은 지식이나 경영학자의 코멘트 몇 마디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스템은 언제나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 외부의 시스템 전문가가 설계해주고 실천을 위한 리더십까지 담당해 주어야 한다. 단언하건데 한국기업에서 내부인력을 가지고 선진기업에 맞먹는 시스템을 설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2001.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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